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3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3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율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배터리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보다 많은 배터리가 신속히 조달돼야 하는 상황으로, 향후 수요를 대비해 직접 배터리를 설계·생산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폭스바겐,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체 배터리 공급망을 조성해 수급 불안 해소와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동차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는 만큼 전기차 분야에서는 사전에 대비하려는 모습이다.

이에 배터리도 반도체처럼 위탁생산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완성차 업체가 설계를 맡는 '팹리스'가 되고 배터리 업체가 위탁생산을 하는 '파운드리'가 되는 방식이다. 

앞서 지난 5월 배터리를 반도체처럼 위탁생산하는 '배터리 파운드리' 사업이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배터리 반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방식으로, JR에너지솔루션이 첫 시도했다.

JR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음성에 스마트전극 1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음성 용산산업단지 2만4000평 규모 부지에 총 3개 공장을 지어 전극 공정을 위탁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JR에너지솔루션이 음성 공장에서 양·음극 활물질을 알루미늄박과 동박에 코팅해 압연한 후 자르는 슬리팅 공정을 거친 양극판과 음극판을 고객사에 공급하면 고객사는 원하는 형태로 잘라 조립하고 활성화하는 공정만 진행하면 되는 구조다.

이같은 배터리 위탁생산은 배터리 양산 경험이 적거나 새롭게 배터리 제조에 뛰어든 업체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데,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첫 발걸음이라는 반응들이 나온다.

특히 완성차 업체가 직접 배터리 공급망을 갖추고 조달한다면 가격면에서도 방어가 가능해진다. 본래 전기차 가격의 40%가 배터리 가격으로, 낮은 가격으로 배터리를 공급받는게 완성차 업체의 숙제였다.

현대차 역시 올해 하반기 자체 설계 배터리를 탑재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출시할 계획으로, 설계를 직접하고 생산은 위탁으로 진행한다.

현대차가 자체 설계한 배터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 계열로, 니켈 함량을 높여 주행거리를 늘리는 방식이 사용됐다. 현대차는 소재 검증부터 적용 비율을 포함한 사양 확정 및 설계, 제품 평가와 성능 개선까지 핵심 과정을 직접 맡았으며, SK온에 위탁생산을 맡긴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앞으로 10년 동안 9조5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 기술을 확보할 방침이다. 현재 산학협력을 비롯해 여러 배터리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미국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와 협업을 진행 중이다. 향후에는 배터리도 직접 생산하기 위해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과 합작법인(JV)를 세우고 2028년 이후부터는 배터리 소요량의 70% 이상을 JV를 통해서 조달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발빠르게 나선 상태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배터리 생산 자회사 '파워코'를 설립하며 배터리 생산에 착수했다.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 240GWh 규모의 배터리 셀 생산공장 6개를 세우겠다는 목표로, 파워코는 내부 계약으로 2년 동안 셀 수급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벌써 자체 배터리 양산 단계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1000만번째 4680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전기차 시장 진출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 도요타도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와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직접 설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도요타는 현재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1300여 건 보유하고 있으며, 10분 충전으로 1200km 이상 주행 가능한 수준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는 기업이니 만큼 탑재되는 엔진인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배터리의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율) 문제나 대량생산 가능성, 기존 특허를 피한 신기술 개발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은 탓이다.

LG에너지솔루션으로 배터리 사업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LG 역시 지금의 배터리 물량을 생산해내기까지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바 있으며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온도 최근에서야 수율이 안정화됐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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