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공급 늘고 증권사 랩·신탁 등 자금 수요 증발
채권 금리 급등에 CP발행 늘어…PF-ABCP까지 도미노 영향

기업들이 돈맥경화를 겪는 가운데 CP 시장이 수급이 꼬여 금리가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돈맥경화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단기자금 주요 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 시장에 기업들이 몰리고 주요 수요처인 증권사들의 랩과 신탁이 건전성 논란에 휩싸이며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며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가 수급이 꼬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CP시장과 연동된 부동산 PF-ABCP시장까지 연쇄 우려가 나타나는 상황이다.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초 3.990%였던 CP 91일물 금리는 이달 27일 기준 4.290%를 기록하며 최근 약 두 달간 30bp 상승했다.

10월에 휴일이 많아 영업일이 적었던 점을 고려하면 CP 금리 상승세는 가파르다. 유사한 초단기물인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도 지난달 10bp 이상 상승했지만, 이달 6일부터는 3.820%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가 된다.

CP금리의 이상 급등에는 증권사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신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CP투자에 나서지 않는 것이 주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증권사들은 단기 투자 상품인 채권형 랩·신탁 계좌에 유치한 자금을 장기채권과 CP 등에 편입·운용하는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활용해오다 지난해 예상치 못한 금리 상승과 레고랜드발 디폴트 우려 등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했다.

이들은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내부 계좌를 이용 손실난 계좌에서 매도에 나서고 다른 계좌에서 이를 사들이는 ‘자전거래’를 했다는 의혹으로 지난 5월부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 결과 증권사들의 랩과 신탁 계좌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서 CP 수요가 사라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의 채권 담당 매니저는 "비단 CP뿐만 아니라 카드·캐피탈채도 전체 발행 물량의 30% 정도를 랩·신탁에서 샀는데 수요 자체가 없어 발행을 못 할 정도"라며 "CP는 특히 랩·신탁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채보다 컸는데 갑자기 수요가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채권 금리 급등으로 채권을 통한 자금 공급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CP 발행으로 눈을 돌려 CP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든 것도 CP금리 급등의 원인이 됐다.

CP금리 상승은 단순히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있다.

CP·CD금리에 가산해 책정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금리까지 연쇄적으로 올라 만기가 된 PF-ABCP 물량이 차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1년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PF-ABCP는 PF 사업 자금조달을 위해 시행사에 대한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통상 3개월 만기의 기업어음이다.

다만 이런 상승 추세는 조만간 해소될 수 있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CP 시장은 유통시장이 발달한 시장이 아니고 발행시장 위주로 다양한 주체가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후행해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며 "미국 중장기 채권 금리가 올라가 CP가 그를 따라가는 국면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하면 한국전력·은행채 발행이라든지 문제가 많이 해결돼서 작년에 유동성 지원하듯이 유동성 기구를 다시 발동할 상황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자금시장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으며, 시장전문가들과의 회의를 수시로 개최하는 등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