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구 직언직설] 한글이 목숨
[홍승구 직언직설] 한글이 목숨
  • 홍승구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20.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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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구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

 

홍승구 전 흥사단 사무총장
홍승구  흥사단 시민사회연구소장

오늘은 574돌 한글날이다.

10여 년 전 일로 기억한다. 보궐선거에 당선하여 도지사가 된 사람이 자신의 집무실 내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첫 출근이라는 설명과 함께 올린 사진 가운데에 책상과 책상 위의 명패가 선명하게 보였다. ‘ㅇㅇ도지사 ㅇㅇㅇ’라고 썼는데 대만 글자로 쓴 이름이었다. 쉽게 말하면 한자로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가 왜 자기 이름을 남의 나라 글자로 쓰느냐? 고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서너 시간 후에 다른 자료를 보기 위해 페이스북에 들어간 김에 댓글을 봤는지, 반응이 있는지 확인했더니 놀랍게도 댓글에 동의한다면서 한글로 쓴 ‘강원도지사 최문순’이라는 명패가 있는 책상 사진을 올렸다. 대다수 권력자는 평민의 말을 잘 안 듣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평민의 의견에 동의하고 재빨리 수정하는 모습에 고맙고 감동했던 일이 있었고 지금도 그 일을 잊지 못한다. 

국회의원의 한자 명패.
국회의원의 한자 명패.

공휴일로 지정한 국가기념일 중 기념 대상을 일상적으로 천대하고 파괴하는
그것이 한글이다. 다른 기념일도 그렇지만 한글날도 앞뒤로 2~3일간 기념 대상에 대한 논의가 있고, 특히 언론이 호들갑을 떤다. 현재 쓰고 있는 글자 중 가장 과학적이며 아름답고 우수한 글자가 한글이라는 것이다. 한글에 대한 역사, 한글 전용운동하는 사례와 사람, 영화 등 그야말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글을 찬양한다. 

 그런데 기념일을 제외하고 364일은 언론이 앞장서서 한글을 파괴하고 외래어를 즐겨 쓴다. 1988년 한겨레신문이 처음으로 신문을 한글로만 쓰면서 많은 신문이 한글만 쓰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십 오륙 년 전에 몇몇 신문이 한자와 외국어(주로 영어)를 같이 쓰는 퇴행 현상이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거리낌 없이 한자와 외국어를 쓰고 있다. 더구나 방송 화면을 보면 자막에 한자를 많이 쓰고 있다. 한글로 써도 문제가 없을 텐데, 아니 한글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반대로 한자로 쓰는 것을 당연한 일로 만들고 있다.

국회의원 한자 명패
국회의원 한자 명패

대한민국은 1948년 10월 9일 법률 제6호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법률은 딱 두 문장이다.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 이어서 2005년 1월 27일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고 법률 제7368호로 27개 조항이 있는 ‘국어기본법’을 제정한다. 

 법률로서 비교적 체계를 갖췄고 국어의 중요성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14조에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문자를 쓸 수 있다’라고 규정하면서 공문서를 한글로 쓰도록 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두 가지 문제가 있어서 개정해야 한다. 

 첫째, 범위를 공문서로만 제한한 것이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회의 모습을 방송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국회의원 명패를 보면 한글로 쓴 의원님이 계시는 반면 한자로 쓴 것도 있다. 그래서 헷갈린다. 대만 국회의원이 왜 대한민국 국회에 참석하고 있나? 그래서 알아보니 명패의 한글 사용 여부는 국회의원 본인 결정한다고 한다. 한자를 써야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권위 없는 국회의원의 행동이다. 

외솔 최현배의 휘호 '한글이 목숨'
외솔 최현배의 휘호 '한글이 목숨'

 그래서 공문서의 범위에 국회의원 명패를 비롯하여 모든 공직자의 명패와 공공기관의 간판과 안내판을 포함해야 한다. 또 한 신문, 방송, 외국인끼리 사용하는 것을 뺀 모든 사문서와 간판과 안내판도 한글로 쓰도록 해야 한다. 2009년부터 2년쯤 북경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데 북경은 상점의 간판도 중국어로 쓰도록 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타벅스(Starbucks)’를 영어로 쓰지 않고 한자로 ‘성파극(星巴克)’이라고 쓴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의 어문정책은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처벌규정이 없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므로 지키지 않으면 적절하게 조치해서 지키도록 해야 하는데 최후 보루가 처벌이다. 국어기본법을 지키지 않는 공직자는 징역형에 처하고 공직자나 공공기관이 아닌 경우는 벌금이나 일정 기간 영업정지, 상습적이면 폐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엄혹한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조선어학회가 발표한 ‘한글맞춤법 통일안’ 작성에 참여했던 최현배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붓으로 썼다는 글이 떠오른다.

 ‘한글이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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