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힐링] 2020년 대한민국이 사는 길
[이시형의 힐링] 2020년 대한민국이 사는 길
  • 이시형(힐리언스선마을 촌장/힐링산업협회 명예회장) (press@straightnews.co.kr)
  • 승인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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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 식구를 책임져야 했던 가난한 시절의 기억, 빅터 프랭클 박사와 작가 헤밍웨이 등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일들을 회상하는 세로토닌 전도사 이시형 박사(자료:세로토닌문화원) ⓒ스트레이트뉴스
 힐링의 생활을 선비정신에서 찾는 세로토닌 전도사 이시형 박사 ⓒ(세로토닌문화원)

2020년 새해가 밝았다. 희망찬 새해에 지구촌의 평화와 행복이 넘치길 기원한다.  경자년 새해에 모두가 희망의 새해이기를 기원하나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게 나라 안팎의 모양새다. 

대한민국은 올해 총선과 공수처 설치를 앞두고 온나라가 뜨겁다. 선거법 개정으로 총선에서 입법부의 판도변화는 불가피하고 공수처의 신설은 민주사회를 한층 성숙시킬 전망이다. 나아가 정경유착의 기존 환경에서 산업을 키워온 재계는 정치와 사회의 지각변동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서 또 한번의 위기와 기회의 동시 맞이가 불가피하다.

더불어 우리는 인공지능 등 새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 앞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 주변의 몇몇은 새로운 변화를 재빠르게 받아들여 엄청난 성공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힘겨워할 것이 분명하다. 변화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터이고, 잃어버린 직장을 다시 구하느라 힘겨워할 것이다.

변화는 불균형한 상태다. 뇌는 불균형한 상태에서 피로해 진다. 올해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질서 변화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은 가히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급격한 변혁이다. 기존 뇌의 과부하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2020년, 변혁의 시대가 눈앞인 한 해다. 

2020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맬 힐링의 정신무장이 필수적이다. 이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조상이 살아온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과 힐링은 온고지신으로 통한다.

세라토닌의 충만한 상태가 힐링,

선비정신은 세라토닌이 가득한 마음 상태

선비정신은 평정과 항상의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가득한 힐링의 상태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는 게 수십 년간 뇌 과학 연구에서 얻은 결론이다. 세라토닌은 본능적 욕구가 충족될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기분 좋게 하고 행복감을 선물한다.

배가 고플 때를 상상해보라. 혈당이 떨어져 항상성의 균형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면서, 뇌에 있는 시상하부에 비상이 걸린다. 이때 먹어보라. 행복해 진다. 항상성을 회복함으로써 다시 본래의 편안하고 쾌적한 느낌으로 돌아온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이런 조정역할을 하는 50여 종의 신경전달물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호르몬이다.

세로토닌은 우리의 뇌가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공격성, 끝없는 욕심, 환희, 우울증에 빠지지 않게 조절한다. 항중력근을 조절해 반듯한 자세를 유지해주며, 생기발랄한 표정을 만들어 미인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9 힐링산업 국제세미나’에서 격려사를 하는 이시형 명예회장 ⓒ스트레이트뉴스
‘2019 힐링산업 국제세미나’에서 격려사를 하는 이시형 명예회장 ⓒ스트레이트뉴스

나는 세로토닌의 주요 기능과 능력을 알아갈수록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로토닌이 '선비 정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선비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점잖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주위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는 안정감이 있다. 차분하고 조용하다. 자세만 반듯한 게 아니라 생환 전반이 반듯하고 정갈하다. 고매한 인격과 품격을 갖추고 있다. 함부로 근접하지 못할 위엄과 카리스마가 넘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행복감을 선물해 항상성을 유지시켜주는 세로토닌과, 중용, 항상심, 절제의 덕을 지닌 선비의 삶이 정말 닮았음을 깨달을 수 있다.

무한 경쟁과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찬 오늘날, 세로토닌의 마음가짐, 즉 선비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세상살이가 한결 편해질 것이다. 피로가 회복되고, 가지면 가질수록 공허하던 마음에 행복감과 충만감이 차오를 것이다.

왜 선비 정신인가?

우리는 전 세계에서 무엇 하나 선도적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 지식, 이론, 이념, 철학까지 모두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흉내 내며 여기까지 왔다. 열심히 따라 한 덕분에 중진국의 선두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선진국 문턱에서 턱걸이만 하고 있다. 따라만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부터는 우리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지 않은가.

나는 우리나라가 선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바로 선비정신의 깃발을 높이 드는 일이라 확신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고릿적 깃발을 들고 나오느냐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정확히 모르기에 하는 소리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인공지능 로봇이 그동안 인간이 해왔던 거의 모든 일들을 대신하는 세계다. 지금까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왔던 복잡한 일들을 로봇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로봇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불확실의 세계에서 우리 인간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내 직장이, 내 일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판이니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AI시대에도

편안함은 인간의 영역, 선비정신이 답이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창조적이고 고차원적인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뇌는 갈수록 피로해질 테고,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중유의 세계로 인해 우리의 정신도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사회가 물질주의의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적 명상과 힐링에 몰두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관과 마음을 반듯하게 지킬 수 있는 선비 정신이다. 선비 정신의 현대적 부활은 뇌를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다.

선비정신은 지족(知足)

우리는 앞서 끝없는 이기심, 즉 도파민의 욕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시대적 불행의 핵심 요인 역시 '끝없는 욕심'이 아닐까 싶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심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외적·물적 성장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지금 중진국 정상에 올라서 있다. 모두 열심히 살아온 결과다. 그러나 선진국에 오르려면 완전히 새로운 준비를 갖춰 새로운 정상을 향해 올라야 한다. 불행히도 이 정상은 보이지도 않는 미지의 세계다. 따라서 올라갈 길도 없다. 보이지도 않고 길도 없는 정상, 그곳이 선진국이 선 자리다. 

세라토닌 충전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의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
세라토닌 충전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이시형 박사의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

지금까지 남이 닦아놓은 길, 빤히 보이는 정상을 열심히 따라 올라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만한 고비가 아니다.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차분히 생각하고 지식을 총동원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서 있는 자리부터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저 멀리 떨어진 이상만 좇는 허황한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슬기가 필요하다.

지족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작아도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우리의 뇌는 정신적으로 안정이 된다. 끝이 없는 외적·물적 성장에서 벗어나야 내적·정신적 성숙을 할 수 있다.

선비정신은 청빈(淸貧)이다

나는 '맑은 가난'이란 뜻의 청빈이란 말이 참 좋다. 비록 몸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맑게 살겠다는 선비의 지조가 느껴져서다.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비느냐가 더 중요하다. 가난해도 청빈을 사랑했던 마음가짐은 선비 정신의 백미다. 한평생 맑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품격 높은 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적당히 아부도 하고 타협도 해가며 돈을 벌어야 잘살 수 있지, 거지꼴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돈 앞에 자존심이고 제면이고 따질 필요 없습니다."이런 생각이 풍비하는 사회다. 모로 굴러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목표 지향적인 삶의 자세다.

실제로 부정은 물론이고, 억지와 생떼가 일상사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리를 한다. 물론 많이 벌고 잘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마음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벌되 깨끗이 벌자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한완상 교수는 이를 두고 '청부"라는 말을 즐겨 썼다. 맑고 깨끗한 부자라는 뜻이다. 청부가 돼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청교도 윤리에도 “"많이 벌어, 많이 모아, 많이 베푼다"는 말이 있다. 단, 여기에는 공정하게 벌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청교도에서는 돈 자체를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일은 하늘의 소명이요, 일을 하다 보면 돈은 절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 빌든 많이 벌어서 많이 모았다. 여기까지는 성공했다. 그런데 그다음인 많이 베푸는 데는 인색하다. 현대의 경쟁 사회 풍토가 우리의 인심을 야박하게 만든 탓이다. 버는 것도 맑아야겠지만 쓰는 것도 매한가지, 인류 사회를 위해 자기 주머니를 연다는 것, 얼마나 멋있고 가치 있는 일인가!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존경받을 수 있다.

선비정신은 명예(名譽)다

한때 사회적으로 성공해 높은 신분에 올라서 사람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이가 검찰청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지고,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겨우 한마디, "성실히 답변하고 나오겠습니다" 빤한 소리를 남기고 청사 안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도대체 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밤도 새고 더러 굶기도 했을 것이다. 그 어려운 고시 관문을 뚫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사회의 중요한 요직을 맡았으니 이제야말로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데 오랏줄에 묶여 검찰청이라니, 한숨만 나올 수밖에. 

“처음에 풀무원, 대웅에 이야기했고, 나중에 매일과 대한제분이 합류했다. 설계사가 건물의 목적을 몰라 설계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제가 이곳에 텐트를 쳐놓고 1년 동안 생활하면서 구상을 했다.” 2007년 힐리언스 선마을 설립 당시를 회상하는 이시형 촌장(자료:힐리언스 선마을) ⓒ스트레이트뉴스
대한민국 힐링의 구루 이시형 박사 ⓒ 힐리언스선마을

떳떳치 못한 일을 했으니 행여나 들통이 날까 얼마나 마음 졸였을지 눈에 선하다. 전화 한 통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몇 푼 안 되는 유혹을 못 이겨 이 꼴이 된 것이다. 돈 몇 문에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정신으로 그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일이나 제대로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저런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결국에는 근본적인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운 탓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는 가운데 옛 선비들이 궁궐 앞에 꿇어앉아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올리던 의연한 모습이 검친다. 임금의 심기를 거슬러 관직이 박탈되고, 귀양을 떠나고, 심지어 사약을 받은 선비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꿈과 이상에 맞지 않는 세상과 싸웠다.

명예란 고위 관직이나 훌륭한 선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관이다. '명예'의 뜻처럼 내 이름을, 내 이치를, 내 가치를 기리고 지켜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한 인간의 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선비정신은 배려(配慮)다

남산골 선비 집에 '뭘로 육개장'이라는 말이 있다. 당장 저녁 끼니가 없어도 사랑방에 손님이 들면 아내에게 육개장을 내오라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없으면 맹물을 마시고도 '어험' 하고 큰 기침을 하는 게 선비들이었다.

이것이 과연 허세와 허영일까? 내가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남에게는 넉넉히 베풀어야 한다는, 크게 보면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인 홍익인간 정신의 발로가 아닐까.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3대 가는 부자가 없다고들 하지만, 최부자집은 무려 9대 500여 년을 넘게 가문을 이어오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부자집의 가훈을 보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 벼슬길에 나아가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
-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
-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가난한 이웃에는 아낌없이 베풀면서도 정작 식구들에게는 검소한 생활과 절제를 가르치는 가훈을 보면,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정신이 9대를 내려오면서까지 만석꾼의 지위를 유지하고 존경받는 부자로 칭송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웃에 대한 배려도 사라지고 있다. 무엇이든 남에게 먼저 양보하기보다는 내가 먼저여야만 한다. 내가 조금은 불편하고 작은 손해를 입더라도 공공의 이익이 된다면 흔쾌히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된다.

나 먼저 빨리 가려고 얌체 운전을 하다가 결국에는 사고를 낸다. 불이 난 건물에서 탈출하기 위해 빨리빨리 앞서 나가다가 비좁은 비상구 입구에 한데 몰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허약한 공공의식 앞에 가슴이 메인다. 이렇듯 나만 손해 보지 않으려는 생각이, 거꾸로 내게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20년 대한민국이 살고 모두를 살리는 길은 힐링의 선비정신으로 되돌아가고 선비정신을 살리는 일이다. 힐링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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