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에 분위기 쇄신 감행…사모펀드 징계 앞 물갈이
고개드는 부동산PF 리스크…금리 인하만 기다리는 중

23일 여의도 페어몬트호텔 금투협 70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서유석 회장. 금투협 제공.
23일 여의도 페어몬트호텔 금투협 70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서유석 회장. 금투협 제공.

23일 금융투자협회가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열었지만, 업계 분위기는 ‘엄동설한’이다. 아직 임기가 남은 CEO들이 줄줄이 낙마하며 어려운 업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PF관련 위기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기(롱테일)로 인식되며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 미국 금리 하락이 유일한 희망이지만 시간이 좀더 필요한 상황이다.

23일 오후 5시 금융투자협회는 7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70년 전 이날은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3년으로 금투협 전신인 대한증권협회가 문을 연 날이다. 증권업 개념도 희미해 ‘단자회사’라는 이름을 거치며 투자와 투기 사이에서 자리를 찾아온 증권업계는 ‘천수답’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투자은행(IB)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수년째 이어왔다. 하지만 2023년이 저물어 가는 이때,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실적 선두는 브로커리지 1위 키움증권이다.

업계 선두권인 한국투자증권 정일문 대표가 23일 이사회에서 부회장으로 승진 결정돼 기존 유상호 부회장과 투톱체제를 이루게 됐다. 신임 CEO엔 개인고객그룹장을 맡아온 김성환 부사장이 내정됐다.

한투증권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타이트한 조직관리로 유명한 한투증권에서도 김 부사장은 성과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관리로 정평이 난 분”이라며, “공격적인 신사업 전개보다 어려운 업계 현실에서 내실을 기할 수 인사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 20일에는 메리츠금융그룹이 메리츠증권 CEO로 10여년을 이어온 최희문 대표를 지주 부회장으로 올리며 장원재 영업 및 운용부문(Sales&Trading) 사장을 CEO로 임명했다. 삼성증권과 메리츠금융지주에서 리스크관리(CRO)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한 증권사 대표는 “IB업무 중에서도 부동산금융에서 업계 선두를 달려온 메리츠증권이 부동산PF 리스크를 포함한 전반적인 관리에 방점을 둔 인사로 읽힌다”며, “기존 CEO가 조직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지주로 이동한 만큼 책임과 역할에 대한 분담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회사 모두 CEO낙마의 모양새가 아닌 영전의 형식을 취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의 CEO교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이에 앞선 지난 달 말에는 업계 1위 미래에셋증권의 CEO 용퇴가 있었다. 박현주 회장의 분신으로 불리던 창업공신 최현만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글로벌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김미섭 부회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업계 정상권 회사 CEO들이 줄줄이 자리를 이탈하면서 남아있는 인사들도 가시방석이긴 마찬가지다.

특히 사모펀드 관련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초 그간의 업적과 공과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되던 NH투자증권 정영채 대표나 KB증권 김성현, 박정림 대표의 연임 여부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상대적으로 성과나 리스크관리 부문에 있어 가장 여유로운 상황에 있던 삼성증권 장석훈 대표도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룹 내 큰 폭의 인사설이 나오면서 연임을 장담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오랜 시간 사모펀드 관련 후폭풍에 시달려온 신한투자증권을 이끄는 김상태 사장의 거취도 불투명하다. 지난해 사옥매각에 따른 이익의 기저효과가 있기도 했지만 3분기 적자전환은 뼈아프다. 실적 1위를 달리고 있는 키움증권은 CFD사태와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등의 여파로 황현순 대표가 자진사퇴와 철회를 거듭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종투사(종합금융투자사업자)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IB로 불리는 9개 증권사 중 거취가 확실한 CEO는 강성묵 하나증권 신임 대표 뿐이다. 강 대표 마저도 급변하는 거시환경 속에서 무슨 변화가 있을지 100% 장담하긴 어렵다. 자칫 9개 대형증권사 CEO가 모두 바뀌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여의도를 감싸고 있다.

금융업계엔 횡재세, 상생금융 등의 이슈가 회자되지만, 금융투자업계엔 이런 요구조차 남의 일이다. 은행을 가진 금융지주와 일부 대형 보험사들의 이슈일 뿐이다.

23일 저녁, 여의도 페어몬트호텔 금투협 칠순잔치에 축사를 위해 참석한 이복현 원장은 여당이 최근 발의해 여론몰이에 나선 ‘횡재세’와 관련해 “거위(은행) 배를 가르자는 식”이라는 입장만을 밝혔을 뿐 금투업계의 상생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앞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도 고개를 든다.

종점을 향해 가는 것으로 판단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장금리(채권금리)는 연일 내려가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들의 조달금리가 내려가고 가계 소비도 진작될 수 있어 기업 실적이 반등할 것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다만 미 연준을 중심으로 아직 한번도 금리 인상이 가능하며, 내년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하반기나 돼야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회복이 아직 요원한 것은 증권사 입장에서도 악재다. 우선 국내 PF사업장에 일분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브릿지론 등에 투자한 자금의 향방이 아직 불투명하다. 더욱이 해외 대체투자 붐을 타고 해외 오피스 등에 후순위 투자를 했던 물량도 적지 않아 언제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롱테일 리스크’를 안고 있다.

유안타증권 금융담당 정태준 연구원은 “내년 증권사들은 브로커리지에서의 방어, 트레이딩에서의 반등, IB에서의 부진을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정 연구원은 “브로커리지 부문에서는 투자자 예탁금과 거래대금, 신용잔고 모두 2022년 말 기록했던 저점 수준까지 하락해 조정이 일단락할 것”이라며, “트레이딩은 주식과 채권시장의 반등과 함께 회복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IB부문은 신규 사업의 감소로 부진한 모습이 이어질 것”이라며, “보유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23일 70주년 기념식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고착화와 재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투자산업과 자본시장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투자산업이 세계를 무대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대한민국 성장엔진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금융투자업계는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상생 금융을 실천하고 국민 여러분의 신뢰 속에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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