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지 7년 만
기술경영·품질혁신 통해 '글로벌 효성' 이끌어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

 

재계의 '큰 어른' 한 명이 또 세상을 떠났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2017년 고령 등을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조 명예회장은 최근 건강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대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본래 대학교수를 꿈꾸며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1966년 부친으로부터 경영수업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고 귀국해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기업인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는 향후 효성그룹 성장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3년에는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섬사업 기반을 다졌고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이어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회장 취임 이후 경영 혁신과 주력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조 명예회장은 생전 "글로벌 기업으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품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했다.

특히 기술을 중시한데 따라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6년 효성기술원으로 개편했다.

기술력을 중시한 조 명예회장의 결단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연구개발(R&D)의 문을 연 것이다. 결국 이런 노력이 효성의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탄생의 원동력이 됐다.

조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도맡았다.

2007~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정부에 규제개혁 등을 강력하게 건의하는 한편 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에 앞장 섰다.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2000~2009년), 한일경제협회장(2005~2014년) 등도 역임했으며 특히 일본 재계와의 협력에 집중해 지난해 8월에는 그 공고를 인정받아 '제8회 한일포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2009년에 일본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대수장'을 받았으며 금탑산업훈장(1987년)과 서울국제포럼 선정 영산외교인상(2022년) 등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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