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 직언직설] '주권재민 개무시' 검란은 쿠데타다
[홍승구 직언직설] '주권재민 개무시' 검란은 쿠데타다
  • 홍승구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20.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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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제2항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실제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아닌 권력자로부터 나온다.

권력은 집행을 강제하는 힘이다. 그리고 민주국가에서 권력은 형식적이기는 하나 주권자의 선출 절차를 거치거나 법에 근거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권력은 자본 권력, 검찰 권력, 언론 권력, 정치 권력이다. 갑자기 웬 권력 타령이냐? 라고 묻는다면, 재벌 회장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찬양, 검난, 민주당 ‘당헌 개정’ 등 권력자의 행태가 ‘목불인견’,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 권력은 가장 강하고 핵심적인 권력이다. 누구나 돈이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욕망을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자본 권력으로부터 나오기에 돈을 얻으려면 자본 권력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모든 권력은 견제를 받아야 독재 권력이 되지 않는데, 견제하지 않거나 견제할 힘이 없기에 자본 권력의 지배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본 권력은 최고의 무기인 돈으로 검찰 권력, 언론 권력, 정치 권력을 통제하려 하기에 견제해야 할 권력이 자본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자본 권력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몇 년 전 일부 언론이 보도한, 재벌회사 사장과 언론사 간부, 부장 판사, 고위 공직자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보면 자본 권력으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본 권력의 문제는 국민이 자본 권력의 횡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돈을 자기가 맘대로 쓰는데 뭐가 문제냐? 할 수만 있으면 나도 좀 얻어 쓰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대통령이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라고 말한 이후 검찰총장과 검사들도 필요한 경우 이 말을 쓰고 있다. 문제는 살아 있는 권력의 범위가 선택적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임에도 검사의 잘못은 수사하지 않으므로 수사 대상에서 빠지고 검사는 법 위에 군림하게 된다. 더구나 검사가 수사 대상을 임의로 선택하면서 불공정한 경우가 발생할 때 이를 선출된 권력이 합법적으로 감독하려 하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고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검난’이라는 단체 행동을 한다. 언론 권력은 이것을 받아서 지휘, 감독 관계를 갈등 관계로 바꿔서 떠들어 댄다. 군사 반란을 진압해야 하듯이 ‘검난’도 진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1조에서 언론의 자유 보장하고 있다. 우리 언론의 역사를 보면 일제에 저항하고 정치 권력을 포함한 주요 권력을 견제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고 권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의 언론 행태는 신뢰하기 어렵고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언론이 하나의 회사로 자리매김하면서 국민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 더구나 자본 권력이 광고비를 판매 수단이 아니라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면서 언론 권력의 자본 권력 의존도는 높아지고 종속성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언론의 권위는 없다. 소규모 언론은 제외하고 거대언론은 광고비에 의존하지 않는 공영언론체제로 바꿔야 한다.

국민을 지배하는 주요 권력 중 그나마 주권자인 국민이 미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정치 권력이다. 어쨌든 선거라는 절차를 거쳐야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정당도 아니고 정치를 독과점하고 있는 두 개 정당은 운영이 민주적이지 않고 국민의 여론 형성에 이바지하지 않고 있다. 권력자인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총선에서 위성 정당 설립 여부를 권력 없는 권리당원에게 미루더니 이번에는 당헌을 개정하면서 궤변을 늘어놓고 당원에게 책임 전가하는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나온 말이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정의로운 정치는 불가능하고 국민은 정의롭지 않은 정치 권력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하긴 부끄러운 것은 잠시지만 권력은 영원해야 하니까.

국민이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권력 지형은 헌법정신을 위배하며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부당한 권력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이들과 싸워서 주권자의 권력을 찾아올 것인가?

잠시 동안 노예로 살 수도 있으나 인간의 속성은 자유를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지배 권력과 싸워서 자유를 확장하는 과정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노예가 아닌 인간이기에 주권자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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