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중심으로의 사고 혁신…기존 성공 방정식 폐기
상생은 기본…적과의 동침, 국내외 새로운 길 찾기 분주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재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각 은행 제공.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재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각 은행 제공.

2020년 초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금리의 하락과 상승이 이어지며 4년간 롤러코스터를 겪은 금융시장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금리 하락을 기다리는 차주들의 마음과 달리 고물가와 싸우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은 더디다. 금융권에선 상생금융을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삼고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으며 디지털 전환, 해외진출, 신사업 등을 통해 치열한 일전(一戰)을 준비하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그 현장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3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는 범금융권 CEO 500여 명이 모였다. 해마다 있는 신년인사회 자리지만 이날 행사에는 예년과는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제부총리부터 주요 기관장들의 신년사 안에는 하나같이 ‘리스크관리’와 ‘신뢰회복’, ‘상생’이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영미 선진국과 같이 금융산업이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 한계상황에 다가가는 전통 산업의 짐을 덜어주자는 ‘호기로운 구호’는 사라지고, 혹시 생길지 모르는 PF발 금융위기에 대비하고, 지난 해 발생한 크고 작은 배임 및 횡령 사고, 불완전판매 이슈로부터의 신뢰 회복, 어려움에 처한 금융소비자와의 상생이 그 자리를 대신한 셈이다.

뜻밖에 찾아온 금융의 위기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곳은 제1금융권인 시중은행들이다. 은행들은 지난 해 ‘표정관리’가 쉽지 않을 만큼 높은 이익을 거둬들였다. 4분기 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연간 이자수익으로만 40조원 이상 벌었다는 것이 업계 추산이다.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국민, 신한, 하나, 우리)의 올해 연간 순이익 전망치는 17조2316억원으로 조사됐다. 역대 최대 순이익이었던 지난해 순익 추정치(16조5510억원) 대비 약 4.1% 늘어난 규모다.

핵심 자회사인 은행들이 이들 금융지주에서 차지하는 순이익 기여도는 60~90%에 달한다. 지난해 말 미 연준은 금리인상이 실질적인 종착점에 달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연출했고, 이제는 금리 인하의 시기가 언제일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상단기준 2.0%p 차이가 있다. 우리보다 경제 체력이 좋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가 더 낮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만큼 상황이 좋았던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고용이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 조치로 ‘금리역전’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심각한 우리의 가계부채도 이러한 상황에 일조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폭이 우리와 다를 수 있음을 가늠케 한다.

실제 한국은행 총재는 3일 범금융권 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지난 해와 달리) 국가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한국은행은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정교한 정책조합을 통해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전에도 이 총재는 금리인하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 과도한 부채에 의한 투자의 위험성 등을 반복적으로 경고해왔다.

주요 은행장들이 신년사에서 상생을 가장 강조해서 발표한 배경 뒤에는 순이자마진(NIM)이 소폭 줄어든다 하더라도 그만큼 늘어나는 대출이 그 간극을 메워주리라는 계산에서 나온다. 정부가 올해 ‘스트레스DSR’ 시행을 통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장치를 마련한 것도 금리 인하가 자칫 부동산 등 레버리지 투자의 신호로 인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특별한 노력없이 갑자기 생긴 돈. 우리가 말하는 ‘횡재’의 정의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이를 다시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치솟은 금리는 은행들에게 뜻하지 않은 ‘횡재’를 가져왔고 상대적 박탈감은 ‘횡재세’ 입법 추진으로 나타났다. 결과는 우리가 다 아다시피 은행별 3000억원 내외 ‘캐시백’ 형태의 재원 마련을 통한 2조원 갹출이다.

은행들 입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지출’은 이것이 일회성일지 올해도 재현될 일인지 촉각을 곤두서게 한다. 엄연히 모기업인 금융지주회사가 상장이 돼 있고, 가장 큰 기여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은행이 주주와 약속한 주주환원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에 변화를 주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 KB국민, 이겨내야 하는 왕관의 무게


3300만 고객을 보유한 1등 국민은행의 3년차 CEO 이재근 행장의 올해 신년사에는 돌다리도 두드리는 듯한 조심성과 투지가 동시에 엿보인다. 지난해 말 선임된 양종희 신임 회장은 올해 비은행 포트폴리오의 강화를 천명한 바 있다. 현 구조에서 은행의 폭발적 성장을 이끄는 것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톱5 수준에 머물고 있는 증권, 생명보험, 손해보험, 카드, 자산운용 등의 회사를 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그 길을 가고자 하는 그룹의 캐시카우를 책임지는 기함의 선장으로서 이재근 행장의 책임이 막중하다.

오후 6시까지 문을 여는 9To6 뱅크를 정착시킨 CEO답게 이 행장은 신년사에서도 임직원들에게 ‘실행력’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해야 할 일들을 열거하면서, 앞서 실천하며 현장 목소리에 귀기울일 테니 따라와 달라는 주문이다.

이 행장이 올해 목표로 내세운 첫 번째 일성은 ‘리딩뱅크’에서 ‘국민의 은행’으로의 전환이다. 이미 규모와 실적에서 1위를 달성했지만 은행간 실적 차별화는 크지 않다는 게 이 행장의 판단이다.

실적은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공 방식을 버리고 ‘대전환’을 이뤄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넘버원 디지털 금융그룹’의 선봉이 되자는 요청이다. 이를 위해 안팎의 금융사고에 만전을 기해 고객의 머릿속에 ‘평생 금융 파트너’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비대면 상황이 촉발한 디지털 전환에 대한 필요성은 이제 전 사업영역에 적용돼야 한다는 게 국민은행 생각이다.

특히 가장 많은 고객을 확보한 장점을 이용, ‘KB스타뱅킹’ 중심의 슈퍼앱 전략을 더욱 확장해 비금융 서비스까지 탑재, 고객을 KB안에서 머물고 즐기게 하자는 주장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여의도 더현대’가 젊은이들의 놀이터를 조성하자 소비로 이어지듯 온라인 상에서도 모든 것이 가능한 플랫폼 구축으로 기존 IT 플랫폼과 경쟁하겠다는 야심찬 도전이다.

잘하던 것을 더 잘해 압도적인 ‘초격차 KB’를 만들자는 생각, 인도네시아 부코핀 은행의 정상화, 캄보디아 프라삭은행의 육성 등 해외부문 강화, 신명나게 일하는 현장중심 KB 등이 이재근 행장이 꿈꾸는 2024년의 국민은행이다.


◆ 신한, 일류의 옷을 입고 ‘고객 몰입’


KB국민은행과 경쟁해온 신한은행 정상혁 행장의 신년사는 세세한 표현의 차이를 걷어내고 나면 놀랄 만치 KB 이재근 행장의 신년사와 닮아 있다.

신한은 그룹 차원에서 지난해부터 일등보다는 일류가 되자는 구호를 전파하고 있다. 고객 중심의 사고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그를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서비스하는데 초점을 둔 철학이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Everywhere Bank, 즉 고객의 일상 어디에나 스며드는 온오프라인 서비스다.

KB에 ‘9To6 BANK’가 있다면 신한에는 ‘이브닝플러스’가 있다. 특히 은행권 최초로 자사의 상품보다 더 좋은 상품이 있다면 갈아타라는 자신감으로 ‘금융상품비교서비스’를 내놓고, 배달앱 ‘땡겨요’를 전국 단위로 확산해가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이 올해 변화되고자 하는 모습은 ‘고객몰입 조직’이다.

다소 도전적인 용어처럼 들리는 ‘고객몰입’은 고객에게 남다른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오직 고객만을 바라보고 모든 서비스를 연구, 개발, 실행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발견한 고객 니즈를 구현하기 위한 본사와의 유기적 협력을 위해 조직개편도 완료했다.

여기에 고객과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지속가능한 가치를 만들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고객에겐 손을 내밀어 상생하고, 내부 프로세스 점검과 보이스피싱 방지 등을 통해 고객 신뢰를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금융업 뿐 아니라 타 업종과의 ‘연결과 확장’을 통해 변화하는 미래 환경에 맞는 서비스를 발굴하고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 신한은행의 2024년 방향이다.


◆ 하나, 헌신적 ‘협업’으로 금융 그 이상의 가치 창출


하나은행 이승열 행장은 작년에 신년사이자 취임사를 낸 것과 달리 올해는 아예 신년사를 내지 않았다. 조용한 카리스마로 유명한 이승열 행장이 그룹내 하나은행의 비중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회장의 생각과 뜻을 같이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같은 뜻을 이해한 함 회장은 신년사에서 타 금융지주 회장과 달리 비교적 상세히 은행의 올해 전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함 회장은 고금리라는 환경적 변화가 가져온 은행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직시하고, 검증된 과거의 성공방정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이자산정의 프로세스를 잘게 쪼개어 가산금리를 정하는 비용과 원가 산정 방식, 신용등급체계의 적정성, 신용정보 수집의 완결성, 정보의 효율적 활용, 선제적 금리인하 제시에 이르는 미시적인 과정 하나하나에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말 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객과의 상생을 위해 시스템을 뜯어고치겠다는 약속으로 읽힌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발군의 수익성을 시현하며 경쟁 은행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2022년 4분기와 2023년 1분기까지 전체 은행 가운데 최고의 수익력을 과시하는가 하면 경쟁은행이 기업금융 명가를 부르짖는 것이 무색할 만큼 기업금융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갔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발군의 수익력을 내는 것을 두고 자칫 동일 사안에 대해 과도한 리스크를 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며, “이는 하나은행이 한 프로젝트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타 은행의 경우 수익과 비용을 감안해 해당 딜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포기하지만, 하나은행의 경우 단순히 해당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없더라도 이에 덧붙여 수익을 낼 수 있는 추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면 그 일을 수행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함 회장이 강조하는 ‘협업’의 정의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함 회장은 한정된 자원으로 경쟁자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헌신적인 협업을 통해 그룹의 역량을 결집하고 “경쟁자를 포함한 외부와의 제휴, 투자, M&A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협업을 이뤄내 금융이 줄 수 있는 가치 그 이상을 손님께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래 전부터 고객을 ‘손님’으로 칭해온 하나금융은 그런 관점에서 그룹 ESG부문 산하에 상생금융지원 전담팀을 만들었다. 하나은행도 사업 분야별 상생금융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상생금융센터’를 기업그룹 내에 신설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금융취약계층 등을 위한 신속하고 빈틈없는 상생금융 지원을 위한 조치다.


◆ 우리, 실력으로 무장하고 목표 향해 ‘초집중’


우리은행에게 2023년은 쉽지 않은 한해였다.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비은행 부문 포트폴리오 강화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고, 실적에 있어서도 상대적인 아쉬움이 있었다. 기업금융 명가로의 복귀, 해외진출 본격화 등을 선언했지만 가시적인 움직임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런 아쉬움과 변화에 대한 절박함이 조병규 은행장의 2024년 신년사에서 묻어나온다.

조 행장의 외침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전문성, 능동성, 도덕성을 가지고 우리은행의 경영목표와 전략에 초집중해 미래를 선도하는 힘을 키우자”이다.

조 행장이 말하는 업무에서의 ‘전문성’은 스스로의 자긍심과 자신감의 근원이다. 이를 키우기 위해 조직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갈 길이 바쁜 우리은행의 행보에서 영업의 달인으로 불렸던 조 행장 입장에선 직원들의 전문성이 성에 차지 않았을 수 있다.

‘능동성’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이 나의 일이다”라는 주인의식의 발로라는 게 조 행장의 생각이다. 주체의식은 업무 몰입도를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철학이 보인다.

‘도덕성’은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으로 조직의 평판과 신뢰를 위한 근간이다. 지난해 있었던 아쉬운 사건사고에 대한 반성이 내포돼 있다.

조 행장이 전문성, 능동성, 도덕성에 기반한 ‘정도’를 걸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절실함과 집중력이다. 좋은 성과를 통한 경험을 나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기 위해 ‘초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초집중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핵심사업(기업금융, 개인금융, 글로벌)의 경쟁력 강화, 다양한 산업과 연계한 신시장 개척 및 신탁, IB 등 미래 성장성 확보, 내부통제와 선제적 리스크관리, 디지털/IT 플랫폼 경쟁력 제고, 전문성과 효율성 중심의 경영 체질 개선, 상생 등 사회적 책임 완수다.

우리금융은 증권사와 보험사 인수가 필요해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카드업과 캐피탈 정도가 있지만 조달금리 압박에 계열사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은행이 더욱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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