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을 열라는 정치권과 곳간을 지키지 못할 때 더 큰 위험이 올 수 있다는 재정당국의 줄다리기가 4월 보궐선거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팽팽하다. 그 사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불황 경기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애타는 피눈물은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며 주렁주렁 차디찬 고드름이다. 민생을 살려야 나라가 있고, 곳간도 채울 수 있다. 지금은 꼭 써야 할 곳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동시에 혈세가 줄줄 새는 곳이 없는지, 빈 곳간을 채울 수 있는 묘책이 없는지도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라빚을 줄이는 혜지는 세금도둑을 잡아내고, 세금도둑의 편에 선 공범이 자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을 재정비, 조세정의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로 모아져야 한다. <편집자 주>

<글 순서>

1. 사리사욕 채우는 의원 입법

2. 탈세 온상 상품권 

3. 원칙 어긴 재산소득 과세제도

4. 리베이트 천국 '세금도둑 마피아'

5. 기는 세무행정…나는 세금 도둑

6. 주택과세, 제대로 해라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민소득의 30%이상을 세금으로 징수하고 있고, 북유럽 복지선진국들은 50% 수준에 달하고 있다. 세금은 경제주체가 부담하는 비용 중 단일 계정과목으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세제도란 이론적 배경도 중요하지만, 현실 경제활동과 밀집하게 관련돼 있어 실무적인 적용 가능성이 매우 중요하다. 세제가 바뀌면 시장 경제질서가 새롭게 형성된다. 따라서, 관련 공무원들은 세제를 변경할 경우 사전적으로 치밀하게 시장참가자들의 예상되는 행동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세제 입안 관련 공무원들의 현장 감각은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제실 공무원들의 무딘 현장 감각 때문에 경제 질서가 왜곡되는 대표적인 사례를 짚어보기로 하자.

재활용 자원 의제매입세액 공제한도 축소

재활용폐자원 의제매입세액 공제제도란 고물상 등이 세금계산서를 발급할 수 없는 자 등으로부터 재활용폐자원을 취득해 이를 공급하는 경우 일정 금액을 매입세액으로 공제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이다.

고물상이 의제매입세액 공제를 받으려면, 부가세 신고 시 폐자원 거래 내역을 요약해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물상 사업자들은 사업자들은 평상 시 날짜별로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이들로부터 매입한 재활용품 종류와 금액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폐지 줍는 노인들은 정부의 각종 복지혜택이나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우려해 신원 노출을 꺼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고물상의 재활용자산에 대한 의제매입세액 공제제도는 변칙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소득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현장에서 고물상에게 부과된 납세협력의무를 순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고물상이 부가가치세 신고를 할 때 첨부하는 의제매입세액 공제 관련 자료는 사후적으로 억지로 꿰맞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기재부 세제실은 제도의 활용이 부진하다는 사유로, 1994년 말까지 108분의 8로 적용돼 왔던 재활용자원 의제매입세액 공제율을 점차적으로 축소해 현재는 103분의 3을 적용하고 있다.

16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하루 100㎏ 정도의 폐지를 힘들게 수거하더라도 고물상의 중간 마진을 빼면 손에 쥐는 건 고작 5,000원 안팎에 불과하다. 고물상 등에 대한 의제매입세액 축소는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재활용자원 매입단가 인하로 이어져 폐지 줍는 노인들의 살림살이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제도 활용이 부진해 의제매입세액 한도를 축소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제도활용이 부진하다고 판단했다면, 한도를 늘려주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납세협력의무 순응이 어려운 현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어,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의제매입세액 한도 축소와 관련해 세제실 공무원들이 고물상 업자들로부터 단 한 번이라도 현장에서 납세의무 이행과 관련된 애로사항을 청취해봤는지 묻고 싶다. 실무적으로 이행하기 어려운 세제는 기형적 거래를 불러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세제실 공무원들이 책상머리 행정이라는 비판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현장 감각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국세청 공무원들도 세법 개정과 관련해 실무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세제실 직원들과 소통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국세청과 공조해, '조세-고용보험 소득정보 연계 추진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특수형태 근로자(특고)의 실시간 소득정보파악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무적 운용실태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고물상의 재활용 자원 의제매입세액 공제제도는 저소득층의 소득파악이나 각종 복지 예산 집행의 형평성 제고 등과 맞물려 있는 까닭에 TF는 현장 중심의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프로와 아마츄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과오를 빨리 인정한다는 점이다. 억측 주장만 늘어놓다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허점투성 부가세(VAT) 매입자 납부제도

조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1년 기준 부가부가가치세(VAT) 갭이 11조여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부정환급 또는 폭탄업체 등에 의한 VAT 탈루 등의 조세회피금액은 약 7조 8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2011년 '비과세 감면제ㅗ 저비를 통한 세수확보방안' 연구보고서.
조세연구원의 2011년 '비과세 감면제 정비를 통한 세수확보방안' 연구보고서.

2005~2006년 기간 중 유럽에서는 조세포탈범들이 회전목마 수법의 사기거래인 캐러셀(Carousel) 방식으로 활용 최대 148억 유로(한화 약 20.7조원 규모)에 달하는 거액의 VAT를 포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캐러셀이란 주인이 짐을 찾아갈 수 있도록 공항 출국장에 설치된 빙빙 돌아가는 장치를 말한다. 무역거래를 통해 반복적으로 부가가치세를 포탈하기 위한 수법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006년 5월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은 이러한 재정사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논의를 했다. 오랜 숙고 끝에 EU 회원국들은 VAT 포탈 가능성이 높은 재화나 서비스를 대상으로 VAT 매입자 납부제도(Reverse Charge of VAT)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의 캐러셀 방식과 동일한 수법으로 거액의 VAT를 부당 환급해가는 재정사기 사건이 발생했었다. 금(金)을 홍콩으로 수출해 영세율을 적용받고 매입세액을 부정한 방법으로 환급받아 갔던 것이다. 당시 국세청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6~2007년간 당시 전체 VAT징수액의 약 10%에 해당하는 4조원 규모의 부가가치세를 포탈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2008년 7월부터 금 사업자 VAT매입자 납부제도 시행하고 있다.

이후 동일한 수법으로 동(銅) 스크랩을 이용해 부가가치세를 포탈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는 2014년 1월부터 신한은행을 통해 동스크랩사업자 VAT매입자납부제도 시행했다. 이어 철(鐵) 스크랩을 이용한 조세포탈현상이 발생하자, 2016년 10월부터 기업은행 등 7개 은행을 통해 철 스크랩 사업자 VAT 매입자 납부제도를 시행했다. 언제나 뒷북 행정으로만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들 조세 사기범들은 다른 아이템을 활용해 현재 막대한 부가가치세를 포탈해 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유사한 방식의 부가가치세 포탈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동 제도를 전(全) 산업에 적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기재부는 룸싸롱만을 대상으로 VAT 매입자 납부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기는 세무 행정…나는 세금 도둑 (연합뉴스)
기는 세무 행정…나는 세금 도둑 (연합뉴스)

부가가치세는 간접세제이기 때문에 납세자와 담세자가 다르다. 캐러셀 방식이란 사업자가 매출 세금계산서를 교부하였지만 세액을 납부를 하지 않고, 매입세액을 환급 받아먹고 도주하는 수법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조세사기범의 부가세 탈루와 체납을 막기 위해 2013년 '증세없는 세수홥고 방안'을 마련, 세금납부 주체를 사업자에서 소비자로 바꿀 경우에 5년간 발생할 국세감면액 150조원의 10%를 줄여 15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재 룸싸롱 이외에는 유야무야 상태다.

현실 동떨어진 기재부 세제실 

국세청은 이러한 세제상의 허점을 이용해 부가가치세를 도둑질해가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일선 세무서의 실무자들이 바지사장을 앞세워 금, 동스크랩이나 폐철을 이용해 수천억원의 현금을 동원해 천문학적 규모의 조세를 포탈해도 국세청은 사전에 감지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바지사장을 앞세워 전자상거래 시장을 통해 덤핑으로 구입한 상품을 팔고 도주해도 국세청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 현물거래없이 세금계산서만 팔아먹고 도주하는 세금폭탄 업체도 사전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다. 노래방이나 포장마차는 주류소매판매 허가를 받지 않고 버젓이 주류 판매를 하고 있다는 점은 허위 세금계산서 거래가 주류 유통업계에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점이 고객으로부터 결제받은 금액 중 부가가치세 상당액을 국세청이 납부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경우에도 국세청은 사전적으로 부가가치세 체납을 예방할 수단이 없다. 이런 현상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사태를 방치하는 것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직무유기다.

부가가치세제는 사업자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해 고객으로부터 징수한 국가 몫의 부가가치세를 법에 따라 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는 가정하에 운영되는 세제이다. 하지만, 사업자가 탈세의도를 가지고 불법행위를 저지르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폐업 등의 사유가 발생해 부가가치세를 정상적으로 납부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업자의 선관자라는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현행 국세청 부가가치세 사무처리 규정에 따르면, 악의적 조세포탈행위 등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현장확인 등의 절차를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런 절차만 제대로 준수돼도 어느 정도의 사전 예방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일선 세무서의 방대한 업무량 등을 감안할 때 이런 조치를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금, 폐동 또는 철 스크랩을 통한 부가가치세 포탈 사건들을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일선 세무서 담당자의 협조 또는 방조가 있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지 않은 수 없다. 많은 업무량 때문 이라는 핑계 뒤에 악의적 뒷거래가 숨을 여지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제도 도입과 관련된 토론회 자리에서 기획재정부 세제실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전면적인 도입에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관련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실무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부가가치세 탈루 실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EU는 회원국 별로 각기 다른 세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채택한 방식을 부러워하면서도 도입할 수가 없다. 이런 사유로 제도 도입과 관련해 다른 나라가 도입한 사례가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현실적으로 세정상 수작업으로 부가가치세 탈루현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없다면, 부가가치세 매입자 납부제도(Reverse Charge of VAT)를 전면적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부가가치세 매입세액 환급은 납부한 매출세액 범위 안에서만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부가가치세 포탈 현상은 원초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늘어나는 복지 재정수요 감당을 위해 국채발행이 늘어나고 있어 재정건전성 문제가 중요한 아젠다로 부상했다. 정치권에서는 부가가치세율 인상안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세율 인상 논의를 하기 전에 줄줄 새고 있는 세금 탈루 구멍부터 틀어막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국세당국은 ‘국민이 편안한‘ 국세행정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나라경제에 활력을 주고 성실납세를 도우며,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공정 세정‘이 코로나19로 곳간이 비어가는 2021년에 빛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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