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메타버스·수소·이차전지 '4대 성장사업' 강화
화학군 재점검·실적 발목 비주력 사업 등 정리 초강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이 올해 대대적인 변화에 나설 전망이다. 그간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을 성장시켜왔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방침을 바꿨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른바 '한계사업'은 정리하고 새로운 먹거리 중심으로 체질개선을 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신 회장의 칼 끝이 어어디로 향할지 관심이 쏠린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달 3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사업 방침을 바꿨다. 매수 뿐만 아니라 매각도 일부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몇 년 해도 잘 안 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다른 회사가 해주는 편이 종업원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몇 개 정도 매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 회장의 발언에 롯데그룹 내부에서 사업 정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앞서 그는 지난달 2일 신년사에서도 그룹의 역량을 냉정하게 분석해 사업별 핵심 역량을 고도화하고 미래형 고부가가치 사업에 대한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높여가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또 지난달 18일에는 신 회장 주재로 올해 경영계획과 중장기 사업 전략을 논의하는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 옛 사장단회의)도 진행했다. 당시 롯데는 지난해 경영 실적을 돌아보고 사업군별로 핵심 역량을 고도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따른 결과로 신 회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앞으로 주력할 사업군으로는 ▲바이오테크놀로지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등을 꼽았다. 이 4개의 신성장 영역은 롯데가 오너 3세이자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가 앞으로 주도해 나갈 사업군으로 해석된다. 신 전무는 롯데케미칼을 지휘해오다 올해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게 됐는데, 동시에 롯데지주로 자리를 옮겨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미래성장실장도 역임하게 됐다.

현재 롯데는 롯데바이오로직스와 롯데헬스케어, 롯데정보통신 등을 중심으로 한 신성장동력 육성에 힘을 주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BMS사의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고 인천 송도에 바이오플랜트를 추진하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지난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드는 칼리버스를 인수하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울러 올해 들어 신 회장이 'AI(인공지능) 트랜스포메이션' 추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최근 그룹의 AI 컨트롤 타워인 AI TF팀(팀장 현종도 상무)을 본격 가동한데 따라 AI 기반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본업과 동떨어진 분야에서 인수한 뒤 뚜렷한 성과없이 재무적 부담을 가중시킨 사업들은 매각 우선순위에 오를 것으로 보이며, 기존 전통의 주력 사업인 화학·유통 분야 등에서도 조직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본업이 아닌데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사업으로는 '한샘'이 대표적이다. 3000억원 가량을 들여 투자했지만 인수 직후(2021년) 700억원대이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적자로 돌아섰고 아직 실적을 공시하지 않은 지난해 역시 흑자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샘 매장. 한샘 제공
한샘 매장. 한샘 제공

 

또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와 카셰어링 서비스 '그린카'도 사업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고나라 실적은 롯데그룹이 인수 이후 줄곧 적자폭이 커진 상황이며, 그린카는 카셰어링 1위 쏘카와 점유율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 2012년 롯데쇼핑이 1조2400억원을 들여 인수한 가전 양판점 '하이마트'의 향방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된다. 롯데하이마트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가전 시장 경쟁 심화로 점유율은 밀리고 실적은 부진을 겪게 됐다. 지난해도 겨우 적자를 면한 상황으로, 인수 당시 1조원이 넘던 기업 가치는 2000억원대까지로 하락한 상황이다.

이밖에도 영화관 사업자인 롯데컬처웍스, 외식 사업이 주력인 롯데GRS도 실적이 좋지 않아 비주력 사업들로 거론되고 있으며, 롯데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롯데건설도 새로운 변화에 나설지 주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 화학군은 체질개선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분위기다. 롯데가 본래 화학사업에 중점을 뒀던 만큼 중국 등의 영향과 업황 불황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빠르게 타개하기 위해 먼저 나선 것으로 보인다.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확대를 통해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배터리 소재 강화를 본격화 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면서 고부가 스페셜티, 그린소재 등 신사업 비중을 높이고 수소에너지 사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시의적절한 투자와 실행력 강화 등을 중점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매출의 5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롯데케미칼의 기초소재 부문은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또 중국 내 석유화학 공장 매각, 파키스탄 자회사 매각 등을 통해 중국발 공급 과잉에 따른 여파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인수한 동박 전문 기업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배터리 시장이 주춤하면서 기대만큼의 성적표를 받지는 못했다. 다만 현재 개발 중인 황화물계 고체전해질, 실리콘 음극활물질, LFP(리튬인산철) 양극활물질 등 차세대 배터리 소재 연구를 더욱 집중하면서 2028년까지 하이엔드 동박 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롯데정밀화학 역시 스페셜티 사업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1400억원을 투자해 증설한 헤셀로스(페인트용 첨가제) 공장이 이달 상업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며, 식의약용(의약용 캡슐 원료·식품용 첨가제) 증설에 790억원을 투자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롯데알미늄도 양극박 사업을 전개하며 이차전지 분야 계열사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현재 미국 켄터키주에 롯데케미칼과 합작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연간 3만6000t 규모의 미국 내 최초 양극박 생산기지 건설을 추진 중으로, 공장이 완공되면 롯데알미늄은 연산 8만4000t의 생산량을 갖춘다. 이같은 신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롯데알미늄은 종합 포장소재 기업에서 이차전지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그룹도 다른 대기업들처럼 사업 정리를 통해 경기 침체를 타개하려는 모습"이라며 "특히 주력이었던 화학사업도 범용성 석유화학 제품 공급과잉이 중국발 증설 물량 확대로 불황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 신성장 동력 확보와 실적 가시성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점은 일단 신사업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롯데정보통신에 대해 "AI를 통한 기업 생산성 향상은 시대적 트렌드로, 기업간거래(B2B)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롯데정보통신과 같은 SI기업들의 수혜가 기대된다"며 "특히 롯데그룹 확장 및 디지털 전환 지속에 따른 SM, SI 실적 개선이 전망된다. 또 국내 전기차충전 인프라 수요 증가에 따른 자회사 이브이시스 매출 성장 및 해외(미국, 동남아, 일본 등) 신규 매출로 실적 턴어라운드가 기대된다"고 진단했다.

오강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정보통신의 올해 전기차 충전소 자회사인 이브이시스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2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칼리버스는 확장현실(XR) 시장에 본격 진입해 흑자전환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