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울려펴지는 고금리 장기화 전망…정기예금 4% 복귀
당국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빌려라”…소 귀에 경 읽기

지난 22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자본시장연구원 개원 26주년 컨퍼런스에서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안정화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장석진 기자)
지난 22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자본시장연구원 개원 26주년 컨퍼런스에서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안정화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장석진 기자)

미국의 고금리 유지 정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은행들의 여·수신 금리도 덩달아 상승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출 금리 상단이 7%를 넘어 전년 말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중인 가운데 자금 수료 확대로 수신 금리고 오르고 이것이 다시 여신 금리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차주들이 빚투에 나서면서 이달에만 1조원 넘게 늘어나는 등 대출이 줄지 않는 기 현상으로 차주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21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개인 신용도에 따른 우대금리 반영시 연 3.900∼6.469% 수준이다.

8월 말(연 3.830∼6.250%)과 비교해 이달 들어 상단이 0.219%pt, 하단이 0.070%pt 높아졌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만기 1년·연 4.560∼6.560%)도 20여일 만에 상·하단이 0.140%pt씩 올랐다. 같은 기간 두 금리가 주로 지표로 삼는 은행채 5년물, 1년물 금리가 각 0.170%p(4.301→4.471%), 0.140%p(3.901→4.048%) 상승한 영향이다.

은행채 금리는 최근 미국과 한국 긴축 장기화 전망과 은행채 발행 물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꾸준히 올랐고, 지난 20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실제로 '매파적(긴축 선호)' 기조가 뚜렷해지자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지는 추세다.

이들 은행의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270∼7.099%로, 지난달 말보다 상단은 0.130%p 올랐지만, 하단은 오히려 0.030%p 떨어졌다.

하단의 하락은 변동금리의 주요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가 0.030%p(3.690→3.660%) 낮아졌기 때문이고, 상단의 상승은 변동금리에도 코픽스가 아닌 시장금리를 반영하는 일부 은행의 조정에 따른 것이다. 결국 최근 시장금리 상승으로 은행 금리 최고 수준이 7%대를 넘어선 결과로 나타났다.

최고 금리가 7%를 넘은 한 은행의 현재 금리(7.099%)는 지난해 12월(7.603%) 이후 약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대출금리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기준금리(3.50%) 밑에 머물던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도 다시 4%대로 반등하는 상황이다.

시장금리가 상승 여파에 작년 하반기 연 5%대 높은 금리로 받아 놓은 정기예금 만기 도래에 따라 이 자금의 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은행연합회 소비자 포털에 따르면 현재 19개 은행의 정기예금 상품 가운데 최고 우대금리가 4.00%를 넘는 것은 SC제일은행 'e-그린세이브예금'(4.20%), 전북은행 'JB 123정기예금'(4.20%), 제주은행 'J정기예금'(4.10%) 등 모두 10개다.

NH농협은행 'NH올원e예금'(3.95%),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3.95%),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3.92%), KB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3.90%), 하나은행 '하나의 정기예금'(3.90%)을 비롯한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최고 금리도 4%를 노크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글로벌 긴축 분위기에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될 거라는 전망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를 동결(5.25∼5.50%)했지만 향후 경제전망을 낙관하며 지난 6월 제시했던 내년 금리 인하 폭(100bp)을 50bp로 축소하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시중금리(채권금리)는 급등하고 주식시장은 성장주 위주로 급락하며 공포에 빠졌다.

이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진행된 자본시장연구원 개원 26주년 기념 컨퍼런스에 축사자로 나선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2008년 이후 저금리 기조에 익숙해져 있지만 큰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긴축과 고금리의 시대가 왔고 이는 당초 예상보다 오래 지속돼 향후 금리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채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고, 가계부채의 양적, 질적 관리에 만전을 기해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금리의 향방은 금융 당국의 규제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구조적인 금리 상승 흐름에 은행권에 대한 수신 경쟁 자제 당부, 차주들의 대출 의지 꺾기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가 관건이다.

지난 21일 미국의 FOMC 결과로 향후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확인된 후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정부는 고금리 예금 만기 도래에 따른 수신 경쟁 가능성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수신 강화를 위해 예금 금리를 높이고 또 다른 조달 수단인 은행채 발행을 늘려 은행채 금리까지 오르면 경쟁력을 잃은 다른 수신 금리와 채권금리를 모두 상승시키게 된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돈맥경화’에 걸려 조달금리를 높이고 자금의 효율성을 악화시켜 궁극적으로 기업경쟁력 하락, 고용 악화, 경기 침체 등 전방위적인 부정적 파급 효과를 만든다.

대출 금리의 경우,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증가 억제를 주문하면서 현재 각 은행이 내부적으로 가산금리 확대 등을 통해 대출 금리를 추가로 올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때는 예대마진 공시까지 하게 하며 대출 금리를 낮출 것을 창구지도하던 당국이 대출 금리 상향까지 검토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결국 시장의 자율성을 뺏고 당국이 개입해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단순히 1~2년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가 될 수 있어 공포감이 더하고 있다.

지난 22일 진행된 자본시장연구원 26주년 컨퍼런스에서 발표자로 나선 강현주 연구원은 “국내 노동인구비율 감소는 물가상승을 야기하고, 고령인구비율 증가는 물가 하락 요인인데 노동인구 감소의 영향이 고령인구 증가를 상회하는 상황이라 결국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저물가 기조가 종료되고 물가 변동성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며,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구조적 비용 상승 압력이 추세 인플레이션 상승을 유발하고 현재 진행중인 탈 세계화로 인플레이션의 경기 민감도도 확대되면 국내 금리 기조가 과거와 같은 저금리 수준으로 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9월 FOMC에서 매파적인 기조가 이어지자 한국은행도 곤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동안 한미 금리차가 2%로 벌어졌음에도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고려 이를 내버려둔 결과 원/달러 환율이 계속 오르는 원화 약세를 버텨왔지만 더 이상 이를 방치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금리에 손을 대기 보다 개인들에게 부채 증가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4일 기자 간담회에서 "금융 비용이 한동안 지난 10년처럼 거의 0%, 1∼2% 정도로 낮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하며 (부동산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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