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연구소, 보험, 증권 섭렵 ‘리스크, WM 전문가’
증권사 최초 여성 CEO…양종희 회장 내정자 선택 받을까?

KB금융 내 최고의 WM전문가 KB증권 박정림 사장. 최초의 여성 증권CEO다. KB증권 제공.
KB금융 내 최고의 WM전문가 KB증권 박정림 사장. 최초의 여성 증권CEO다. KB증권 제공.

금융회사는 세련된 이미지와는 별개로 유독 여성들에게 두터운 유리천장이 드리워져 있다. 고객의 자산을 책임지는 일을 여성이 맡는 것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여성이 금융회사 임원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기사감’이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ESG경영을 외치며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적(Social) 이슈에 대한 관심 제고의 과정에서 성(Gender)에 무관한 공평한 기회의 장이 열리자 금융권에 C레벨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 선구자들을 따라가본다.<편집자 주>

“과거엔 기업금융 일변도였지만 저축이 늘고 금융자본이 쌓이면서 최근 10여년은 개인 부문이 확대됐습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개인 부문에 단단한 뒷받침이 있어야 버틸 수 있습니다. 글로벌 상업은행(CB)들이 WM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9월 25일 CEO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8월 KB금융 차기 회장을 뽑는 1차 숏리스트 6명 중 내부인사 4명에는 KB금융 부회장 3명과 KB증권 박정림 사장이 이름을 올렸다. 유일하게 부회장이 아니면서 동시에 여성이며, 안팎의 여러 이슈를 뚫고 박 사장의 이름이 거론되자 박정림 대표에 대한 평가가 다시 한번 일어났다. 도대체 박 대표는 어떤 사람이길래 차기 회장 후보에까지 이름을 올린 것일까?

박정림 대표는 언뜻 평범한(?) 모범생의 길을 걸어온 사람처럼 보인다.

63년 생으로 서울 영동여고, 서울대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체이스맨하탄은행, 조흥은행경제연구소, 삼성화재, 국민은행 부행장을 거친 리스크관리 및 WM(자산관리) 부문 전문가가 박 대표의 겉으로 드러난 삶의 궤적이다. 굳이 찾자면 여의도를 오랫동안 이끌어온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 멤버 중 한 명이라는 정도가 특이점이다. NH투자증권 정영채 대표나, SK증권 김신 대표 등이 동기동창이다.

박 대표는 2019년 국내 최초의 여성 증권사 CEO, 그것도 60개나 되는 증권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대형IB(투자은행) 대표가 됐다. WM, S&T(기관세일즈·파생상품거래·자기자본 운용), 경영관리를 총괄하는 각자대표다. 동시에 그룹 자본시장부문장이면서 KB금융지주 총괄부문장을 겸임하고 있다.

KB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달 윤종규 회장을 이을 차기 주자로 양종희 부회장을 선택했다. 당초 국민은행장을 지낸 대통령의 과 후배가 유력하지 않겠냐는 외부의 예상을 벗어난 결과였다. 비은행 부문의 강화와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라는 그룹의 소임을 완수할 적임자가 선택됐다. 윤종규 회장도 지난 달 CEO간담회에서 현재 은행과 비은행의 비중 6:4보다 비은행의 비중이 더 커질 거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비은행 부문의 핵심에는 KB증권과 KB손해보험이 양대 축이다. 푸르덴셜생명에서 이름이 바뀐 KB라이프(생명보험)도 향후 제 몫을 해내겠지만 아직 M&A 이후 PMI(사후 통합) 작업이 더 필요하다.

박 대표가 맡고 있는 KB금융그룹의 자본시장부문장은 판매채널로서 고객의 접점에 있는 KB증권의 WM사업도 총괄해야 하지만, 새로운 상품 공급을 통해 엔진 역할을 해야 할 KB자산운용의 성장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안고 있다. 특히 윤종규 회장의 말처럼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갈 경우 기업들의 부실로 조직의 체력이 약화될 때 개인 고객들의 힘으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는 숙제도 맡고 있다.

이와 같은 무거운 책임의 자리에 단순히 ESG경영의 일환으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여성 대표 한명을 선발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언뜻보면 박 대표는 현대증권이 2016년 KB금융그룹에 인수되고 기존 KB투자증권과 합병해 KB증권으로 한참 안정화된 다음인 2019년에야 발을 담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2016년부터 지주 WM총괄부사장을 맡고 있었고 현대증권 인수 과정부터 지켜보며 2017~2018년까지는 KB증권 WM부사장직을 겸직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WM그룹 총괄 부행장을 겸한 행보였다.

국민은행 WM부행장으로서의 업적은 어찌보면 크게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은행이라는 촘촘한 체계와 구조(Infrastructure)가 짜여진 곳에서 개인기를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부행장들과의 경쟁과 견제도 만만치 않다.

KB금융 관계자는 “윤종규 회장은 본인 스스로가 KB출신이 아니었던 만큼 학력이나 배경 보다는 실력 중심의 인사를 했다”며, “박 대표는 천재형 CEO에게 인정받을 만큼 꼼꼼함과 실력으로 무장하고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전문가로서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그런 박 대표의 단담함은 어찌보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다양한 조직을 오가며 쌓은 내공에서 나온다.

학창시절 수학을 좋아했다는 박 대표는 외국계 은행인 체이스맨하탄에서 본인의 주특기가 된 리스크관리를 배웠지만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뒤로 하고 결혼과 육아를 하며 경단녀(경력단절녀)의 시간을 가졌다.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써봤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 컨설팅회사 조사역 등에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한 끝에 조흥은행경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삼성화재에서 리스크관리를 담당했다. 이때 당시 증권사 출신의 국민은행장인 김정태 행장의 눈에 들어 KB국민은행 시장리스크부장으로 2004년도에 스카우트된다.

KB증권 관계자는 “국내외 은행, 보험, 연구소, 증권사를 거치며 리스크를 관리하고 고객을 상대하는 WM전문가로 성장하면서 변동성과 부침이 큰 자본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노하우를 획득했을 것”이라며, “현대증권의 색깔을 벗고 KB금융의 우산 아래서 그룹과 시너지를 내며 고객을 확대할 수 있는 과정에 박 대표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에 그룹의 신임과 연임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박대표에게 또 한번의 시련은 남아있다.

금융당국이 올 들어 일단락 난 것으로 보였던 사모펀드 사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다. 올해 말 임기가 종료되는 박 대표 입장에서 본인의 임기 중 일어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리스크에 대해 금융당국의 제재가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향후 거취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 달 간담회에서 “계열 CEO들을 육성하는 것은 내 역할이나 이들을 (계속) 쓸지 말지는 차기 회장이 결정할 문제로 육성과 선택은 다른 문제”라며 자신의 책임과 권한에 선을 그었다.

윤 회장의 복심이라 불리는 양종희 내정자가 주총 승인을 거쳐 정식 회장에 선임된 후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초대 증권사 여성 CEO의 운명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