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마이너스 금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은 ‘양적완화’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양적완화에 대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 중에도 거의 없었다. 인류사에 유례없는 경제적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개념 앞에 또 한 번 어리둥절해했다. 마이너스 금리는 금세공업자들이 금을 맡긴 부자들에게 보관증을 써주던 시절에나 있던 이야기였다.

국내 한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ank of Japan, BOJ은 2018년 1월 23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지금처럼 마이너스(-) 0.1퍼센트로 동결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 목표치도 현행 0퍼센트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은 2016년 2월 16일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했다. 앞으로 일본의 시중은행과 금융기관들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에 예치한 돈에 대해서 -0.1퍼센트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예금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보관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은행에 돈을 예금하면 당연히 이자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마이너스 금리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이너스 금리가 대출에도 적용된다면,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거꾸로 채무자가 이자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은행에서 1,000억 엔을 빌린 다음에 1년 동안 장롱 속에 처박아 두었다가 999억 엔을 갚아 버제리면, 깔끔하게 1억 엔이 내 수중에 떨어지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꿈같은 일은 생기지 않는다. 시중은행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일반인이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중앙은행은 일반인을 상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의 대출 금리(여신 금
리)가 더 낮아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당연히 예금 금리(수신 금리)도 떨어지게 되어 있다. 실제로 일본의 미쓰이스미토모은행三井住友銀行, SMBC은 보통예금의 금리를 사상 최저인 0.001퍼센트로 낮추었다. 10억 엔을 보통예금 통장에 1년간 넣었을 때 1만 엔이 불어난다. 더 이상이자소득으로 먹고살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은행의 수익 모델은 간단하다. 싼 이자로 예금을 받아 그보다 비싼 이자로 대출하여 이익을 남긴다. 대출 금리에서 예금 금리를 뺀 값을 ‘예대마진’이라고 한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돈에 대해서 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시중은행의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출 금리가 낮아진다는 것은 시중은행의 예대마진이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시중은행은 예대마진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예금 금리를 낮추려 한다.

예대마진=대출 금리-예금 금리

만약에 시중은행이 일반인이 맡긴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너도나도 돈을 찾아 현금으로 보관하려고들 것이다. 파산하는 은행이 생길 수도 있다. 은행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송금수수료와 환전수수료 등 돈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수수료를 올릴 가능성이 많다.

이래저래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진다. 일반인의 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런 사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스위스의 일부 은행은 개인예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싫으면 돈 빼 가라’는 식의 배짱이다. 이런 금융상품이 팔리는 것은, 보관료를 내더라도 안전한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는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2014년부터 -0.1퍼센트 금리를 시행해서 -0.3퍼센트까지 떨어뜨렸다. 덴마크가 -0.65퍼센트이고 스웨덴은 -0.5퍼센트다.

스위스는 기준금리가 무려 -0.75퍼센트다.13 그래서 스위스의 한 지방 세무서가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최대한 늦게 내 달라’고 요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세금을 받아서 은행에 예치하면 보관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마이너스인 세상에서는 현찰의 매력이 커진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어찌 되든 0퍼센트의 금리가 보장되니까. 스위스에서는 1,000프랑권(한국 돈으로 약 124만 원) 지폐가 큰 인기를 끌고 있고, 금고제작회사의 매출이 25퍼센트나 늘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금을 떠올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금과 현찰, 둘 다 이자가 안 붙는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가치 보관에 유리할까? 물어보나 마나다. 어떤 경우에도 금은 최고의 안전자산이다. 현찰은 인플레이션에 취약하지만 금은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끄떡없다. 금리가 올라갈수록 금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경제 불안을 야기할 때, 금의 매력은 다시 올라간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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