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수만에 불계승, 순수 인간의 힘으로 인간 승리

인류대표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를 상대로 마침내 신의 한 수로 3연패 끝에 귀중한 첫 승을 맛봤다.

이세돌 9단은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알파고를 상대로 18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불계승은 바둑에서 계가를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기권했을 경우 이뤄진다.

이세돌은 5판 3승제인 구글매치에서 1∼3국을 내리 패했지만 4번째 대결에서 '슈퍼컴'을 상대로 감격의 첫승을 올린 것이다.

전날 3국을 패한 후 "이세돌이 패한 거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던 이세돌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흑번으로 시작된 알파고는 2국과 똑같은 포석을 했다. 11수까지 지난 2국과 똑같았다. 이 9단은 그러나 12수에서 비틀면서 진행을 달리했다.

초반 좌변에서 시작된 몸싸움이 전투로 이어져 치열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이 9단이 단단하게 두면서 실리를 차지하면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앞선 대국에서 알파고가 인간 바둑에서는 볼 수 없는 수들을 두자 이제 이 9단도 평범함을 거부한 수로 응수했다. 흑 45 이후 백이 상변 타개로 밀어가는 수를 두거나 날일(日)자로 두는 수를 예상했지만, 백 46으로 예상 외의 곳에 두었다.

흑 47의 어깨 짚음은 인간 바둑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수다. 이는 곧바로 상변 백을 공격하기보다는 우변 백 모양을 삭감하며 중앙 흑 두터움을 쌓으려는 알파고의 작전으로 읽혔다. 백 48로 밀어올리자 흑 51로 석점 머리를 두들기며 우변에서도 좌변 백과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

장고 끝에 백 60, 흑 61의 교환 이후 백 62로 이 9단이 승부수를 던졌다. 승부수인만큼 알파고가 장고를 하지 않을까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알파고는 노타임으로 흑 63으로 젖혀갔다.

백 70으로는 우하귀 날일자로 우변 백집을 지킬 수 있었지만 상변이 모두 흑집이 된다면 이 9단이 어려운 형세가 되기 때문에 흑의 약점을 노리기 위해 백 70으로 삭감하는 수를 두었다. 그러나 알파고는 흑 71로 단단하게 지켰다. 이 9단은 백 72로 끊는 승부수에 이어 백 78로 끼우는 독수를 두었다.

바로 이 백 78이 기상천외한 수였다. 알파고는 이때부터 수읽기가 꼬인 것으로 보인다. 흑 83부터 백 90까지 흑이 우변을 사석 작전으로 활용하며 한껏 보태줬는데, 흑 83으로는 호구(실전 백 126자리)로 지켜두었으면 아무런 수가 없었다.

흑이 우변에서 손해를 보고 좌변을 후수로 살아야 할 때, 손을 돌려 죽어있던 백돌을 살려서는 백이 우세한 형세가 됐다. 알파고의 추격으로 형세가 다소 좁혀지기도 했지만 이 9단이 완벽한 마무리로 승리를 가져갔다.

1초당 10만 가지 수를 계산한다는 알파고는 패색이 짙어진 이후에도 30여 수를 더 뒀지만, 도저히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나오지 않자 이세돌의 180수가 놓인 후 항복 선언을 했다.

슈퍼컴퓨터 1천202대가 연결된 최신 알고리즘 기술로 무장한 알파고를 이세돌 9단이 순수 인간의 힘으로 무너뜨린 것은 '인간 승리'다.

대국은 백을 잡는 기사에게 덤 7집 반을 주는 중국 룰을 따른다. 알파고는 처음부터 중국 룰로 설정돼 있어 한국 룰로 진행하기가 어렵다. 바둑은 흑이 먼저 두는데, 먼저 두는 쪽(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나중에 둔 쪽(백)에 그 불리함을 보상해 주기 위해 이 같은 규칙이 만들어졌다. 중국 룰은 덤이 한국 룰(덤 6집반)보다 1집 많은 7집반으로, 백이 좀 더 유리하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격돌은 15일 5국으로 이어진다. 다섯 판을 모두 치르는 조건으로 이 9단은 15만 달러(약 1억6500만원)를 받는다. 우승 상금 100만 달러(약 12억원)는 알파고가 차지하게 됐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 측은 상금을 유니세프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사진=뉴시스>함박웃음 짓는 이세돌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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