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차이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증권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단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부富, 즉 재화와 서비스는 그대로 있다. 다만 종이 쪼가리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노동의 성과를 화폐 또는 통장에 저축해 둔 사람은 많은 것을 잃는다.

그러나 그 노동이 만들어낸 생산물은 어디엔가 남아있다. 지구의 부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불편을 덜기 위해 물물교환시장이 도처에 형성될 것이다.

거꾸로 세상의 모든 재화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 모두 벌거벗은 채 허허벌판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지구의 부는 즉각 제로(0)가 된다. 실물 기반이 없으면 금융경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태생적 차이를 알아야한다. 실물경제를 산업경제라고도 한다. 재화와 서비스가 실물경제를이루는 기본 자원이다.

실물경제에서는 돈이 (가)에서 (나)로 이동할 때 그에 상응하는 재화 또는 서비스가 동시에 이동한다. 돈과 재화, 혹은 돈과 서비스의 이동 방향은 서로 반대다. 그런데 금융경제에서는 재화 또는 서비스의 이동 없이 오로지 돈만 왔다 갔다 한다. 그러면서 거품을 키운다.

환율, 주가, 금리 등의 시장지표는 모두 금융시장의 동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실물경제를 반영하는 지표로는 임금, 물가, 수출입, 실업률, 소비, 설비투자 등이 있다.

실물경제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이론이 금융경제 쪽으로 가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수요와 가격의 관계를 살펴보자.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감소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애플의 주가가 겁나게 치솟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자본이 그쪽으로 확 몰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원래 돈의 기능이 무엇인가? 교환의 매개, 즉 상품과 상품의 교환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산업은 목적이고 금융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팽창하면서 금융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대략 19세기 말부터 그런 조짐이 조금씩 드러나다가 1980년대에 자본가가 주도하는 금융경제는 실물경제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자신의 제국을 건설했다. 실물경제는 금융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다. 주주shareholders의 이익은 중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시하다 보니,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 실적에 경영의 초점을 맞춘다. 기업사냥꾼에게 기업은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금융상품일 뿐이다. 그들은 값을 올려 받기 위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를 해고함으로써 회계장부의 당기순이익을 끌어올리는 수법을 즐겨 쓴다. 연구개발과 창의적인 마케팅은 뒷전으로 밀린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몰두하는 재테크는 노동이나 재화의 투입 없이 돈으로 돈을 버는 머니게임money game에 지나지 않는다. 머니게임은 정보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쓰레기 정보를 대량으로 유포하고 고급 정보를 독점하는 소수 자본가에게 놀아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이 돈만 벌면(이자소득이 그런 경우다) 그나마 봐줄 만한데, 돈이 일으킨 거품이 실물경제를 아주 망쳐 놓기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무너뜨린 신용부도스와프의 계약규모는 2007년 말에 약 60조 달러였다. 2007년 세계총생산은 약 55조 달러다. 이 상황을 짧은 풍자극으로 재연해 보자.

재무대신 빚을 못 갚는 백성이 점점 늘고 있어 국가 경제가 매우 위태롭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재무대신 위험을 헤지hedge해야죠.
헤지? 그게 무슨 말인가?
재무대신 그러니까 위험에 대비해서 보험을 든단 뜻입니다. 위험이 닥쳐도 안심할 수 있죠.
좋은 생각이야.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 보게.
재무대신 신용부도스와프라는 금융상품을 발행하는 겁니다. 불안에 떠는 백성들이 너도나도 이 상품을 구입할 겁니다. 경제는 안정을 되찾고 국고는 튼실해집니다.
아주 좋아. 당장 실행하게. 참, 신용부도… 그게 위험을 줄인다고 했나? 위험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되지?
재무대신 온 백성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60조 원 정도가 소요됩니다.
우리나라 백성이 1년 동안 생산하는 상품의 가치를 다 합치면 얼마인가? 
재무대신 약 55조 원입니다.
그러니까 55조를 지키기 위해서 60조를 쓴단 말인가?
재무대신 네, 그렇습니다.

2014년 파생상품 규모는 650조 달러를 초과해 세계총생산의 9배가 넘는다.15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가? 만약 그 650조 달러의 통화가 사람들의 ‘필요needs와 욕구wants’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녕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모기지론에서 파생한 금융상품의 본질을 잘 들여다보자. 향후 수십 년간 주택 구입자가 내는 이자는 주택담보대출은행이 아니라 파생상품 구입자들이 나누어 갖는다. 이처럼 ‘미래에 발생할 수익’이 증권으로 만들어져 채권시장에서 거래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거품을 만들어내는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다.

금융경제가 빚어내는 시장규모가 현재의 세계총생산보다 월등히 큰 이유는, 현물상품이 수천 종의 파생상품으로 부풀려질 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동이 생산할 재화와 서비스까지 현재의 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쌀독이 비어서 쌀을 사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컴퓨터 앞에서 미국산 밀 선물과 호주산 밀 선물 중에서 무엇을 찍을지 고민하는 것은 스포츠카 애호가가 페라리를 살지 람보르기니를 살지 따져보는 것과 다르다. 커피 선물을 하룻밤에 수백 번씩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사람은 있어도 하루에 커피를 수백 잔씩 마시는 사람은 없다.

‘필요와 욕구’는 쌀과 커피와 페라리를 선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천문학적 규모의 파생상품 거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차이는 금융시장의 수요와 현물시장의 수요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융상품을 이해하려면 ‘투기와 탐욕’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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