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1억원씩 지급하라"
일본 주장 '주권면제' 불인정...피해자 손 들어줘
배상금 집행 난항 예상...한국내 자산 파악 힘들듯
일본 정부 반발...일본 언론 "한일관계 악화 될 것"

평화의 소녀상(사진=연합뉴스)
평화의 소녀상(사진=연합뉴스)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당시 일본 정부)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비협조로 이날 파결이 최종 확정되더라도 향후 배상금 강제 집행 등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8일 오전 배 할머니를 비롯한 12명의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전부 승소 판결했다.

일본 정부 측은 이번 소송에 대해 '주권면제(국가면제)' 이론을 주장하며 무응답으로 일관 중이다. 주권면제 이론은 '헤이그 송달 협약'으로, 이 조약은 송달을 요청받은 나라가 자국 주권·안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면 송달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피고의 행위는 계획적·조직적으로 자행된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불법행위로 인정된다"며 "이런 부분까지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들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로부터 국제적 사과도 받지 못했다"며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1억원 이상이라고 봐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인다"고 판결했다.

앞서 배 할머니 등은 지난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자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며 조정신청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소송에 응하지 않으면서 약 2년 뒤 조정이 불발됐다.

이후 2016년 1월 다시 소송이행을 통해 정식 재판으로 넘어왔으나 일본 정부의 접수 거부로 4년을 넘긴 후인 2016년 1월 정식 재판이 시작된 후 5년만에 원고(위안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는 이날 판결에 대해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인 대한민국 법원의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의 인권존중 원칙을 앞장서 확인한 선구적인 판결"이라며 "전 세계 각국 법원이 본받을 수 있는 인권 보호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이날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이 집행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지난 2018년 10월과 11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 미쓰비시와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측의 무응답으로 이들 기업의 한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 압류에 들어갔지만 실제적인 자산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재판 결과에 항의해 외무성이 남관표 일본 주재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언론 또한 이날 판결을 긴급 타전하며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토통신은 "일본 정부의 자산 압류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므로 충격은 일본 민간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징용 소송을 웃돈다"고 밝혔다.

요미우리신문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이 나왔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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