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탄소중립 실현 방향을 담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고 대국민 의견수립을 진행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탄소중립 실현 방향을 담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하고 대국민 의견수립을 진행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목표로 정한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산업 등 사회 각 분야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5일 공개됐다. 오는 2050년까지 석탄·LNG 발전을 전부 중단하거나 최소화하고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려 2018년 기준 6억8630만t에 달하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50년까지 96.3∼10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이날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3개 시나리오 초안을 제시했다. 시나리오에는 전환(에너지), 산업, 수송,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등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주요 부문의 감축 계획이 담겼다.

탄소중립위의 시나리오 1안이 이행되면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1540만t으로 2018년에 비해 96.3% 줄고, 2안의 경우에는 97.3% 감축된 1870만t의 온실가스만이 배출된다. 3안은 온실가스 순배출량 0, 이른바 '넷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선 시나리오 1안은 석탄·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등 기존 에너지원을 일부 활용하면서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등 친환경 기술을 적극 활용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8년보다 96.3% 줄이는 게 핵심이다. 2050년까지 수명을 다하지 않은 석탄발전소 7기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석탄발전 비중을 현재의 41.9%에서 1.5%로, LNG발전 비중을 26.8%에서 8.0%로 줄이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를 5.6%에서 56.6%로, 연료전지를 0.3%에서 9.7%로 늘린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2억6960만t에서 2050년 4620만t으로 82.9%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시나리오 2안은 석탄발전은 완전히 중단하되, LNG발전은 에너지 불안정을 대비해 유지하는 내용이다. 대신 재생에너지(58.8%), 연료전지(10.1%)의 활용을 끌어올리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3120만t으로, 88.4% 감소된다.

시나리오 3안은 석탄, LNG와 같은 화석연료를 활용한 발전의 전면 중단을 통해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전력 공급의 대부분인 70.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수소터빈, 암모니아 발전과 같은 무탄소 신전원의 비중을 21.4%로 대폭 확대해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3가지 시나리오에서 원전 비중은 6.1%∼7.2%로, 2018년의 23.4%보다 크게 줄지만, 시나리오별 차이는 크지 않다.

탄소중립위는 또 철강업의 경우 기존 고로를 모두 전기로로 전환하고, 석유화학·정유업의 경우 전기가열로 도입, 바이오매스 보일러 교체를 통한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목표료 내놓았다.

수송 부문에서는 전기·수소차 보급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3가지 시나리오마다 목표치는 차이가 있지만, 전기·수소차와 같은 무공해차가 전체 차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50년까지 76∼97%로 늘림으로써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88.6∼97.1% 감축한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그린리모델링 확산·제로에너지빌딩 인증대상 확대·개인간 잉여전력 거래제 도입(건물) ▲영농법 개선·식단변화 및 대체가공식품 확대(농축수산) ▲1회용품 사용 제한·재생원료 사용(폐기물) 등을 통해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해 나간다는 내용도 있다.

아울러 탄소중립위는 산림 등의 온실가스 흡수량이 2050년에 줄어들 것으로 보고 강화된 산림대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온실가스 활용 기술인 CCUS에 대한 투자를 통한 온실가스 흡수량 증대도 제안했다.

산업계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취지와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실제 추진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 약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나리오의 현실성이 떨어져 실행 단계에서 정부의 지원과 제도적 보완, 속도 조절이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산업계는 우선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업계 트렌드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같은 방향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주요 기업들은 일제히 각사별 탄소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며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동참하고 있다. 다만 시나리오에 제시된 기술이나 필요한 시설 등에 대해서는 준비가 미비하고 비용 부담 등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선행되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가 공개한 3개의 시나리오 초안 중 석탄과 LNG 발전 중단을 담은 시나리오 2안과 3안은 독립적인 계통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석연료의 전면 중단보다는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포집·활용·저장(CCUS)하는 기술개발을 확대하고 포집된 탄소의 해외 저장소 이동을 위한 국가 간 협력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탄소배출이 많은 정유, 석유화학 업계는 석탄·LNG 발전 등 기존 에너지원을 일부 활용하면서 CCUS 등 친환경 기술을 적극 활용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18년보다 96.3% 줄이는 시나리오 1안이 그나마 가장 실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업계 현실을 고려하면 그마저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자동차 업계는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차 보급 확대는 이미 추진 중인 사업 목표로 대규모 경영 전략 수정 등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다만 정부는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시점 등은 별도로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전체 차종에서 전기·수소차와 같은 무공해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2050년까지 76∼97%로 늘린다고 밝힌 만큼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 전기차 56만대 판매를 목표로, 2040년까지 유럽, 미국, 중국 등 핵심 시장에서 제품 전 라인업을 전동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국내 시장에서도 전동화 라인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초 출범한 '전기·전자 탄소중립위원회'에 동참하며 탄소중립 동참 의지를 표명하고 탄소감축·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소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포스코그룹, 효성그룹 등은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소기업협의체' 설립을 추진 중이며, 국내 대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단체들도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과 관련해 탄소중립 방향은 공감하면서 과도한 감축목표와 불명확한 이행방안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논평에서 "국제사회의 기후 위기 대응 노력에 동참하고 기후 변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한다"면서 "하지만 산업 부문 감축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산업 부문은 205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80%를 감축해야 한다"며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무리한 목표를 설정할 경우 일자리 감소와 국제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위원회가 감축 수단으로 제시한 탄소 감축 기술이나 연료 전환 등의 실현 가능성이 불명확하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전경련은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은 원전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라며 "우리나라도 전환 부문 계획에 원전 확대 방안을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부연했다.

대한석유협회도 논평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 "연료전환과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CCUS) 등 미래기술 개발과 상용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불확실성도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대로 이행시 가동률 감소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면서 "무리한 감축보다 국익과 여건에 맞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탄소중립(넷제로)

반대로 환경단체들은 "탄소중립 달성에 실패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나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논평을 내고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3가지 시나리오는 대단히 제한적인 전제조건에서 도출된 전망이고 불확실한 이행 수단도 상당 부분 포함돼있다"면서 "여전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망인 1·2안에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한 것 자체가 탄소중립위의 빈약한 실력을 증명한다"고 꼬집었다.

환경연은 "수치상 탄소중립 달성에 성공한 3안도 어느 시점에 화석연료에 기반한 발전소·수송 수단이 퇴출당하는지 불투명하다"라며 "시나리오는 하나의 '시나리오'로 남기고 다양한 전제조건을 토대로 시민이 결정할 수 있는 공론장을 재구성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에너지정의행동도 "시나리오 초안을 보면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며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로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나리오에는 중간 목표와 과정이 없어 2030년까지 감축목표도 없다"며 "핵발전과 CCUS(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 등 위험하고 불확실한 대안도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는 "신규 석탄발전기를 존속하고 석탄 발전을 유지하겠다는 시나리오 1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며 "탄소중립위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한 확실한 신호를 제시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 아닌지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위는 이번에 제시한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다음달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다. 일반 국민의 의견을 듣기 위한 탄소중립시민회의도 오는 7일 출범한다. 최종안은 탄소중립위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0월 말에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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