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의 현명한 공존, 로이드피어(Lloyd Pier)/ 네덜란드 로테르담

▲로이드피어, STC(Shipping and Transport College)-Group(by Neutelings Riedijk Archtiects) ©박혜리
▲로이드피어, STC(Shipping and Transport College)-Group(by Neutelings Riedijk Archtiects) ©박혜리

로이드피어는2005년 해운대학인 STC(Shipping and Transport College)-Group이 들어서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컨테이너박스와도 같은 입면재료와 청색-은색의 체크패턴은 ‘마린룩(Marine Look)’을 차려입은 바다 사나이와도 비슷하다. 아이코닉한 자세로 들어서며 주변보다 높은 ‘Hooggebouw(고층 건물)’이지만 높이는 60m남짓하다. (그만큼 주변이 높지않다.) 겉으로 언뜻 보기에 로이드피어가 이 새로운 현대 건물로 인한 상징성으로 기억되는 것 같지만, 사실 안으로 파고들면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라는 점이 인상적인 지역이다.

로이드 부두지역(LloydKwatier)은 1900년 즈음 건설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로테르담항구를 대표하는 델프스하번(Delfshaven)지역 부두 중 하나였다. 일부 남측 또는 서측 신항만으로 항만의 기능이 옮겨가면서 일반 화물산적 부두였던 이곳은1960년대부터 항구 무역활동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1990년 이후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다. 그 이후 점진적으로 재개발을 진행하고있다.

▲노예무역의 역사를 기억하는 조형물(Slavernijmonumen/Slavery Monument) ©박혜리
▲노예무역의 역사를 기억하는 조형물(Slavernijmonumen/Slavery Monument) ©박혜리

“모든 로테르다머들에게, 당신들은 과거의 상속자일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미래도 책임지어야 하기 때문에! (Voor alle Rotterdammers, omdat zij niet alleen erfgenaam zijn van het verleden, maar ook verantwoordelijkheid dragen voor de toekomst van deze stad!)”

로이드피어의 로이드부둣길(Lloydkade)에 있는 조형물 앞 적혀있는 설명문구다. 과거를 안고 미래도 책임지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당연한 정의를 적어놓았지만 이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2013년 6월 16일, 이 조형물의 오프닝이 있었다.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대학 캐리비안 역사학 교수인 알렉스 판 스티프리안(Alex van Stipriaan)은 엄격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오프닝 연설을 마무리지었다.

“ 이 기념비는 ‘난 몰랐다’라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기 위해 여기 세워졌다. ‘무지에 대항하는 기념비(Een monument tegen de onwetendhei/ A monument against ignorance)’이다.”

이 기념비는 ‘노예 기념비(Slavery monument)’이다. 말그대로 과거 이 로이드피어에서 네덜란드가 앞장서서 노예무역을 자행했던 과오를 잊지 않고 뉘우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이다.

▲조형물 앞 설명문구 ©박혜리
▲조형물 앞 설명문구 ©박혜리

17-19세기 이 부두에서는 도자기, 무기, 주류 등이 거래되었다. 그러나, 이 부두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형적인 무역이 이루어졌었는데 바로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trans-Atlantische slavenhandel)이었다. 이는 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간의 삼각거래였다.

무기와 물품을 이곳에서 싣고 아프리카로 가서 인신매매업자에게 이 물품들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교환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수리남(네덜란드 식민지)으로 데려와 농장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미국으로 팔아 보냈다. 아프리카인들은 그야말로 ‘물건’으로 취급되어 물물교환을 당해야 했고 심지어 로테르담으로 오지도 않고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무역을 당했다. 이후 그들의 주인 및 물품들과 함께 네덜란드로 들어오기도 했다.

이러한 삼각무역을 담당했던 회사(Coopstad & Rochussen)는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무역회사 중 하나였다. 세계 노예시장에서 네덜란드는 ‘상당한’ 역할을 했었다.

이 조형물은 아프리카 앙골라 출신 이민 예술가 알렉스 다 실바(Alex da Silva)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작품 제목은 ‘클라베스(Clave)’라고 하는데, 이는 서아프리카-쿠바(Afro-Cuban) 음악에서 사용하는 기본 리듬을 뜻한다. 조형물 위 발목 주위에 사슬이 달린 네명의 사람들(노예)이 느슨하게 그 리듬에 맞추어 자유를 향해 춤을 추고 있다.

예술가 알렉스는 ‘춤은 해방을 의미함과 동시에 문화를 하나로 모으는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춤추는 노예 네 명 중 첫 번째 사람은 완전히 사슬에 묶여있지만 마지막은 해방된 듯 사슬에서 벗어나 있다.

이 기념비가 선보인 2013년, 동시대에 80,000명이 넘는 그 노예의 후예들이 ‘로테르다머’로서 이 도시에 함께 살고 있다. 2015년 7월 1일은 노예제가 네덜란드에서 폐지된 지 꼬박 150년 지난 후였다. 로테르담은 도시 이미지에 큰 부담이 있었지만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에 대해 반성하고 기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또한 현재 로테르담시의 다문화 사회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로테르담시는 인구의 51%가 이민자로 구성되어있다.)

노예 무역 항구였던 로이드피어, 그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지 않고 기념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하지만, 우리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단한 용기로 보여진다.

과거 서양국가에서는 대부분 항구가 수탈한 품목을 받아들였던 입구이었겠지만 침탈을 당했던 우리나라 같은 힘 없는 나라의 항구는 외부로 국가재산이 유출되는 수탈의 출구였다. 항구는 스토리가 많은 장소이다. 항구의 과거 화려함말고도 아픔, 잘못, 그리고 부끄러움까지 모두 유산으로 간직하고 현재와 함께 살아갈 때, 그것이 진정한 그 도시의 역사로 새겨질 것이다.

▲신트 욥 창고건물(Pakhuis St. Job). 기차선로가 그대로 남겨진 바닥을 보행자가 걸어가고 있다. 상부는 기존 창고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여 주거용 오픈 발코니를 만들었다. ©박혜리
▲신트 욥 창고건물(Pakhuis St. Job). 기차선로가 그대로 남겨진 바닥을 보행자가 걸어가고 있다. 상부는 기존 창고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여 주거용 오픈 발코니를 만들었다. ©박혜리

로이드피어에는 쓸만한 옛날 창고건물들이 많았었다. 대부분 현재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재사용되고 있다. 그 중 신트 욥 창고건물(Parkhuis St. Job)은 1912-14년쯤 지어진 창고건물로, 현재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창고 기능으로 무척 폐쇄적인 건물이었으나 긴 건물에 3군데 유리 아트리움으로 틔어주어 주거기능의 채광에 무리없이 디자인하였다고 한다.

현재 주거가 주 프로그램으로, 저층은 사무실, 상업시설, 체육관 및 주차시설로 구성된 복합시설로 사용하고 있고, 약 200여 명의 거주자가 이곳에서 새로운 현재를 살고 있다. 분양을 알린지 단 2주만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신트 욥 창고건물(Pakhuis St. Job). 기차선로가 그대로 남겨진 바닥을 보행자가 걸어가고 있다.

이 외에도 옛 창고 및 사무실 건물을 재활용하여 들어서 있는 레인몬드 방송국(RijnmondTV)과 스튜디오, 호텔 및 주거가 혼합된 스키센트랄레(Schiecentrale 4B)가 신트욥창고 맞은 편에 위치해 있으며 여러 기존 부두 건물들이 레노베이션하여 현재의 사용에 맞게 재사용 되고 있다.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빈 땅으로 남아있거나 커뮤니티 임시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STC-Group 앞 빈 개발필지에 자리잡은 커뮤니티 임시 텃밭 ©박혜리
▲STC-Group 앞 빈 개발필지에 자리잡은 커뮤니티 임시 텃밭 ©박혜리

 

▲컨테이너박스로 지어진 카페 및 음식점 A LA CATI ©박혜리
▲컨테이너박스로 지어진 카페 및 음식점 A LA CATI ©박혜리
▲주거단지 에덴프로젝트(Eden Project)가 곧 들어설 개발 예정지 ©박혜리
▲주거단지 에덴프로젝트(Eden Project)가 곧 들어설 개발 예정지 ©박혜리

이 곳은 상징적 랜드마크 앵커시설로 현대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하며, 항만건축유산을 재활용하여 과거와 현재과 혼합하기도 하고, 또한 빈 땅을 시민들이 임시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임시프로젝트 등으로 ‘과정’도 숨쉬게 하고 있다. 게다가 과거 노예제에 중추적 역할을 했었다는 부끄러운 서사적 역사도 상징화하여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하나의 시간적 층위를 간직해내었다.

항만 재개발은 대개 수 십년 걸릴 수 밖에 없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새로운 가치창출을 할 것인지는 과거 역사에 대한 존중,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마스(Maas)강과 맞닿아있는 로이드피어의 여전한 부두, 새 건축물, 임시프로젝트, 그리고 현재에 포함된 역사. 시간이 중첩된 로이드피어. ©박혜리
▲마스(Maas)강과 맞닿아있는 로이드피어의 여전한 부두, 새 건축물, 임시프로젝트, 그리고 현재에 포함된 역사. 시간이 중첩된 로이드피어. ©박혜리

▲박혜리 (도시건축가)
-네덜란드 도시계획사(SBA, Stedenbouwkundige)-
-KCAP 프로젝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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