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손실 확정 시기 도래…당국 ‘불완전 판매’여부 살펴
3년만기 많은 H지수 2001년 초 ‘1만2000’ 돌파…현재 반토막

최근 3년 사이 반토막난 홍콩H지수. 한국투자증권 HTS 캡처.
최근 3년 사이 반토막난 홍콩H지수. 한국투자증권 HTS 캡처.

주가가 횡보하기를 기대하며 가입하는 ELS(주가연계증권)의 단골 기초자산인 H지수(항셍 중국기업지수)가 3년 전 대비 반토막 수준을 보여 내년 상반기 대거 만기 도래에 따라 대규모 손실확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가입한 투자자들의 가입시 불완전 판매가 없었는지 당국이 들여다보려고 칼을 빼들었다. 과거 유사한 사례가 많아 경험치가 쌓인 금융사들은 ‘판매 과정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국이 얼마나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댈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26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부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수익률 기준 지표)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을 최근 수년간 팔아온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사실상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다음 달 1일까지 진행 예정인 이번 조사에 판매 규모가 많은 일부 금융사는 현장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갑작스런 일제 조사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해서 판매한 ELS 가입자의 손실이 내년부터 수조원 규모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다.

ELS란 주가연계증권으로 기초자산이 되는 주요국 주가지수나 개별종목 등의 움직임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경우 만기 시 당초 약정한 수익금을 지불하는 금융상품이다. 보통 만기 전이라도 6개월, 3개월 등 관찰구간을 둬 일정 구간 내에서만 기초자산이 움직여 조기상환 조건을 충족하면 수익금이 조기에 지급되기도 한다.

만기나 기초자산은 정하기 나름이지만, 가장 일반적인 만기는 3년, 가장 대표적인 기초자산이 H지수다. H지수(HSCEI)란 ‘항셍 중국기업지수’로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국영 기업들 가운데 우량 기업들을 모아 만든 지수다. ELS 판매 시 투자자들이 기초자산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판매가 용이한데, H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은 비교적 익숙한 중국공상은행, 차이나모바일, 텐센트 등 유명 중국 기업이라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단골 ELS 기초자산으로 활용된다.

문제는 중국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최근 3년 H지수가 반토막이 난 데 있다.

지난 2021년 2월 18일 기준 H지수는 장중 1만2271.60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24일 종가 H지수는 6041.15다. 정확히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지난 해 10월 말(4919.03)에는 5000선이 무너져 심각한 지경에 이르다 올해 1월 27일 7773.61까지 반등해 안정되는 듯 했으나, 이후 하락을 이어가 지난 10월 24일 장중 5763.66까지 밀리기도 했다.

중국 경제가 단기 급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H지수 기초자산 ELS 만기가 도래하며 ELS투자 실패에 따른 후폭풍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5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중 약 8조4100억원(지난 17일 기준) 규모가 내년 상반기 만기다. 동일한 구조의 상품인 주가연계펀드(ELF)와 주가연계신탁(ELT)을 포함한 규모다.

만약 H지수가 몇 개월 내로 급반등하지 않는다면 내년 상반기 중 8조원의 약 40% 이상, 즉 3조원 넘게 손실확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ELS 원조인 증권업계의 경우 판매 잔액(약 3조5000억원)은 채널이 많은 은행보다 적지만 입장은 다르지 않다.

핵심은 불완전판매 여부다.

투자상품은 철저히 투자자의 책임에 의해 가입하기 때문에 투자 실패를 금융사에게 물을 수는 없다. 다만 이렇게 큰 손실이 날 수 있는지 금융사가 위험고지를 정확히 했고, 이를 투자자들이 제대로 인지했는지, 그 과정과 절차가 완벽했는지가 쟁점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일단 본점 차원에서 이 상품(H지수 ELS)을 어떤 의사 결정을 통해 팔게 됐는지, 고위험 상품이니까 고객에게 판매할 때 제대로 교육했는지, 어떤 자료가 있는지, 직원 KPI(핵심성과지표) 문제 등을 미리 한번 볼 것"이라며 "일이 벌어지고 나서 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사전 준비 차원"이라고 조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공모 상품이니까 서류나 녹취 같은 것이야 다 해놨을 텐데, 판매할 때 만약 '이런 상황이면 손실 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고지했는지는 사실 의문스럽다"며 "H지수의 경우 과거에도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됐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고지됐는지 그런 부분도 점검해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하면 소비자들이 민원 내고 분쟁조정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 경우에는 검사 등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해 추가 조치 가능성도 예고했다.

금융회사들은 원칙적으로 판매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과거 훨씬 더 높은 책임이 투자자에게 주어지는 사모펀드 사태 당시에도 투자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빌미를 제공해 투자자와의 ‘사적 화해’라는 명목으로 투자금 상당수를 물어줬고, 그에 따른 평판리스크 확대 및 CEO등 관련자 제재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당장 이달 말 또는 내달 초에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관련 주요 증권사 및 오너에 대한 금융위의 최종 징계가 내려질 전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이 유사한 상황을 수차례 겪으면서 디지털 시스템을 갖춰 녹취, 투자자성향조사 등을 과거 대비 철저히 해 절차상 하자를 문제삼을 부분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워낙 판매 절차가 길고 복잡한 가운데, 이것이 투자자보호에 완벽하지 않다는 당국 지적이 나올 경우 어떤 변수가 생길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ELS는 주로 과거 투자경험이 있는 고객들이 만기시 또는 조기상환시 생긴 여유 자금을 다시 재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품에 대한 인지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하기 어렵고, 과거와 달리 ELS 가입시 숙려기간을 둬 충분히 심사숙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도 투자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판매사를 문제삼는다면 아예 이 상품은 팔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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