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투자 시스템 작동 철저한 검증 필요"
신사업 분야 투자 확대 속 리스크 관리 관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SK그룹 CEO 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SK그룹 CEO 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글로벌 경기 불황이 심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투자에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최태원 회장의 결단력으로 신사업 분야에서 M&A(인수·합병)로 빠른 성장을 이뤄온 SK그룹 역시 투자 신중론에 들어간 분위기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 M&A와 관련해 올해 3분기 완료 기준 법률 자문 거래 규모는 24조9859억원으로 전년 동기(43조1778억원) 대비 42% 급감했다. 같은 기간 거래 건수도 190건에서 107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경기 불황으로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이 M&A 투자에 주춤한 모습이다.

이 가운데 공격적인 M&A로 성장해 온 SK그룹도 투자에 신중해지고 있다. 그룹을 이끌던 반도체 불황의 타격이 심화하면서 투자를 더욱 신중히 전개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지난달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K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최 회장은 "투자를 결정할 때 매크로(거시환경) 변수를 분석하지 않고 마이크로(미시환경) 변수만 생각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투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투자를 주문했다.

애초 SK는 1980년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에 이어 2012년 SK하이닉스까지 '3대 빅(big) M&A'를 통해 재계 2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계열사 수 1위에서 알수 있듯 다른 기업보다 활발한 M&A를 진행해오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 인수 직후 3조9000억원, 지난해 19조7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반도체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이룬 동시에 글로벌 탑티어 회사로 발돋움했다"며 "이를 통해 SK가 BBC(바이오·배터리·반도체) 등 그린·첨단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넓이는 질적 확장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최근 대내외적 변수와 경기 불황이 닥치면서 M&A로 사들인 사업·지분들이 그룹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그룹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현재 SK그룹은 미국 플러그파워와 솔리다임 등 신사업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보고 있다.

SK그룹은 2021년 미국 수소 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에 1조6000억원을 투자하며 당시 주당 29.29달러로 총 5140만주를 확보해 최대 주주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플러그파워는 지난 3분기 실적 쇼크와 유동성 위기 등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한때 70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현재 3달러대다.

SK하이닉스가 2020년 10조3000억원에 인수한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솔리다임은 더욱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인수 이후 통합 과정에 따른 막대한 비용 투입과 반도체 시장 한파 등이 겹치면서 지난해 3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D램과 달리 낸드 업황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으로, 회복 시점도 미지수다.

신호용 NICE신평 책임연구원은 "반도체 부문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거나 배터리 부문의 사업안정화 지연 등으로 그룹의 채무상환능력 저하가 심화하면 SK그룹 전반의 신용도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SK그룹은 최 회장의 주문에 따라 신중하고 확실하게 신사업 분야에 투자하는 동시에 리스크(위험) 관리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세계 최대 재활용 플라스틱 단지인 울산ARC(첨단 재활용 클러스터)의 기공식을 마친 SK지오센트릭은 M&A보다는 사업의 안착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현재로서 IPO(기업공개)는 물론 국내외 리사이클 기업에 대한 M&A 계획도 없다"며 "일단은 울산ARC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계열사는 여전히 신사업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반려동물 플랫폼 스타트업 비엠스마일에 280억원 투자 집행을 완료한 SK네트웍스가 대표적이다. 비엠스마일의 지분율 10%를 확보해 2대 주주로 올라섰는데, 어려운 상황에 이뤄진 투자인 만큼 반려동물 시장의 산업 성장성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현재 그룹이 맞닥뜨린 경영환경에 대해 긴장감을 갖고 관리에 나서고 있다"며 "(최 회장의 주문은)투자의 속도조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신사업에 보다 신중하면서도 확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