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구호 아닌 일상…디지털과 글로벌로 ‘새판 짜기’
기존 사고 틀 못 버리면 도태 ‘위기의식’

기존의 틀을 벗고 상생경영으로의 전환을 강조한 4대금융 CEO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B금융 양종희 회장,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 각사 제공.
기존의 틀을 벗고 상생경영으로의 전환을 강조한 4대금융 CEO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KB금융 양종희 회장,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 각사 제공.

국내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새해 임직원들에게 기존 사고의 틀을 바꿀 것을 강조하며 생존 방정식 수정에 나섰다. 특히 윤석열 정부 하에서 ‘상생’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중심에 품고 갈 ‘일상’으로 자리잡는 느낌이다. 올해도 전년과 유사하거나 좀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연말 2조원 가량의 상생금융 비용을 갹출하면서 ‘이자장사 프레임’ 벗기에 나서고 있다. 다만 지속해온 포트폴리오 다변화, 디지털과 글로벌 시장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내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다.

2일 4대금융그룹 CEO들은 일제히 신년사를 통해 갑진년 한해 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임직원을 포함 대내외에 천명했다.


◆KB금융, ‘KB-고객-사회’ 공동 상생전략 강조


올해 첫 신년사를 배포한 KB금융지주 양종희 회장은 핵심 자회사 국민은행과 더불어 자신이 공들여 키워온 비은행 계열사들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뜻을 밝혔다.

양 회장은 신년사에서 "자산, 고객 수, 이익 등 주요 성과 기준으로 명실상부 국내 리딩금융그룹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면서도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로 우리에게 익숙했던 전통적 고객 분류는 무의미해지고, 사회 양극화와 복잡성 심화로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확대되는 등 금융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상생과 공존에 방점을 두며 "KB고객의 범주에 사회를 포함해 KB-고객-사회의 공동 상생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금융상품과 서비스 기능을 고객 접점 어디든 맞춤형으로 플랫폼에 탑재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비대면 중심으로 근본적이고 과감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또 "이제 금융은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어가 언제 어디서든 고객이 원하는 형태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모든 금융상품과 서비스 기능을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형태로 모듈화 해 어떤 플랫폼에도 고객 맞춤형으로 탑재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계열사의 선두권 도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투자운용, WM(자산관리), 보험, 글로벌 4대 영역에서도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한층 높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한금융, 틀을 깨는 혁신 통해 ‘새로운 기준 제시’


일류신한을 강조해온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은 올해 경영 슬로건으로 ‘고객중심, 一流신한! 틀을 깨는 혁신과 도전!’을 제시하고 “기존의 성공 방식만 고집한다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며, “ESG, 디지털, 글로벌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신한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나가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한편 지난해 금융권 전반이 크고 작은 리스크 관리에 헛점을 보인 것을 의식한 듯 "스스로를 철저히 돌아보는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를 바탕으로 고객중심, 일류신한의 꿈에 가까이 다가가자"고 당부했다.

특히 “두 개의 맞닿은 연못은 서로 물을 대어주며 함께 공존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麗澤相注(이택상주)’를 인용하며 상생의 실천을 강조했다.

진 회장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혼자만의 생존은 불가능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두의 가치를 높이고자 힘쓰는 기업만이 오랫동안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나금융, 필수 생존 전략으로 다양한 ‘협업’ 주문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은 상생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강조해 주목을 받았다.

함 회장이 말하는 협업은 단순히 파트너와의 협업을 넘어 "경쟁자를 포함한 외부와의 제휴, 투자, M&A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협업을 이뤄내 금융이 줄 수 있는 가치 그 이상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금융의 핵심 가치인 신뢰를 강조하면서 지난 해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크레딧스위스 등을 언급하며, "고난과 위기가 태풍처럼 휩쓸고 간 2023년에는 10년만의 역성장 위기, 비은행부문의 성장 저하 등 그룹의 부족한 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함 회장은 "금리 상승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지만, 고금리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금리체계가 정당하고 합리적인가에 대한 불신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면서 "이미 검증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항변보다는, 우리의 성공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변화된 금융 지형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손님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우리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하여, 투명하고 합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우리의 성장 전략에 대한 인식전환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함 회장은 신년사 곳곳에 ‘진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손님(고객)과의 관계에 있어 신뢰 구축을 위한 진정성의 중요성을 말했다.


◆우리금융, ‘기업금융 명가’ 재건의지 재확인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은 지난해 화두로 내세웠던 기업금융 명가 재건과 증권사 인수 등을 포함한 그룹 포트폴리오 강화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재차 확인했다.

임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선도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면, 올해는 우리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해 고객과 시장이 변화된 모습을 체감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성과들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증권업 진출에 대비해 그룹 자체 역량을 강화하고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충을 병행하는 등 그룹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해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힌 기업금융 명가 재건과 관련해 "기업금융은 우량자산 중심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선제적인 리스크관리, 혁신역량으로 기업금융 명가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회장은 이색적으로 이러한 전략을 실천하는 임직원들의 마음가짐을 강조해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지난 해에도 우리금융은 기업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다짐을 한 바 있다.

올해 경영 목표인 ‘선도 금융그룹 도약’을 위해 임 회장이 강조한 마음가짐은 ‘열’의, ‘감사’, ‘합심’이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며 성장하고, 선후배 및 동료의 격려와 배려에 감사하며 소통하고, 합심으로 원팀 시너지를 내라는 주문이다.

이날 각 그룹의 신년사에 대해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네 그룹이 각각 처한 상황과 특색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을 지 몰라도 큰 틀에서 상생경영, 디지털, 국내외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핵심 자회사인 은행이 예대마진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절박함이 신년사 곳곳에 숨어있다”고 평가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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