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코로나 19와 지구촌 양대 강국 G2간의 패권경쟁으로, 세계 경제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암울하다. 세계 주요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글로벌 무역 규모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극심한 내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확장 적자재정을 펼치고 있고, 마이너스 금리의 국채발행이 줄을 잇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기이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경제협력개발지구(OECD) 국가 중 금년도 성장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성공적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내년 이후가 문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4.8% 성장률 전망을 근거로 작성, 지나친 낙관이란 관측이 강하다.

어두운 불확실성의 안개가 짙게 드리워진 가운데, 우리가 당장 급한 불 끄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닐까? 장기간 글로벌 불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 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지배구조 혁신이 사회적가치 창출의 지름길   

2012년 이스라엘 재벌이 해체된 이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재벌체제가 존속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군사정권 시절 우리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을 펼쳤다. 개발독재 시절 재벌들은 정경유착의 대가로 극소수의 지분으로 다수의 계열회사를 거느리는 기형적 선단식 구조를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복잡한 변칙적 선단식 기업 구조를 이용해, 대기업 총수 일가는 불법과 부조리 저지르면서 경영권을 대물림 받았다. 재벌그룹 비서실 혹은 종합조정실 임직원들은 기업의 이익보다는 사주 일가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갖은 꼼수를 동원했다. 정치권에 대한 적극적 로비를 펼쳐 순환출자 고리의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 결과 공정거래법은 합리성이나 논리적 근거와 어울리지 않는 걸레로 전락해 버렸다.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난 금융관련 행정입법도 마찬가지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나 법인세법 또는 조세특례법에 숭숭 뚫려있는 구멍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재벌의 전위대인 전경련은 지금도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등 상법 개정안을 비롯한 공정경제 3법에 반발, 우호 여론 조성에 안감힘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사태로 고질적 정경유착의 폐단이 드러나면서 급기야 해체 위기에 몰린 전경련이 재벌체제의 옹호에 나선 것은 정치권력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태생적 한계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 핵심 회원사들의 탈퇴로 기로에 놓인 전경련은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코로나19 등 국내외 경제 악재 발생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전경련 해체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도 집권 이후 경제에 비상이 걸리자, 전경련에 러브콜 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재벌체제의 유지가 국익에 부합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언론도 한몫 했다.

지난 1월2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 참석한 이재용(오른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연합뉴스 제공)
지난 1월2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 참석한 이재용(오른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연합뉴스 제공)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그룹의 사실상 총수인 재벌 3~4세의 행보는 재벌 체제 고착화의 새로운 시도라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미중 무역마찰 이후 기업가 정신과 기업 혁신을 앞세우면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내걸고 나섰다. 이들은 올들어 미래 전기차 배터리의 공동개발을 비롯한 구체적 사업분야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급변하는 경제 패러다임에 기업가 정신과 기업 혁신이 사회적 가치 창출임은 내세운다. 허나 이 역시 반기업적 정서를 무마, 지속가능한 재벌체제의 공고화에 다름이 아니라는 부정적 평가가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주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코리아 디스카운트현상의 주된 원인은 북한 리스크와 오너 리스크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잇따른 발사 소식과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신형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신무기 공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글로벌 증시에 주요 악재로 작용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주범은 오너 리스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언론에 회자되는 재벌기업 관련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 기업의 이익보다 사주 개인의 이익을 중시한 거래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초법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져 온 것이다. 총수 친인척의 영화관 팝콘 독점 판매권 부여하는 거래는 분명 회사의 이익과 상충된다. 자동차 부품 판매와 운송 독점권 부여 행위, 계열사 BW(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저가구입 또는 부당한 합병비율 산정 등의 거래, 재벌 친인척들이 중간에 검문소를 차려놓고 회사의 이익을 갈취하는 행위 등은 결코 회사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불법 행위들은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위법성 거래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외감법에 따르면, 외부감사인은 회계감사 감사과정에서 내부 회계관리제도 운영에 관하여 의견을 표명하도록 규정돼 있다. 분명 재벌 기업들의 내부통제조직이 부실해 상식 밖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의 내부 회계 관리제도의 신뢰성을 지적한 회계감사보고서를 찾아볼 수 없다. 회계감사인의 외양상 독립성은 유지됐는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독립성은 유지되지 않았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기준 61개국 중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은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재벌체제가 주된 원인일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재벌 오너체제의 유지를 통해,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할 수 있고 중요한 중장기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의사결정을 적시에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벌 총수가 구속돼 있는 기간 동안 주가가 오히려 고공행진을 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성장 기조와 재벌 리스크

고도 성장세를 달리던 개발 독재시절 재벌은 다양한 업종에 계열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한두 기업이 재정난에 봉착하더라도 다른 선단 기업군이 몰려와 손실을 분담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수경기가 장기간 침체되고, 해외수출도 줄어드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계열기업 다수가 재정난에 몰리게 될 경우, 복잡한 상호출자와 상호 지급보증 때문에 선단 전체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 경제에 큰 위협요인이 될 것이다.

혹자는 세상이 투명하게 변하고 있어 재벌체제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순리적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하지만, 오죽하면 대한민국을 재벌공화국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을까. 자연스러운 변화를 기다리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재벌 체제 종식 늦추지 말라

미국의 회사법에 따르면, 자회사가 모회사 주식을 취득하고 있는 경우,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고, 투자회사법에서도 투자회사는 상호출자를 형성하게 되는 주식의 매입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의 회사법에 따르면, 자회사가 모회사의 주식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취득했을 경우 의결권과 배당이 제한된다. 독일의 주식법과 일본의 상법에 따르면, 자회사는 모회사의 주식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 회사법에 따르면, 자신의 주식 10%를 초과하여 소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 취득을 금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민법에 따르면, 종속회사는 지배회사의 주식이나 그 지배회사의 다른 종속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우리 정치권이나 정부가 OECD 국가들의 제도나 통계를 선택적으로만 인용해 아전인수격으로만 써먹을 일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답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재벌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다. 재벌 해체라는 화두는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과 나라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늦춰서는 안될 일이다. 국내 4대 재벌이 내건 사회적인 가치창출은 세습에 의한 기존 지배의 구조가 아닌 사회적인 책임을 추구했을 때 시장에서 더욱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시장 경제 원리에 역행, 나라가 정한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는 낡은 재벌 체재의 종식,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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