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뉴욕(Hotel New York)이 가지는 ‘시작’의 에너지/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는 도시를 먹여살리는 젖줄이다. 육로가 발달되지 않았던 지구촌에서 항구는 경제 번영과 제3국 수탈의 전진 기지다. 세계 무역의 역사가 항구의 역사라는 얘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땅과 하늘의 길이 열려 있는 요즘에도 항구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시설은 낡고 늙어져 가면서 재도시화가 세계적으로 한창이다. 도시가 항구로 되었던 과거에서 항구가 도시로 변환되고 있다. 이제 도심 인근 항구(보통 내항)의 탈산업화는 비단 서구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오래 전 항만재편 계획이 발표되었으며 인천, 부산 등 대표적인 항만도시들의 항만구조 재배치 및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항만도시가 재개발 되었을 때는 바다를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의미로 친수공간 조성 및 수공간활용 등이 주요한 의논과제이며, 기존 단절되어 있던 도심과의 연계 또한 필수과제이다. 이제 점차적으로 우리나라 시민들도 되찾은 바다와 인접해지며 항만재개발로 인해 도시구조가 확장되는 시기를 일상 속에서 맞이할 것이다.

 

연재 칼럼 ‘도시 부둣가 이야기’의 필자 박혜리 도시건축가는 항만재개발 마스터플랜용역에 건축에서부터 도시설계 및 계획까지 다양한 범위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으며 디자인실무 이외에도 도시 리서치 와 전시기획 및 집필도 하고 있다.

 

특히 필자의 주된 관심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양한 사회주체가 그들의 일상으로 하여금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도시를 형성‧재형성 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소신이다.

 

박혜리 도시건축가는 “항만도시로 유명한 로테르담 시에 10여년을 거주하며 생활 속에서 이미 항만재개발의 영향을 느껴왔다”며 “일상과 실무에서 배우고 느꼈던 항만재개발의 의미 있고 주목할 만한 사례를 한국에 공유하여 앞으로 있을 항만재개발이 시민들에게 좀 더 열린 방향으로 추진하는데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외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연재 이유를 밝혔다. <편집자 주>

필자가 다니는 회사 사무실은 ‘로테르담 남항’의 초콜릿창고를 개조하여 들어가 있다. 회사를 갈 때마다 빈 공터에 오래된 건축물이 꽤 오래 비어져 있는 채로 외롭게 서 있는 것을 매일 봤는데 도대체 무슨 건물인지 궁금했다.

출근길에 있는 나사우하벤 (Nassauhaven)지역은 항만산업시설, 즉 항구에서 바로 원료를 공급받아 생산을 했던 공장들이 들어차 있던 공업지대였지만 이미 개발이 이루어져 항구는 도심공간이 된지 오래되었다.

공장지대는 대부분 녹지화, 공원화 되었는데 녹지 위 홀로 수년을 빈 채로 남겨져 있던 빌라 판 바닝(Villavan Waning)이었다. 옛 공장의 사무실이었던 건물인데 그 가치가 인정되어 철거되지 않고 국가유산으로 남겨졌으나 오랜기간 쓰임이 없는 채로 비어져 있다.

이 건물은 최근 창의적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젊은 기업, ‘뉴인더스트리(New Industry Development)’라는 디벨로퍼에 팔려 레스토랑으로의 변신을 기다리고 있다. 로테르담 남측은 여전히 범죄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인데, 이 빌라를 ‘호텔뉴욕’처럼 레스토랑으로 개조하여 지역활성화를 기대한다고 한다.

개발회사의 대표, 빈센트 탑큰(Vincent Taapken)은,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레스토랑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개발’로 보고 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하여 ‘호텔뉴욕’의 미니(mini) 버전으로서 로테르담 남측 페이엔노르트(Feijenoord) 지역을 발전시킬 것이다①“ 라며 포부를 밝혔다.

▲호텔 뉴욕의 미니 버전으로 지역을 활성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빌라 판 바닝 현 모습 ©박혜리
▲호텔 뉴욕의 미니 버전으로 지역을 활성시켜줄 것으로 기대되는 빌라 판 바닝 현 모습 ©박혜리

호텔뉴욕. ‘개척자 프로젝트(Pioneer project)’의 대명사가 된 호텔뉴욕(Hotel New York)은 미국 뉴욕 맨하튼이 아닌 네덜란드 로테르담 남측 콥판자우드(Kop van Zuid②)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미국과 유럽을 잇는 선박라인을 주관하는 홀란드-아메리카 라인 (Holland Amerika Lijn / HAL) 사무실로 1901년에 지어졌다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는 이민자들의 임시 숙소로도 사용되었고 이후 항공 여행이 상용화되면서 1980년대 항만지역이 쇠락하여 비어졌다.

1980년대 무단점거자들이 임시 점거를 했다가 로테르담 시정부가 매수했다. 이후 이 건물의 가능성을 알아 본 세 명의 사업가, 단 판 데르 하브, 할스 로스, 도린 드 보스(Daan van der Have, Hans Loos, Dorine de Vos)가 시정부의 지원으로 이곳을 호텔로1993년 탈바꿈하여 재개장을 했고 이 프로젝트로 하여금 지역을 점진적으로 개발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1959년 빌헬르미나부두가 왕성히 사용되던 때. 왼쪽은 여객선, 오른쪽은 화물선 부두이다. 가운데 HAL(Holland-Americaline)사무실 이자 현 호텔뉴욕 건물이 서 있다.© Provinciaal Historisch Centrum Zuid-Holland
▲1959년 빌헬르미나부두가 왕성히 사용되던 때. 왼쪽은 여객선, 오른쪽은 화물선 부두이다. 가운데 HAL(Holland-Americaline)사무실 이자 현 호텔뉴욕 건물이 서 있다.© Provinciaal Historisch Centrum Zuid-Holland
▲이제는 노인이 된 당시 젊고 진취적인 창업자 세 명, 단 판 데르 하브, 할스 로스, 도린 드 보스(Daan van der Have, Hans Loos, Dorine de Vos) https://hotelnewyork.nl/25-jaar/de-pioniers/
▲이제는 노인이 된 당시 젊고 진취적인 창업자 세 명, 단 판 데르 하브, 할스 로스, 도린 드 보스(Daan van der Have, Hans Loos, Dorine de Vos) https://hotelnewyork.nl/25-jaar/de-pioniers/

2018년은 호텔뉴욕이 1993년 개장 한 이래로 개장 25주년을 맞이하는 해라서 특별히 로테르담역사박물관과 호텔뉴욕에서 ‘개척자들의 이야기(Story of Pioneers)’라는 제목으로 25주년 기념 전시 및 행사를 진행했다.

전시내용에 따르면, 단(Daan)과 한스(Hans)는 애초에 로테르담 여러 곳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도리네(Dorine) 또한 헤이그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빌헬르미나부두에 갔다가 관련자가 ‘이 건물이 호텔로 바뀌면 멋질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바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셋이서 계획을 세웠고 시 정부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테르담시의 도시개발본부의 본부장격인 릭 바커(Riek Bakker, directeur Stadsontwikkeling)가 특히 그들의 계획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고, 점차 진행될 빌헬르미나부두 개발의 서곡과 같은 프로젝트가 될 것을 자신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위험부담이 컸다. 지금은 화려하게 로테르담 남북을 연결하는 에라스무스다리가 당시에는 없었고 부랑자들이 넘처나는 우범지대였으며 항만기능이 폐쇄되어 일반사람들이 더 이상 가지 않는 ‘no-go’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세 명은 직접 1년여의 리모델링 기간동안 거의 매일 상주하다시피 현장에서 공사를 진행하였고 확실한 비전만큼 열정이 가득했다.

공사가 끝나고 막상 개장을 한 초기 2년동안은 너무나 바빴다고 한다. 당시 로테르담 시민들 누구나 가족 중 HAL사무실이나 배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나 친척이라도 꼭 한 명 씩은 있었기에 ‘로테르다머 (Rotterdammer)’들에게는 향수에 젖어 당시를 회상하기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의 기본 철학은 “모든 사람들이 적은 돈을 가지고도 들어올 수 있어야한다”는 점이었다고 말한다. 해산물로도 유명한 호텔뉴욕식당은 필자가 애정하는 식당이기도 하다. 항상 친구가 놀러오면 시간이 되는 한 꼭 데리고 가는 필수코스이다. 로테르담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스(Maas)강변으로의 아름다운 풍광과 또한 맛있는 해산물이 있기 때문이다.

▲호텔뉴욕 내부 레스토랑 ©박혜리
▲호텔뉴욕 내부 레스토랑 ©박혜리
▲호텔뉴욕의 자랑, 3단 해산물 플라터 ©박혜리
▲호텔뉴욕의 자랑, 3단 해산물 플라터 ©박혜리

초창기는 에라스무스다리가 건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었다. 당시 이 세 사람은 그때 워터택시 (Water taxi)사업도 고안하여 누구나 도심에서 강 건너 호텔뉴욕에 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리나 터널을 건너 트램이나 지하철을 타고도 이곳에 올 수 있지만 이 워터택시는 여전히 로테르담의 유용한 교통수단이자 엔터테인먼트 요소 중 하나이다.

▲호텔뉴욕 앞 워터택시 정류장. 호텔뉴욕 설립자가 워터택시도 설립하였다. ©박혜리
▲호텔뉴욕 앞 워터택시 정류장. 호텔뉴욕 설립자가 워터택시도 설립하였다. ©박혜리
▲물길을 가르며 나타난 워터택시 ©박혜리
▲물길을 가르며 나타난 워터택시 ©박혜리
▲에라스무스 다리와 옛 부두의 흔적을 온전히 간직한 빌헬르미나 부둣가 ©박혜리
▲에라스무스 다리와 옛 부두의 흔적을 온전히 간직한 빌헬르미나 부둣가 ©박혜리
▲호텔뉴욕 앞 광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박혜리
▲호텔뉴욕 앞 광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 ©박혜리
▲항만 계선주를 의자삼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 ©박혜리
▲항만 계선주를 의자삼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 ©박혜리

뉴욕의 처음 이름이 ‘뉴암스테르담’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뉴욕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으로, 아직도 뉴욕에는 네덜란드식 이름이 존재한다. 할렘,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 브롱스, 플러싱, 스테이트아일랜드 등의 이름은 네덜란드지명에서 유래했다.

이후 영국에게 넘겼지만, 당시 ‘개척자③ 정신'이 ‘호텔뉴욕’의 항만개발의 ‘개척자’정신으로 이렇듯 네덜란드에서 다른 형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콥판자우드(Kop van Zuid)의 빌헬르미나부두의 개발은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러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필지별 점진적으로 개발 중이다. 호텔뉴욕의 장소만들기 전략이 없었다면, 세 명의 개척자들이 워터택시라는 아이디어까지 동원하며 그리고 ‘가성비 좋은’ 호텔과 식당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당시 ‘No-Go’지역이었던 이곳의 전체 사업의 추진은 동력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재 호텔뉴욕과 개발 중인 빌헬르미나피어 ©박혜리
▲현재 호텔뉴욕과 개발 중인 빌헬르미나피어 ©박혜리

이 곳의 성공은 어디 대기업이 하향식으로 단번에 거액을 투자한 것도 아니며, 대단한 앵커시설도입의 논의가 먼저가 아니었다. 시정부의 여러 배려를 받으며 이미 로테르담 시내에서 식당운영 경험이 있는 근처에 있던 다수의 시민 기획자들이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이러한 개척자 프로젝트(Pioneer project)를 용감하게 추진하였기에 가능했다.

기존 산업시대의 유산 및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며, 이렇듯 시민들의 창의성과 역량이 또 다른 지역의 자산으로 항만 재개발에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저절로 인접한 원도심과의 연계, 지역자산 활용, 시민참여, 그리고 점차적으로 진행되는 점진적 재개발 등 기본적인 항만 재개발의 모범적 전략을 모두 다 사용하게 될 것이다.

다음편으로는 호텔 뉴욕 맞은편에 위치한 2000년대 버전의 개척자 프로젝트, 페닉스푸드팩토리(Fenix Food Factory)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호텔뉴욕앞 부둣가에서 보이는 페닉스창고 군 ©박혜리
▲호텔뉴욕앞 부둣가에서 보이는 페닉스창고 군 ©박혜리

[각주]
①(https://nieuws.top010.nl/openbare-verkoop-villa-van-waning-t-b-v-herontwikkeling.htm)
②(영어로 Head of the South: ‘남측의 머리’라는 뜻)
③(사실 역사적인 측면으로 침략자로 보는 것이 맞으나, 빈 땅을 일군다는 개념으로 국한하여 개척자로 보았다.)

▲박혜리 (도시건축가)

-네덜란드 도시계획사(SBA, Stedenbouwkundige)-

-KCAP 프로젝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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