금리 동결 온기 중소기업에 닿지 않아
증권, 보험, 저축은행…각자 다른 이유로 고통

지난 1일 중소기업간담회에 참여해 발언하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1일 중소기업간담회에 참여해 발언하는 김주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빌려준 돈이 1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상호금융이나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출 금액까지 합치면 1400조원도 넘습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달 말 7번째 연속 금리를 동결하며 기준금리를 3.50%에 묶어뒀지만, 시장금리는 이와 상관없이 계속 올라 차주들의 부담은 커져만 갑니다.

저축은행들은 부동산PF연체율이 급등하고, 증권사는 ELS발 악재와 IB부문 수익 급감에 거래대금마저 줄어 수수료 수입마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은행에 이어 상생금융안을 내놔야 하는 보험업권에선 급등하는 실손보험 손해율에 보험료를 올리겠다는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 대출 잔액 급증하는 중소기업들…이어지는 코로나19 그림자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9월 말보다 3조8000억원 늘어 998조원을 기록했습니다. 올 들어 매월 수조원 씩 증가한 추세를 감안하면 11월 말 이미 1000조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비은행금융기관 대출분이 9월 말 기준 423조원임을 감안하면 이미 전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4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코로나19 발발 직전인 2019년 10월 715.5조원에 불과했던 예금은행 중소기업 대출은 4년 뒤인 2023년 10월 998.0조원까지 늘어 282.5조원 불었습니다. 2019년 10월 기준 4년 전인 2015년 10월 560.8조원에 그쳐 4년간 약 155조원이 늘었던 것의 두배 가까이 됩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고 아직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가 급증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고통이 ‘진행형’이라는데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는 아직 고통의 증가 구간에 있습니다. 코로나19 첫 해인 2020년 2%대 후반에 머물던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지난해 10월 이후 5%대를 유지하고 있고, 지난 10월 신규취급액 기준 평균 대출금리는 두달 연속 올라 5.35%를 기록했습니다. 중소기업 신규 대출 중 62.1%가 5% 이상의 금리로 돈을 빌려 2년 전인 2021년 10월 3.0% 대비 20배나 올랐다는 통계는 중소기업이 터널을 한참 지나는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정부당국이 지난 9월 종료 예정이었던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등의 대출 원금과 이자의 상환에 대해 1년 거치, 이후 5년간 분할상환 조치를 단행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입니다.

이런 조치에도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기준 0.49%로 1년전(0.27%)의 1.8배 수준입니다. 이것도 9월 분기말을 맞아 부실 여신의 상각과 매각을 통해 0.55%까지 올랐던 연체율을 낮춘 수치입니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전국 법원에 신청된 파산법인 신청 건수만도 1363건으로 전년 동기(817건) 대비 66.8%나 늘었습니다. 빚더미에 묻힌 기업들이 백기를 들고 있는 숫자가 늘고 있는 겁니다.

은행들이 올해 60조원의 이자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돼 상생금융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것은 이들 중소기업들이 모두 은행들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이 대출관리를 잘못해 자산이 부실화되면 은행은 신용등급이 내려가고 그러면 더 높은 조달비용을 치르고 돈을 빌어와야 합니다. 당연히 이 비용은 돈을 빌리는 차주들에게 전가되고, 가뜩이나 상환여력이 없는 대출자들은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 고개드는 저축은행 PF연체율

그렇게 해서 밀려나는 중소기업들은 대출이 어려워지고 더 나쁜 조건에라도 돈을 빌리기 위해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 제2금융권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산규모로 5대 저축은행(SBI·OK·웰컴·페퍼·한국투자저축은행)의 경영공시에 따르면, 9월말 부동산 PF 연체율은 6.92%로 전년 동기(2.4%)대비 4.52%p 급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부동산PF 연체액은 708억원에서 1959억원으로 늘었습니다.

가뜩이나 시중은행과 금리에서 차별화된 경쟁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저축은행들은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신금리를 올려야 하는 압박을 받습니다. 자연스레 여신(대출)금리는 높아지고 그 부담은 차주에게 돌아갑니다. 다만 저축은행들의 법정 여신 최고금리는 20%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차주들의 신용등급이 강등될수록 고객수는 줄어들게 됩니다.

다른 수익사업을 통해 자금 조달처를 확보하고 이를 상품 경쟁력에 녹여내야 고객이 늘고 실적이 늘어나는데 고금리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어 주 사업인 PF에서 문제가 생기고 차주들의 부실화는 진행되자 사면초가 상황에 빠지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5대 저축은행의 지난 3분기 순이익 합은 6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6.6% 줄었습니다.

◆ 다가오는 홍콩H지수 ELS 손실 확정…증권사, 은행 모두 초조

금융당국이 촘촘한 내부통제와 금융소비자보호를 강조하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 다가올 홍콩H지수 기초자산 ELS(파생결합증권)에 대한 위기감은 남다릅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많이 팔린 이 상품은 개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파생상품입니다. 특히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고령의 투자자들이 제대로 이 상품을 이해하고 가입했는지 당국이 따져묻고 있습니다. 이를 소명해야 하는 것은 은행들의 몫입니다.

신탁이라는 바구니에 넣어 이 상품을 많이 판 것은 은행이지만, 기본적으로 ELS는 증권사 상품입니다. 주가지수가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기를 기대하고 투자에 나서지만 그 약속된 범위를 벗어 이른바 ‘녹인 베리어’(Knock-In barrier)를 건드리면 손실이 확정되는 상품입니다. 증권사들은 이 상품을 운용하면서 운용 수익을 거두기도 하고 이 상품을 판 수수료를 챙기기도 합니다.

잊을 만 하면 반복되는 행태지만, 이번엔 금융당국이 꺼낸 칼날이 단순히 겁을 주는데서 끝날 조짐이 아닙니다. 판매사들이 방패로 삼는 투자자 동의 녹취 등이 얼마나 실효성을 인정받을 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단기간에 H지수를 구성하는 대표 중국기업들의 주가가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편이 더 빠를 지도 모릅니다.

증권사들은 ELS 이외에도 역시 부동산PF 이슈에 노출돼 있습니다. 특히 10~20위권 사이의 중형사들에게 그 시선이 집중됩니다. 금융지주 계열이거나 대기업 계열 증권사의 경우 만에 하나 그룹으로부터 자금 수혈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리스크가 업권 전체로 퍼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미리미리 자산을 매각해 실탄을 마련한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IB의 핵심 사업으로 진행한 부동산 투자, 특히 후순위로 투자한 해외 부동산이 코로나19 이후 고착화된 재택근무로 공실이 늘며 리스크가 커진 것도 부담입니다. 고금리로 인해 많은 공사 현장의 자재비와 인건비가 올라 아예 사업장을 버리고 매몰비용을 포기하는 건설사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벗어나 대주단들이 우량 사업장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잘 하는 것 만이 살 길입니다.

◆ 보험사, 실손보험 손해율 급증…상생 바톤 이어받아 보험료 인상 눈치

연말까지 시한을 가지고 수백억원 씩 기부금을 내며 상생안을 짜고 있는 은행권을 지나 6일 감독당국은 보험사 CEO들을 만납니다. 올해 3분기 실적이 급등한 보험사들도 무거운 숙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금융감독원이 4일 발표한 9월말 기준 생명보험사(22개)와 손해보험사(31개) 전체의 당기순이익은 11조4225억원입니다. 작년 동기(3조6613억원) 대비 47.2%입니다.

보험료를 장기 운용하기 위해 채권에 많은 투자를 하는 보험사들은 그간 금리 상승의 악조건 속에서도 수입보험료 증가로 방어하며 실적 개선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의 안정성과 증권사의 수익성 사이에서 정체성이 불분명하던 보험사들은 안정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약진을 보였습니다.

다만 올해 도입된 IFRS17의 적용이 안착됐다고 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일시적으로 급등한 보험사들의 실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질병처럼 반복되는 실손보험 손해율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생명보험사보다 손해보험사들의 실적이 좋은 상황에서 실손보험을 취급하는 손보사들이 손해율 문제로 실손보험료 인상에 나설 경우 받아든 상생금융 숙제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부 몰지각한 가입자들이 도수치료, 과도한 백내장 수술 등을 이유로 불필요하게 보험금을 청구해 제대로 이용도 하지 않는 선의의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줘온 상품입니다. 매년 손보사들은 다른 곳에서 이익을 내도 실손보험에서 2조원 전후의 손실을 봐왔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이 급등해 121.2%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3세대 실손보험은 156.6%로 전체 실손보험 손해율을 견인했습니다. 손해율은 단순히 말해 100%가 넘으면 보험을 팔수록 손해가 난다는 뜻입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3세대 실손보험 손해율 증가 속도가 워낙 빨라서 일정부분 조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해당 상품 가입자 중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입하고 혜택은 받지 못한 고객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눈치를 보는 실정”이라며, “보험사들이 이익을 많이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상황이 항구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상생금융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노력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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