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실형선고 후 2심서 판결 뒤집혀...재판부, 1심 제출 증거 위법수집 인정
"무죄 선고하지만 공모가담 없었던 것 아냐"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혐의로 기소됐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장)이 1심 실형 선고를 뒤집고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2심)가 1심에서 인정한 증거들이 위법성을 띄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배준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 전 의장은 1심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증거로 제출된 CFO(최고재무책임자) 보고문건이 위법하게 수집돼 증거능력이 상실됐다고 봤다. 앞서 1심에서는 확보한 증거들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과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후 추가적으로 적법하게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거나 임의제출을 통해 확보한 증거들과 관련자들의 진술은 적법한 증거라고 보고 이를 토대로만 유·무죄를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이례적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지만, 결코 피고인에게 공모·가담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했다.

이어 "기록을 보면 원심(1심)과 동일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도 있었으나,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없다고 가정하고 나머지 증거로만 결론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과연 이게 정확하게, 합리적 심리로 이뤄진 것인지 상당한 고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상훈 피고인의 경우 CFO 보고문건이 위법수집 증거가 되는 바람에 직접적 증거가 없고,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만으로는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법리적으로 그렇지만, 만약 보고 문건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 상당 부분 원심 판단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 전 의장과 달리 삼성노조 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나머지 임직원들은 일부 혐의가 무죄로 인정돼 형량은 줄었지만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의 형량은 징역 1년4개월로 약간 줄었다.

원기찬 삼성라이온즈 대표(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은 1심과 같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형량이나 집행유예 기간만 조금씩 줄었다.

실무를 책임진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징역 1년),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징역 1년),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징역 1년 4개월) 등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삼성전자의 노사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노무사는 1심과 같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양벌규정으로 기소된 두 법인 중 삼성전자서비스에는 벌금 5000만원을 선고하고, 삼성전자는 1심과 같이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이 전 의장 등 삼성 임직원들은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해 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노동계는 이 전 의장의 무죄 선고에 크게 반발했다.

전국금속노조는 '삼성불패 입증한 삼성불파(불법파견) 재판'이라는 성명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자료로 수사를 했으니 무죄라는 재판부의 논리는 평생 재벌에 맞서 싸울 각오를 한 내부고발자가 나오기 전에는 자본의 노조파괴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할 길을 영원히 봉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다가오는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퇴로를 만들려는 법원의 사전 정지작업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며 '삼성 편들기' 재판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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