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남이 망하기를 갈망하는 금융상품

과거의 금융업은 대출업과 동의어였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 금융업의 근간이었다. 금융자유화 바람을 타고 월가의 은행들이 직접투자를 확대하면서 금융 팽창이 가속화되었다. 예컨대 과거에 인수합병Mergers and Acquisitions, M&A은 기업과 기업 간에 벌어지는 게임이었고, 투자은행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국제투기자본hot money이 직접 사냥감을 고르고, 직접 요리를해서,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장사꾼에게 팔아넘긴다. 구조조정은 그들이 애용하는 요리법이다. 외환은행이 그렇게 넘어갔다. 외환위기 직후에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Lone Star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을 1조 3,800억 원에 인수해 2012년 하나은행에 팔아넘겼다. 론스타는 배당금과 지분 매각대금을 합하여 총 4조 6,600억 원의 투자수익을 거두었다.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이 시작될 무렵, 미국의 정치권력과 국제투기자본이 의기투합했다. 이른바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인데,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를 개발도상국의 발전 모델로 삼으려는 구상이다. 그 핵심 내용은 작은 정부,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 인하, 공기업 민영화, 자국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인수합병 허용, 정부 규제 축소,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다.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달러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증권시장의 완전개방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미국식 시장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19세기 미국으로 가 보자. 당시 미국의 보험회사들은 ‘장묘보험graveyard insurance’이라는 생명보험 상품을 팔았다. 생명보험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을 피보험자로 설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19세기 미국에서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타인을 피보험자로 지정하고 그가 죽었을 때 자신이 보험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이 가능했다.

무법천지의 서부 개척 시대, 허리에서 권총을 뽑는 속도가 생사를 가르는 서부극을 떠올리면 장묘보험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장묘보험 가입자는 보험료가 비쌀수록, 그리고 보험금이 많을수록 피보험자가 어서 죽기를 바라게 된다. 피보험자가 날마다 환하게 웃으며 건강을 과시한다면, 보험금이 지급되는 시기를 직접 결정하고픈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원래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보험 상품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신용부도스와프를 구매했다. 신용부도스와프 구입자는 1년에 계약총액의 0.5~1퍼센트를 수수료(보험료)로 판매자인 투자은행에 납부한다.

예를 들어 만기 5년짜리 회사채의 신용부도스와프를 판매했다 치자. 5년 후 채무자, 즉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이 빚을 갚으면 투자은행은 5년 동안 받은 수수료만큼 수익을 거둔다. 물론 5년 후 채무자가 빚을 못 갚는 사태가 발생하면 신용부도스와프 판매자, 즉 투자은행은 계약대로 목돈을 지급해야 한다. 그래서 위험도가 높은 채권에 대해서는 신용부도스와프를 판매하지 않는다. 부도가 나도 채권자는 최소한 95퍼센트의 원금을 건질 수 있다.

만약 보험금을 채권의 10배로 계약했다면 신용부도스와프 구입자는 막대한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수수료도 10배로 커지기 때문에 예상한 대로 부도가 나지 않으면 피가 철철 흐른다. 도박도 이런 도박이 없다.

미국식 금융경제체제에서는 채권의 이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베팅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빅쇼트〉라는 영화의 탄생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의 펀드 매니저 마이클 버리가 비행기를 타고 뉴욕까지 날아가서 골드만삭스와 체결한 계약이 바로, 1억 달러 규모의 신용부도 스와프 매수다. 미국의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마이클 버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와 마이클 버리가 신용부도스와프 매수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주택 구입자의 빚 문서는 거대한 도박(머니게임)의 일부가 된다. 정작 주택 구입자는 자신의 모기지론이 도박꾼들의 베팅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신용부도스와프는 현대판 장묘보험이고, 남이 망하기를 갈망하는 금융상품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만약 누가 특정 기업이 파산한다는 기대를 전제로 신용부도스와프 증권을 구입했다면, 그는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부터 그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혹시라도 그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공적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면 사회주의 노선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할지도 모른다. 공매도와 신용부도스와프는 베팅 대상이 망할 때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개념이다. 

여담이지만 미국의 총기규제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인치고 미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NRA의 로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회원만 해도 500만 명에 달하고, 매년 수백만 달러가 정치권에 뿌려진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총기사고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심지어 4명의 대통령을 총격으로 잃었음에도, 미국의 총기 시장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1999년 4월 20일, 콜로라도주 컬럼바인고등학교에서 두 청소년이 기관단총으로 900여 발의 실탄을 난사하여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을 다치게 했다. 왕년의 명배우이자 당시 미국총기협회 회장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은 총기 소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고 용기 있는 자들의 고향인 미국을 지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 제 역할을 하겠습니다.” 

미국총기협회는 생물학과 페미니즘도 이용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많은 골밀도와 근육을 가지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폭력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총기를 소지하고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자유주의적 명분이야 그렇다 치고, 미국에서 팔린 총기가 이미 3억 5,000만 정에 달해서 총기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미국은 민간인의 금 소유도 금지했던 나라 아닌가? 만약 당신에게 금과 총 가운데 하나를 내놓지 않을 경우 징역 10년에 벌금 1억 원을 부과하겠다고 하면 금을 버리겠는가, 총을 버리겠는가?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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