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 맞으며 이낙연 기자와 DJ 밀착 취재
쉴 새 없는 대통령 연설문 작업에 죽은 듯 쓰러져
소진 후 찾아든 고요의 체험 직후 아침편지 시작해
IT사업기회 있었지만, 물 솟는 옹달샘 있으니 행복
신뢰 정치, 미래 리더십 연속성 위한 교육에서 해법 찾아야
힐링 전진기지 산림치유원, 세계적 랜드마크로 만들고파
한국 힐링산업 발전의 관건은 ‘휴식+치유’ 제도적 뒷받침
체화된 ‘가정힐링’에 ‘숲 치유’ 더해질 때 인생 달라져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짝사랑 11세 소녀에게 연애편지를 썼던 소년, 학생시절 정의감으로 악의 시대를 형상화했다가 강제징집 당해 맹수 우리에 던져진 양처럼 두들겨 맞았던 청년 고도원, 빨간 도장 탓에 이력서조차 낼 수 없어 절망의 10년을 보냈지만, 그는 절망 너머에 있을 자신의 꿈, ‘활자냄새’를 잊지 않았다.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5년 동안 밑동을 키워낸 고도원의 꿈은 신문사로 향했다. 평민당 출입기자 시절, 그는 동아일보 이낙연 기자(현 국무총리)와 함께 눈비를 맞아가며 새벽 4~5시부터 김대중 총재 자택 앞을 지켰다.

“겨울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문이 열리고 거실로 들어가면 한결 나았습니다. 그때 늘 맞아주신 분이 이희호 여사님이었어요. 총재가 좋아하시는 인절미도 내오시고, 비비빅, 그거 저도 좋아하는데, 그것도 내오시고, 차도 주시고, 손님이 없을 때는 안방까지 내주셨습니다. 평소에 말씀은 없으셨지만, 모든 걸 살피는 분이셨지요. 이제 가셨으니 두 분이 함께 행복하시리라 믿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로 가득하던 고도원 작가의 눈동자가 이희호 여사 이야기에 잠시간 흔들렸다.

질의하는 고도원 기자(자료:깊은산속 옹달샘) ⓒ스트레이트뉴스
질의하는 고도원 기자(자료:깊은산속 옹달샘) ⓒ스트레이트뉴스

 

동교동의 새벽과 커피자판기

_지금은 기자들이 당 대표 자택으로 가는 시대가 아니다. 그때는 정치부 취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6시나 7시쯤 아침 먹을 때가 되면 총재가 거실에 앉으시고, 저와 이낙연 기자, 당 사무총장, 장영달 전 의원 등이 동석해 식사하면서 보고도 했다. 총재가 저와 이낙연 기자를 신임하셨다. 식탁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소속 신문사에다 가려서 보고하곤 해서 그러신 것 같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면, 언론판에서 소위 ‘야마’라고 부르는, 야당 총재가 이야기한 ‘꼭지’를 잡아서 회사에 보고했다. 그 내용에 따라 기자들이 당으로 가고 또 필요한 곳으로 취재를 나가곤 했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초인 98년에 불러주셔서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연설문을 맡겨놓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물론 마지막에는 손수 고치고 일부 구술도 하고 그러셨지만.”

_통상 처음에 대통령이 자신의 의중을 먼저 구술하는 것 아닌가?

“취임 전 3년 동안 매일같이 식사하면서 깊은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또 대통령의 생각이 모두 옥중서신에 담겨 있는데, 그걸 수십 번을 읽어서 품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세세하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연설문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

_일국의 대통령이 할 말을 정리하는 작업,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어려웠다. 대통령 연설문은 한 가지 사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파도와도 같다. 심혈을 기울여서 한가지를 끝내고 나면 또 이어 나온다. 그걸 마치고 나면 또 오고, 또 오고. 완전히 커피 자판기였다. 누르면 나와야 하니까. 그런데 그게 되나? 기자 때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런 초긴장 상태가 연설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아, 저거 토씨 틀렸네, 조사 틀렸는데, 저거 아닌데, 이러면서 말이다.”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임명된 글쟁이 고도원(자료:깊은산속 옹달샘) ⓒ스트레이트뉴스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임명된 글쟁이 고도원(자료:깊은산속 옹달샘) ⓒ스트레이트뉴스

 

소진(消盡) 후에 찾아든 고요

_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는 독자가 385만 명을 넘어섰다. 아침편지를 시작한 동기가 있나?

“대통령 연설문 5년 쓰다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긴장도가 너무 심했다. 목과 어깨가 굳어지고, 손에 마비가 오고, 식은땀도 흐르고. 어느 날, 3시간만 몰입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마쳤다. 일어서려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데 ‘빡’ 하는 소리가 났다. 팽팽했던 고무줄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쓰러졌다. 모든 걸 연소한 느낌, 죽었다는 느낌, 아니 실제로 죽었던 것 같다.”

_‘연소’, ‘죽었다’, 표현이 무겁다.

“깨어난 이후에 모든 게 달라졌다. 전쟁터에 가면 총소리, 대포소리가 들리고, 도시에서는 소음이 들린다. 깨어난 후에도 대포소리와 소음이 들렸지만, 그 사이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새소리, 바람소리가 대포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엄청난 체험이었다. 정치도 자리도 의미를 잃었고, 보이는 거 들리는 거, 모든 게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고요함이 들어왔다. 그때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_아침편지는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이메일 뉴스레터’ 형식을 취했다. 이메일 뉴스레터는 일반 기사와는 전혀 다르다. 에피소드가 있나?

“연설문은 공적인 글이니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편지는 정서적으로 부드럽다. 이메일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2001년 8월에 몇몇 지인들에게 처음 편지를 보냈는데, 2년 사이에 100만 명, 현재 385만 명으로 불어났다. 저에게 사업 마인드가 있었다면 지금 아마 IT업계에 몸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NC소프트 사장인 윤송이씨가 그때는 SK에 있었는데, 사업을 하자고 했다. 어떤 재미교포 분도 오셔서 그랬고. 그런데 무슨 소린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봉사하려고 작정한 사람한테 비즈니스를 하자고 하니 어떻게 알아들었겠나.”

_지금 같으면?

“바로 하지.(웃음) 봉사를 더 크게 할 수 있잖나. 했으면 아마 페북을 능가할 수도 있었을 걸?(웃음) 그래도 깊은산속 옹달샘을 얻었고, 그 샘에서 물이 퐁퐁 솟으니 좋다.”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 당시를 술회하는 고도원 이사장(2019.06.17) ⓒ스트레이트뉴스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 당시를 술회하는 고도원 이사장(2019.06.17) ⓒ스트레이트뉴스

 

‘꿈’으로 출발해 10년 만에 일궈낸 ‘꿈 너머 꿈’

_작가의 ‘꿈’은 글쟁이였고, ‘꿈 너머 꿈’은 국내 최대 힐링명상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인 것 같다. 어떻게 이뤄냈나?

“아침편지를 시작은 했지만, 사실 매일 쓴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글재주나 테크닉을 넘어 고요 속에서 솟아나야 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좌선과 호흡, 스트레칭 이완, 그러니까 명상을 하게 됐다. 이미 세속의 관심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명상을 하면서 ‘나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다가 지치고 무너진 사람들도 고요 속에서 영감을 찾고 치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라났다. 그러다가 2003년 임기 마친 후에 배낭에 노트북 넣고 동유럽으로 갔는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쉔부른 궁전(Schlob Schobruon)을 보는 순간 ‘꿈 너머 꿈’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합스부르크 왕가 최전성기에 세워진 60만 평의 여름궁전, 아, 이런 게 있으면 치유와 명상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 힐링센터로 딱이겠다, 싶었다. 그 자리에서 센터 이름이 떠올랐다. 그게 ‘깊은산속 옹달샘’이다.”

_60만 평짜리 매머드 힐링센터를 혼자 할 생각은 아니었을 텐데?

“대략 계산해 보니까 800억 원 정도가 필요했다. 20년 장기 프로그램의 밑그림을 그린 다음에 정치권과 기자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설파하고 다녔다.”

_반응이 어땠나?

“어땠을 것 같나?”

_60만 평에 800억... 솔직하게 말해서, 방금 스쳐지나간 생각은, “또라...이?”

“하하하. 정확하다. 다들 ‘쯧쯧, 드디어 고도원 저 인간이 갔네, 갔어. 고도(高度)의 사기꾼 원(one)이 탄생했어’ 이랬다.”

_꿈 너머 꿈이 실체를 드러냈으니, 누가 뭐래도 가는 길만 남은 상태였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로 작정하고, 아침편지문화재단이라는 공공재단을 만들어서 집부터 기부한 후에 아침지기(아침편지 가족)들에게 호소도 하고 모금도 좀 하고 그러면서 출발했다.”

_원형이나 모델 같은 게 있었나?

“틱낫한 스님이 ‘온전한 사고’를 표방하면서 세운 ‘풀럼 빌리지’를 밑그림 삼았다. 거기에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와 인도 오로빌(Auroville) 공동체, 그리스 메테오라(Meteora) 수도원, 오스트리아 멜크(Melk) 수도원 같은 데를 다니면서 벤치마킹도 했다. 수백 번의 토론과 수정을 거쳤다. 꿈 하나로 시작한 게 결국 국가예산 한 푼 없이, 20년을 10년으로 당겨가면서 꿈 너머 꿈의 무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명상 중인 고도원 작가(자료:KBSN '파워피플' 화면 갈무리)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명상 중인 고도원 작가(자료:KBSN '파워피플' 화면 갈무리)

_12가지 꿈 이야기를 읽어봤다. 아침편지 배달은 이루어졌고, 문화재단과 힐링명상센터 꿈도 이루어졌다. 영어 편지와 중국어 편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영어 편지는 재원이 많이 들어간다. 아직이다. 정부도 정신이 없어 그런지, 관심만 주면 우리가 협력을 아끼지 않을 텐데... 중국어 편지는 하고 있다. 사드 사태 때 애를 먹었고, 지금도 여전히 어렵지만, 자료를 쌓아가면서 진행하고 있다. 현재 느슨한 연대 정도인데, 중국 측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알맞은 때가 곧 오리라 본다.”

_사마천은 “제일 좋은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고,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투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치권이 여전히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으로서, 우리 정치를 어떻게 보나? 해결할 방법은 있을까?

“할 말이 목구멍까지 가득하고 한번 터지면 방언까지 할 거 같아서 아예 닫고 있다. 제가 정치현장에 들어가진 않지만, 대신 세계에 없는 대안학교를 통해서 리더가 될 청소년을 키워내려고 한다. 이런 걸 꿈꾸는 이유는 미래 정치리더십이 보통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을 예로 들어보자. 리더십의 연속성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수시로 바뀌지 않나. 순간순간 내리는 결정이 민족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런 결정은 엄청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_현재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

“그 이야기다. 지금까지 옹달샘 링컨학교를 다녀간 청소년이 11,000명 정도 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 교육을 포함한 최고의 커리큘럼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이승훈 선생의 오산학교, 백범이 꿈꿨던 서명의숙(西明義塾), 일본의 정경의숙(政經義塾), 이런 건 제가 좀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미래 리더십의 연속성을 위한 교육, 이것으로 답을 대신하겠다.”

국립산림치유원에서 바라본 은하수(자료:국립산림치유원) ⓒ스트레이트뉴스
국립산림치유원에서 바라본 은하수(자료:국립산림치유원) ⓒ스트레이트뉴스

 

힐링 전진기지 산림치유원,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_산림청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의 2대 국립산림치유원장을 맡고 있다.

“우리 치유원은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효자면 일대 153헥터에 조성된 국내 최대 산림복지시설이다. 숲 가꾸기 개념이 휴양림으로, 또 치유 차원으로 변해왔는데, 저의 민간재단 15년 경험을 접목시키면 정말 좋은 치유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동료들과 함께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_치유원이 하는 일은?

“지덕권, 이곳은 랜드마크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대단한 힐링 전진기지다. 현재 산림치유원이 잘 돌아가도록 동선과 사람, 프로그램, 음식, 연구, 이렇게 다섯 가지 과제를 정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산림치유 효과와 교육프로그램의 효과도 검증하고, 환경자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면서 산림복지정책에 필요한 근거 자료를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직원들, 동료들 열성이 강해서 직장힐링이 되고 있는지 좀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_농림축산식품부 이개호 장관은 “힐링은 시대정신이자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했다. 김재현 산림청장은 산림치유의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숲속의 대한민국”을 꿈꾼다고 했다. 그 정의를 받아서 힐링을 산업적인 측면에서 정의하자면?

“두 분 지향점이 다 맞다. 힐링은 프로파간다(선전, propaganda)가 아니라는 점에서, 지향점에 콘텐츠와 경험, 프로그램이 합쳐져야 한다. 저는 어쩌다 보니 그게 몸에 들어와 있다. 두 분의 꿈이 체화되면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다. 세계적인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산업이다. 사람을 키워서 산업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곳 국립산림치유원이 대표적인 공간이다.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노력하겠다.”

국립산림치유원 내 주치마을 전경(자료:국립산림치유원) ⓒ스트레이트뉴스
국립산림치유원 내 주치마을 전경(자료:국립산림치유원) ⓒ스트레이트뉴스

 

한국힐링산업, 관건은 제도적 뒷받침

_올해 2월에 힐링산업협회 명예회장직을 수락하면서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했다.

“협회에 이시형 박사님도 계시고 해서, 감히 그분과 견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학 회장님과 백상진 부회장님은 비즈니스를 끌어가는 사람들이고, 저는 힐링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지 않나. 두 분야가 연결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시너지가 날 거다. 그 일, 기꺼이 감당하겠다.”

_(사)힐링산업협회와 ㈜이즈월드와이드가 주최하는 힐링페어가 올해 세 번째로 열렸다.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한국 힐링의 현주소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강력한 전시회로 부상했다.

“페어에 특강으로 참여하면서 흐뭇했다. 토대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이 단계까지 온 것에 감사한다. 물론 갈 길이 멀다. 앞으로 정제되지 않은 이슈들이 마구 쏟아질 것이다. 프로그램과 진정성을 고민해야 하고, 새로운 발상도 필요하다. 지금 속도라면 얼마 가지 않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도 넘어설 것 같다. 기대가 크다.”

_해외에 자주 나가시는데, 유럽, 미주, 일본 등 힐링산업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 힐링산업의 현주소는 어떻게 보나? 또 핵심적인 문제를 꼽자면?

“우리 수준 낮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좀 밀리는 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앞서 있는 부분도 있다. 문제는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이나 유럽, 특히 독일, 이런 쪽은 ‘쉴 휴(休)’에 치유 프로그램을 접목해 힐링을 의료체계 속에 안착시켜 놓았다. 처방도 되고, 보험도 된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기득권을 뚫어내기가 쉽지 않다. 계속 우회하고 있는 이유다. 이런 건 원시적이다. 또 힐링의 국제화도 중요한데, 제도적인 뒷받침이 베이스로 깔린다면 한결 쉬워질 것이다.”

국립산림치유원 업무를 보는 고도원 원장. 산림치유원은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효자면 일대 153헥터에 조성된 국내 최대 산림복지시설이다.(2019.06.17) ⓒ스트레이트뉴스
국립산림치유원 업무를 보는 고도원 원장. 산림치유원은 경북 영주시 봉현면과 예천군 효자면 일대 153헥터에 조성된 국내 최대 산림복지시설이다.(2019.06.17) ⓒ스트레이트뉴스

_현대인이라면 스트레스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본인만의 힐링 활동은?

“저는 스쿼트를 하루에 300번씩 세 번 한다. 호흡도 하고 요가도 한다. 언젠가 KBS ‘스트레스 어벤저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가장 잘 견디는 사람으로 지목됐다나... 그때 스트레스에 밀리지 않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트레스라는 스트레스에 밀리면 그 자체로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 스트레스도 에너지다. 그걸 전환해 긍정 에너지로 바꿔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치유다.”

_힐링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힐링 구루로서, 또한 국립산림치유원장으로서 국민들께 한 말씀 드리자면?

“힐링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체화하고 일상화하지 않으면 남의 것이다. 가정힐링의 제일 기본은 호흡이다. 아침저녁으로 깊고 고요하고 가는 호흡을 해 보면 5분 만에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어떤 형태로든 운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완운동이든 스트레칭이든 요가든 뭐든 좋다. 다할 필요 없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만 하면 된다.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근육운동이다. 그런 다음에 놀러 가든 쉬러 가든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꼭 산과 산에 있는 숲체험 시설이나 치유센터를 찾아서 마음이 가는 힐링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장담 드린다. 여러분의 인생은 거기서부터 달라질 것이다.”

인생길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라서 결국 홀로 절대고독의 강을 건너야 하지만, 그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작가 고도원, 그는 인터뷰 내내 ‘후대에 남겨줄 유산’이라는 새 꿈을 이야기했다. 그 꿈에 11세 소녀를 짝사랑하던 시골교회 꼬마의 설렘이 배어 있었다.
bizlink@straightnews.co.kr

고도원 작가가 펼치는 ‘꿈 너머 꿈’의 무대인 ‘깊은산속 옹달샘’ 천채방에서 스트레칭 중인 외국인 참가자(자료:깊은산속 옹달샘) ⓒ스트레이트뉴스
고도원 작가가 펼치는 ‘꿈 너머 꿈’의 무대인 ‘깊은산속 옹달샘’ 천채방에서 스트레칭 중인 외국인 참가자(자료:깊은산속 옹달샘) ⓒ스트레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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