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부동산PF, 홍콩ELS 등 여파 대비
손익 안정성 확보…새 먹거리 찾기 분주

(왼쪽 상단부터) 서유석 금투협회장, 김미섭/허현호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김성환 한국투자 사장, 정영채 NH투자 사장, 강성묵 하나증권 사장, 김상태 신한증권 사장, 김성현 허현호 KB증권 사장. 각사 제공.
(왼쪽 상단부터) 서유석 금투협회장, 김미섭/허현호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김성환 한국투자 사장, 정영채 NH투자 사장, 강성묵 하나증권 사장, 김상태 신한증권 사장, 김성현 허현호 KB증권 사장. 각사 제공.

2020년 초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금리의 하락과 상승이 이어지며 4년간 롤러코스터를 겪은 금융시장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금리 하락을 기다리는 차주들의 마음과 달리 고물가와 싸우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은 더디다. 금융권에선 상생금융을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삼고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으며 디지털 전환, 해외진출, 신사업 등을 통해 치열한 일전(一戰)을 준비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그 현장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금리인하 시기의 불확실성과 물가상승압력 지속, 지정학적 이슈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할 요소들이 곳곳에 상존해 있다…위기는 최소화하며 기회는 확실하게 잡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과 자원을 다하여 앞장서 뛰어야 한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2024 신년사 中)

증권업과 자산운용업 CEO를 모두 경험한 서유석 금투협회장의 신년사를 보면 업계가 올해 마주할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올해 주요 증권사들은 예년과 달리 신년사 공표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신년사를 내놓은 회사들도 각 부문별 구체적인 달성 목표를 조목조목 제시하던 과거와 달리 올해 커질 변동성에 대한 대비, 각종 리스크관리, 업무에 임하는 자세 등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현재 금융권을 관통하는 두개의 리스크, 즉 부동산PF와 홍콩ELS에 증권사들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위험성과 수익성이 모두 큰 초기 단계 자금, 즉 브릿지론에 적지 않은 규모의 돈이 투입돼 있다. 현재진행형인 건설업계 순위 16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행은 가뜩이나 불안한 증권사들의 숨통을 죄어오는 소식이다.

증권사들은 전통적인 천수답 영업으로 치부되며 시장이 좋을 때 거래수수료를 왕창 벌고 몇 년씩 손가락을 빨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글로벌투자은행(IB)이 되겠다며 자본 확충 경쟁을 해왔다. 자기자본 확대 속에 증권사들은 현재 초대형 IB 5개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삼성·KB)와 4조원 요건을 갖추고 진입을 기다리는 차상위 증권사들(하나·신한·키움·메리츠)이 있다.

하지만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글로벌IB와 정면승부는 무리다. 일단 첫발을 뗀 영역이 부동산이다. 주식과 채권 등 이른바 전통자산과의 상관계수가 낮은 부동산 시장에 진입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겠다는 포석이었다. 대체투자(AI)로 불리며 부동산, 선박, 항공기 등 실물자산에 직접 투자하거나 고객에게 소개했다. 코로나19는 끝났고 재택근무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투자했던 해외부동산에 공실이 생기고 있지만 얼마의 부실이 있는지 정확히 측정이 어렵다.

대표적인 방향성 매매인 주가연계증권(ELS)는 고객에게 판매하기 쉬운 상품이다. 판매가 용이하려면 상품의 설명이 쉬워야 한다. 이해하지 못할 상품에 가입할 사람은 많지 않다. 기초자산이 되는 주식, 주가지수 등이 가입 시점대비 얼마 이상으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약속된 수익을 안겨준다는 설명은 일견 매우 이해가 쉽지만 한편으론 신도 모를 이야기다. 주가나 주가지수의 미래를 맞춘다는 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 ELS의 단골 기초지수로 쓰이는 H지수는 중국 기업 중 우리도 알만한 대표 기업들을 선진화된 시장인 홍콩에 상장시킨 종목들로 구성한 지수다.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가입하는 사람도 모두 익숙하다. 다만 이는 증권사 문턱을 넘나드는 사람들에 한정된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 판매창구의 힘은 은행이 증권사보다 10배 이상의 파괴력이 있다. 과거 유명했던 펀드의 판매 상위에는 미래에셋증권 정도를 빼곤 모두 은행들이 이름을 올렸다. ELS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이 ELS를 직접 판건 아니지만, 이를 담은 신탁 등의 형태로 열심히 팔았다. 이미 손실 구간에 진입한 H지수가 올해 급등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수조원의 자금이 손실확정을 기다리고 있다. 상품을 기획한 증권사에게는 판매사만큼의 책임이 오진 않을 수 있다. 다만 이를 만들어 파생상품운용 수익을 내고 판매수수료를 거두던 이익의 한 축은 무너질 예정이다.

그런 고민이 서유석 금투협회장의 신년사 말미에 등장한다.

“올해는 펀드, ELS 등 우리 업권의 대표상품들의 판매가 은행 등 특정채널에 종속되던 판매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우리 금융투자산업의 국민 자산관리 역할이 훼손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대응해 나가야…(중략)…금융투자산업의 신뢰 회복 및 투자자 교육과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 부동산 PF 정상화 지원, ELS 모니터링 강화 등 금융시장 불안에 대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중략)…투자자들이 안심하고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투자회사의 내부통제 역량 강화를 지원하겠다”

불완전판매 이슈가 불거지면 시장은 위축된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공급에 따라 수요가 생기기도 한다. 판매사가 감독당국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데 공장이 원활히 돌아가기 어렵다.

자신의 판단에 의해 상품에 가입했더라도 금융과 상품 지식에서의 불균형을 고려할 때 불완전판매 이슈에서 금융회사는 판정패하기 쉽다. 특히 지금과 같이 상생금융이 시대의 화두인 때는 더욱 그러하다. 투자자교육 강화 카드를 꺼낼 수 밖에 없고, 그 사이 시장 침체는 감수해야 할 몫이다.

지난해 말 10대 증권사 중 6개 회사의 수장이 바뀐 증권사들은 하나같이 반성과 위기관리를 강조하는 낮은 자세, 기본을 다지는 자기성찰을 신년사에 담았다.

1등 증권사 미래에셋의 신임 부회장으로 올해 첫 신년사를 낸 김미섭·허선호 두 대표는 "2022년 이후 전례가 없는 급격한 금리인상을 경험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시장에 만연한 리스크 불감증과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한 투자와 경영의 의사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고 말해 반성의 변을 실었다.

이어 "금융업은 다양한 리스크 요인들을 원칙과 기준에 따라 잘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며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정비를 통한 손익 안정성 제고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성장 파이프라인 강화를 주문했다.

미래에셋은 중국에 이어 차세대 공장으로 떠오른 인도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인도 현지 1위 해외운용사로 자리잡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시너지를 낼 현지 증권사를 지난해 말 약 5000억원에 인수했다. 마치 삼성전자가 반도체로 답을 내지 못할 때 ‘삼세페’를 부르짖으며 가전세일로 돌파구를 찾듯 풍부한 자기자본과 개척해 둔 글로벌 시장이 있는 미래에셋에겐 도전의 기회가 남아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신임 사령탑이 된 김성환 사장은 취임사를 겸한 신년사에서 "최고의 성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는 회사를 만들자"며 그 방법으로 전 사업 부문의 글로벌화, 고객과 직원이 체감할 수 있는 디지털화, 선진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 구축 및 영업 지원 강화를 제시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카카오뱅크 2대주주로 다양한 디지털 실험, 수익 창출, 고객확대 등 적지 않은 재미를 봤다. 현재 카카오뱅크가 대주주적격 문제로 1대주주의 지위에 변화가능성 마저 둔 상황에서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모그룹인 동원그룹이 대양을 호령하던 글로벌 개척정신을 가졌고, 김남구 회장 자신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혹독한 지도자수업을 받으며 원양어선을 타봤던 사람이다. 위기때 더 큰 바다에서 기회를 찾는 DNA가 증권업에서도 펼쳐질 지 여부는 2024년이라는 변곡점을 어떻게 지나느냐에 달려있다.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은 대표적인 국내 IB 개척자로 NH투자증권을 확고한 빅3 반열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시장의 불확실성은 우리 업의 성공과 부진에 대한 이유를 시장에서 찾도록 만들었다"며 "'어느 회사가 금리 급등의 영향을 덜 받았는가', '예상치 못한 위기를 잘 피해갈 수 있었는가'가 회사의 주요 성과이자 시장에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주된 요소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고객과 자신과 회사를 지키는 일"이라며, "무엇이 옳은 지 모를 때 선택에 대한 결과가 확실하지 않을 때 원칙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최선의 판단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사모펀드 관련 책임 이슈에서 상흔을 딛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가 NH투자증권이 올해 갖는 또 다른 숙제다.

KB증권 김성현·이홍구 대표는 신년사에서 "높아진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을 통한 신뢰 강화는 우리가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로벌 이슈와 다양한 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대응 역량을 강화해 고객의 자산과 회사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컴플라이언스·리스크 관리 역량을 끊임없이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년까지 김성현 대표와 호흡을 맞춰온 WM부문 전문가 박정림 대표가 빈 자리를 잘 메우고 두 대표가 시너지를 내야하는 것도 또 다른 올해 소임이다.

하나증권 강성묵 대표는 신년사를 내부용으로 한정했다. 그룹 회장의 신년사로 갈음하고 각 자회사는 내부 소통에 주력하는 것이 하나금융 방식이다. 신년사를 통해 강 대표는 ‘권토중래’(捲土重來), ‘동심공제’(同心共濟)라는 키워드를 통해 지난 어려움에 용기를 잃지 말고 부단한 노력으로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점 추진 사항으로 기본에 충실한 업의 경쟁력 강화를 언급하며 WM(자산관리) 부문 강화와 ECM(주식발행시장), 기업금융 확대 등 전통 IB(기업금융) 강화를 강조했다.

지난해 하나금융그룹에서 비은행 선두주자 역할을 했어야 할 하나증권은 실적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여섯번 째 초대형IB 선정에 0순위인 하나증권이 올해 리스크를 잘 방어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지가 매우 중요하다. 아직 그룹 내에서 하나카드, 하나생명, 하나손보 등이 제 역할을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한투자증권 김상태 대표는 단독 대표체제로 전환하면서 2년의 임기를 부여받았다. 지난해 회사의 체질을 바꾸며 업계 순위를 끌어올린 신한자산운용 조재민 사장과 함께 유일하게 그룹의 2년 신임을 받은 케이스다.

하지만 위기의 시대 신임을 통해 더 뛰도록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진옥동 회장이 계열 CEO 전원을 유임시키는 행보 속에 나온 결정이라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다. 1년으로 체질을 바꾸는 것은 어려우니 아예 2년동안 잘해보라는 채찍질이다.

김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라며 "'예전에 해왔던 것처럼' '과거에 문제가 없었으니깐'이라는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임직원 모두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른 성장을 추구하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 효율 중심의 조직과 운영체계 기반 위에서 리테일 자산관리 운영체계를 고도화하고 자본시장 내 우위 영역을 보다 확대하며 기술 기반 혁신에 의한 미래 준비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모펀드 관련 시련을 몇 년째 벗어나기 위해 노력중인 회사의 임직원들이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한 대형 증권사 경영지원본부장은 “역동성이 크고, 외생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증권사는 자칫 변동성 관리에 실패할 시 금융의 근간인 신뢰를 잃기 쉽다”며, “올해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금리가 내려오고 그 과정에서 안고 있는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할 수만 있다면 위기가 기회로 변할 수도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