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2018)」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보이지 않는 경제학

 

이 책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부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부란 무엇인가? 재화와 서비스다. 그것은 노동의 결과물이다.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노동량을 늘리거나 소비를 줄이는 것뿐이다. 노동과 생산의 관계에서 노동의 수익률은 언제나 0퍼센트다. 즉 100의 노동량을 투입하면 100의 노동 성과만 거둘 수 있다.

만약 100의 노동을 투입하고 110의 노동 성과를 거두었다면 그 가운데 10은 남의 노동 성과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금융경제로 가면 누구나 ‘10퍼센트 수익률’, ‘20퍼센트 수익률’을 입에 달고 산다. 수익률을 중시하는 재테크는 남의 노동을 훔치는 기술이고,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남의 것을 훔치세요”와 같은 말이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OXFAM은 세계경제포럼 2017년 연차총회 개막을 앞두고 공개한 보고서에서, 1퍼센트의 부호들이 나머지 모든 인류의 부를 합친 것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슈퍼리치 61명의 재산은 하위 50퍼센트의 재산과 같다.

1퍼센트의 부>99퍼센트의 부
61명의 부=37억 명의 부

보고서의 내용을 좀 더 따라가 보자. 61명의 재산은 2010년에 비해 44퍼센트 증가했고, 하위 37억 명의 재산은 같은 기간에 41퍼센트 줄었다. 2016년에 생산된 부의 82퍼센트는 상위 1퍼센트에 귀속되었고, 하위 50퍼센트는 부가 증가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이런 격차를 만들었을까? 몇 년 동안 부자들은 더 똑똑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게을러졌을까? 그럴 리가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런데도 44퍼센트나 부를 늘렸다는 것은 인간의 경영능력을 초월한 현상이다.

빈부격차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확대되어 마침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개인의 능력 차이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자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빈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 어떤 힘이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게 무엇일까? 나는 부의 집중이 금융자본주의 팽창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경제는 부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금융을 통한 부의 축적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금융경제가 실물경제의 노동을 훔치고 있다는 뜻이다. 남의 노동 훔치기, 이것이 신자본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옥스팜 보고서는 노동자들의 노동 성과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자들에게 흡수되는지 잘 보여준다.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매해 13퍼센트 가까이 증가한 반면, 임금은 연평균 2퍼센트 증가했다.” GDP에서 노동에 대한 보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하루 2~10달러의 돈으로 생활한다. 전 세계에서 노동에 대한 절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노동의 강탈이다. 2016년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ILO는 세계적으로 4,050만 명이 현대판 노예modern slavery 생활을 하고 있고, 그중 2,490만 명은 강제노동에 내몰린다고 추산했다. 그 가운데 4분의 1은 아동이다. “강제노동자들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우리가 입는 옷의 일부를 생산하고, 우리가 살거나 일하는 건물들을 청소한다.”

10명 중에 1명이 총생산의 절반을 가지면 매우 위험한 사회가 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부의 집중이 절정에 달했던 1920년대에도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은 국민소득의 5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의 빈부격차는 다소 완화되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미국의 부는 비교적 합리적으로 분배되었고, 상위 10퍼센트의 부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35퍼센트에 머물렀다.4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융의 팽창과 부의 집중이 시작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은 마침내 GDP의 절반을 넘어섰다.

부의 적정하고 공정한 분배는 정의justice에 관한 문제인 동시에 효율efficiency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자원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편중되면 사회 전체의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물론 상위 1퍼센트의부자들은 사회 전체의 효율성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부의 집중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 된다.

250년 전에 애덤 스미스가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느 사회라도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다면 번영하는 행복한 사회일 수 없다. 국민 전체의 의식주를 공급하는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의 노동생산물 중 자신의 몫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어야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는 공평성을 이야기했다. 그가 찬양한 자유경쟁은 ‘공평성이 보장된 자유경쟁’이었던 것이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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