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중증 문학병’에 걸린 소설가 이광복
중노동으로 뼈마디 물러나도 문학의 길 버리지 않아
이사장 취임 100일, 10대 선거공약사업 대부분 출발시켜
한국문학의 글로벌 확산과 노벨상 수상, 전제는 ‘번역’
육당과 춘원의 친일 전력 비판 마땅하나, 작품은 자산
힐링이란, 잘못된 방향을 인간 중심으로 끌어오는 것
문학 가까이 하고 책 많이 읽는 우리 사회 되길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꼬르륵 꼬르륵, 뱃속에서 피라미 여울 넘는 소리가 나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켰다.”

대작가 안수길의 초회추천(단편소설 ‘불길’, 1976)과 완료추천(단편소설 ‘향연’, 1977)으로 등단해 소설 ‘화려한 밀실’, ‘사육제’, ‘동행’, 장편소설 ‘풍랑의 도시’, ‘목신의 마을’, ‘폭설’, ‘불멸의 혼-계백’ 등을 발표한 소설가 이광복, 그의 어린 시절은 온통 찢어지는 가난으로 도배돼 있다.

힐링(healing)이 필요한 시대, 스트레이트뉴스는 특집 ‘힐링코리아 365’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이개호 장관과 세계 생화학 분야 석학 천병수 박사,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김재현 산림청장 등에 이어, 본보 김상환 본부장이 14,000여 문인들의 집합체인 한국문인협회의 새 수장, 이광복 이사장을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과 본보 김상환 본부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인터뷰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과 본보 김상환 본부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_올해 2월 취임 후 100일이 갓 지났다. 그동안 각종 문학상 시상식도 찾고, 3・1백주년 기념 시낭송회도 다녀오고, 염수정 추기경도 뵙는 등 바쁘셨다. 소회는?

“100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49개 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을 선임해 집행부 구성을 마무리했고, 이사장 취임 후 첫 이사회를 열어 정말 많은 사항을 의결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_'뱃속에서 피라미 여울 넘는 소리가 난다'는 표현이 요즘 말로 ‘웃프다’. 어릴 때 다들 힘들었지만, 특히 ‘굶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중학교 때 우리 집이 근동에서 제일 가난해 어머니가 부대자루를 들고 면사무소에 밀가루, 강냉이가루 배급을 받으러 다니셨다. 저는 저대로 부잣집에 가서 논매고 콩밭 매는 품을 팔고. 집안이 넉넉한 친구들은 하숙을 하고, 버스나 자전거로 통학했는데, 저는 부여 집에서 논산 학교까지 10km를 매일 걸어서 다녀야 했다.”

_그렇게 어려웠으면서 하필 ‘돈 안 되는’ 문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돌이켜보면 예닐곱 살 때 문학에 빨려든 것 같다. 집 마당에 아름드리 감나무가 있었다. 여름밤이면 마실꾼(동네 아저씨)들이 모여들었는데, 춘향전, 심청전, 삼국지, 옥루몽 같은 이야기책을 읽어드렸다. 어른들은 조용히 숨죽이고 듣다가 ‘저런 저런!’ 하고 놀라기도 하고, 상황이 반전되면 ‘와, 와!’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중에 이야기책 속 서사구조가 바로 소설이고 문학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 벌써 어른들 추임새에 빨려 들어가서 서사구조에 몰입했다. 중3 때는 이미 아무도 못 말릴 ‘문학병’에 빠져들어 있었다.”

_학비가 없었을 텐데 용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후에 집안사정이 좀 좋아졌나?

“아니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셨다. 중학교 다닐 때 너무 힘들어 담임선생님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연습문제지 필경 일로 학비 댈 길을 마련해 주셨다. 고등학교에서도 협동조합 구매부에서 일하도록 배려해 주셔서 근로장학생으로 수업료를 전액 면제받을 수 있었다. 공부하고 협동조합 일하고 필경하느라 힘들었지만, 문학공부를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업무 관련 자료를 살피는 이광복 이사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업무 관련 자료를 살피는 이광복 이사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_서울로 올라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나?

“고3 때 서라벌예술대학이 주최한 전국고교문예콩쿨에 단막희곡 한 편을 응모했는데, 당선작 없는 가작 1석으로 입상했다. 그해 가을 서울 성북구에서 시상식이 있었는데, 그때 대작가인 안수길,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선생님들을 처음 뵙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어떻게 서울로 오지 않을 수 있었겠나.(웃음)”

_당시 서울 생활은 어땠나?

“호적상 두 살 어린 미성년이라서 주민등록증도 없었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도 없고, 어디 이력서를 낼 수도 없었다. 구로동, 영등포 일대를 헤매면서 ‘반쭉정이 노동자’로 살았다. 중노동으로 뼈마디가 물러나고, ‘한때 공부 좀 했다’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어가면서 차츰 독종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문학은 버릴 수 없었다. 쫄쫄 굶어가면서 모은 돈으로 청계천 헌책방에서 보고 싶은 책을 구입했을 땐 얼마나 기쁘던지. 그렇게 2년 동안 고생하다가 호적상 나이가 만 18세 되던 해에 한 잡지사에 취직하면서 육체노동자에서 정신노동자로 전환됐다. 이후에도 쌀값, 연탄값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지만, 글을 쓰고 상도 받고 문학단체들이 불러줘서 직원으로 또 임원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지금도 구로동, 영등포 기억을 떠올리면 정신이 번쩍 들고 불퇴전의 용기가 되살아난다.”

_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선거 당시 10대 공약을 제시했다. 질문이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주춧돌을 놓은 공약이 있나?

“정부예산 확보 같은 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빼고는 대부분의 공약사업을 출발시켰다.”

_회원들에게 작품 발표 기회를 골고루 주기 위해 분과별 무크지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대하는 회원이 많으실 것 같다.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일단 편집의 기본 방향을 바꿔서 전보다 좀 더 많은 원고를 소화하고 있고,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회비를 완납한 회원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했다. 정리 작업을 거쳐서 내년쯤에 본격적으로 시도할 계획이다.”

‘월간문학’의 편집 방향과 분과별 무크지 발행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이광복 이사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월간문학’의 편집 방향과 분과별 무크지 발행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 이광복 이사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_각종 문학상 후보 추천권을 지회장과 지부장에게 부여하는 일은 어떻게 됐나?

“우리 협회가 주관하는 문학상이 한국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박종화문학상, 서정주문학상 등 12개 정도 되는데, 종래 각종 문학상 시상 규정을 일제히 개정했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건 셈이다. 현재 협회 내에 시, 소설, 시조, 희곡, 수필, 아동문학 등 10개 분과가 있는데, 지회장과 지부장들에게 문학상 추천권을 부여했다. 많은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_지역 문인협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신입회원이 내는 입회비 중 일정금액을 해당 지부에 교부한다고 했다. 또 우수 지부나 지회를 선정해 격려금을 지급하는 전국대표자회의도 개최한다고 했다.

“이미 규정을 개정했다. 우리 협회에 총 18개 지회, 180개 지부가 있는데, 입회비 중 20%를 해당 지부에 교부한다. 그리고 전국대표자회의는 올해 9~10월경에 출발하는 걸로 예정하고 있다. 몇 가지 개혁 드라이브가 더 있는데, 회원들에게 기회를 골고루 제공하기 위해 지회와 지부 문학콘테스트에서 과거 입상 경력이 있는 분들에게 기회를 또 드리지는 않도록 한 것도 있다. 물론 등위가 다르면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_이북(e-book)시장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시대적인 추세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적극 대응해야 할 텐데, 웹진 등 전자출판부와 전자도서관 설립은 추진되고 있나?

“그렇다. 전자문학위원회를 신설했고, 이북(e-book) 출판 경험이 많은 위원장님과 위원들을 어렵게 인선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 차츰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_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신년사에서 화해 제스처를 취한 이후 남북교류가 매우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남북 문학교류에 능동적으로 대비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대비할 계획인가?

“남북교류는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북미, 남북 관계가 무르익어 북쪽과 화해무드가 조성돼야 한다. 우리 협회에 남북문학교류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북한 내왕도 하고 ‘통일문학’이라는 잡지도 경영하고 있다. 이미 직능별로 전문화가 되어 있어서, 남북한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대로 문학교류 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올해 1월 실시된 한국문인협회 선거와 관련, 공약사업의 진척에 관해 대화하는 이광복 이사장과 본보 김상환 본부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올해 1월 실시된 한국문인협회 선거 당시 내건 공약사업의 진척 상황에 관해 대화하는 이광복 이사장과 본보 김상환 본부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_군소 문예지가 등단을 미끼로 구독이나 책 구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등단장사’가 여전해 함량 미달인 문인들이 배출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등단한 작가를 기성작가로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나?

“유럽이나 미국 등 문학 강국에서는 등단 없이 출판사와 거래를 통해 곧바로 작품 활동을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뮈엘 베케트만 해도 43번이나 퇴짜를 맞은 후에 성공하지 않았나.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 ‘마션’을 쓴 앤디 위어, 다 그렇다.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우리나라 문학계에는 ‘추천’이 있었다. 시는 세 번, 소설은 저처럼 두 번 추천을 받으면 등단이 가능했다. 우리가 잘아는 청록파 시인들, 그러니까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선생님들은 정지용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서 1939년 ‘문장’이라는 잡지를 통해 등단했다. 가까운 일본에는 ‘문예춘추’로 대변되는 추천제도가 아직도 있다. 추천제도가 사라진 것이 많이 아쉽지만, 자본주의는 가혹하다. 등단장사의 경우,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등단장사도 불황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단이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한다. 등단을 거쳤든 거치지 않았든 좋은 작가가 많이 배출돼야 하지 않겠나.”

_우리 문학이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번역의 수준 때문이라는 평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강 작가는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 글로벌 확산을 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

“멘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훌륭하다. 번역이 잘 됐다. 문학상의 경우, 스웨덴 한림원은 번역의 수준, 국가의 문학적 위상, 해외시장 책 판매량 등 여러 가지를 놓고 검증한다. 해당국 국민이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검증 대상이다. 다행히 해외에서는 우리 작가들의 작품 수준을 높게 평가한다. 특히, 일본은 한국 소설을 대단하게 평가한다. 그렇지만 번역이 잘 안 된다. 우리나라 문학진흥법의 골자는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두고, 국립한국문학관과 국립문학번역원을 세우는 것, 이렇게 세 가지인데, 정부에서 번역을 하고는 있지만 조족지혈이라 매우 아쉽다. 우리 협회 차원에서는 외국문학분과위원회에서 번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뒷받침을 하고 있다. 더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전영택, 박종화,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조병화 등 한국문인협회 역대 이사장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당시 시대상과 문학의 위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이광복 이사장과 본보 김상환 본부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전영택, 박종화, 김동리, 조연현, 서정주, 조병화 등 한국문인협회 역대 이사장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당시 시대상과 문학의 위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이광복 이사장과 본보 김상환 본부장(2019.05.31) ⓒ스트레이트뉴스

_조금 민감한 질문이다. 전임 이사장 때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이 별 이견 없이 통과됐지만, 친일 전력이 논란이 되자 문학상 제정을 백지화한 적이 있다. 당시 부이사장으로 재직했는데, “육당과 춘원이 친일 문제로 공격을 받지만, 친일 행각과 문학적 성과는 별개”라고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나?

“당시 문학상 제정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미당 서정주 작가를 예로 들자. 미당을 예찬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고창 미당문학관에 가보면 친일 시까지 네거티브로 다 전시를 해 놨다. 분명 친일 시를 쓴 것이 맞다. 그렇다고 미당의 문학을 전부 깔아뭉개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는 김연아와 미당을 곧잘 비교한다. 세계챔피언 김연아도 엉덩방아를 찧는다. 엉덩방아는 김연아의 일부다. 미당의 친일 시도 미당의 일부다. 물론, 김연아의 엉덩방아는 실수이고, 미당의 시에는 자의가 들어가 있다는 점은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모두 배척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어떤 사람들은 미당이 해방 후 경향신문에 발표한 ‘국화 옆에서’까지 ‘국화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라며 견강부회한다. 이는 우리 한국의 문학적 자산에 스스로 가하는 위해다. 용서도 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남선과 이광수의 친일 행각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은 소중한 문학적 자산으로 간직해야 한다.”

_이제 힐링을 이야기하자. 힐링이 대세인 시절이다. 우리 국민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 가정적으로는 가족이 해체돼 1인가구가 폭증했고, 마을이나 동네 차원에서는 공동체가 사라졌으며, 사회적으로는 경쟁이 더 극심해졌다. 심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문학이 살아야 인문학이 살고, 인문학이 살아야 사회가 한층 아름다워진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이 지닌 힐링의 가치는 크다. 문학인으로서 힐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잘못 가고 있는 것들을 인간 중심으로 끌어오는 것이 힐링이다. 저는 천주교인이다. 예수님을 예로 들겠다. 어느 날 한 바리새파 사람이 시비를 걸었다. ‘안식일에 왜 추수를 하느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든 기술개발이든 정치 권력이든 속도든, 개발하는 것도 사람이고 필요한 것도 사람이고 운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모두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인간이 거기에 종속되면 안 된다. 사람을 고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이다. 인문학은 사람 중심이고, 문학은 인생의 담론이다. 우리 사회는 이걸 도외시하고 돈 버는 법, 집 잘 사는 법, 이런 걸 가르치니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잘못된 방향을 인간 중심으로 끌어와야 하고, 그게 바로 힐링이다.”

(자료:brainblogger by Veronica Pamoukaghlian)
(자료:brainblogger by Veronica Pamoukaghlian)

_힐링과 연결되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 특히 문학은 팍팍해지고 삭막해진 개인과 물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마음의 쌀이다. 그 쌀을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즉 문학이 가진 힐링의 가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까?

“우선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서울 지하철 승강장 유리벽에서 시를 봤을 것이다. 결혼할 때 축시한다. 장례식 때는 조시를, 제삿날에는 헌시를 한다. 요즘 시와 시낭송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가족끼리 지인끼리 모이면 식사도 하고 화투도 치고 그런다. 그럴 때 시낭송도 하고 그래서 시가 삶속으로 파고들어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과 생활은 동떨어진 게 아니니까. 또 하나는 문학이 더 공세적으로 SNS시대에 맞는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 학생들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고 뭐라 그러는데, 그들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콘텐츠를 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시를 보내고 시조를 보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 공급하면서, 그렇게 힐링과 연결시켜야 한다. 생활 속으로 침투하는 문학, 이런 게 문학으로 하는 사회적 힐링 활동이 될 수 있다. 문학이라는 보약이 추구하는 바가 부정을 긍정으로, 울음을 웃음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내는 것, 결국 행복 추구이니까 말이다.”

_소년, 소녀들을 비롯해서 문학을 꿈꾸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에게 한국문인협회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당부하자면?

“꿈나무들에게 문학의 희망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는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백일장’이 올해로 34회를 맞았다. 문학작품을 가까이 해서 성공한 사람은 있지만, 망한 사람은 없다. 많은 인재가 배출되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꿈나무 여러분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_40대 후반, 50대 초반을 넘어선 국민들은 손으로 연애편지를 써 본 세대다. 그들의 기억에는 ‘문학소녀’, ‘문학소년’이라는 단어가 각인돼 있다. 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조지훈 선생님은 19세 때, 박목월 선생님은 16세 때, 이렇게 문학천재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선현들은 ‘소년급제’를 그리 좋게 여기지 않았다. 대신 ‘대기만성’을 강조하셨다. 요즘 말로 하면 ‘선수는 후반전’이라는 얘기다. 박완서, 이병주 선생님도 대표적인 ‘늦깎이’셨다. 해외, 특히 일본에는 90세에 작품을 내신 분도 계신다. 40대, 50~60대, 결코 늦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삶의 깊이, 내공도 깊어진다. 그걸 잘 곰삭히면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 ”

_마지막으로 문인으로서, 또 소설가로서 우리 국민과 스트레이트뉴스 독자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재작년에 경기도 한 노인대학에서 시낭송을 가르친 적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시낭송을 잘 하시게 됐는데, 손자들과 노래방을 다니는 틈틈이 시낭송을 해줬더니, 손자들이 감동을 받아 할아버지 할머니 대하는 게 달라졌다고들 하셨다. 존경이 살아난 것이다. 그러면 집안이, 또 사회가, 국가가 잘 되지 않겠나. 그렇게 가야 한다. 문학은 인생의 담론이라서 삶의 방향이 제시돼 있다. 문학을 통해 정신을 건강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이 문학을 좀 가까이 해주셨으면 한다. 꼭 책을 많이 읽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을음 치솟는 석유등잔 밑에서 하품을 해가며 열심히 원지 촛농을 긁어내다 건넛마을 예배당 종 치는 소리에 놀라 깨어나던 소년, 필경 없는 날이면 ‘뱃속에서 들려오는 피라미 여울 넘는 소리’도 잊고 책에 풍덩 빠져 중증 문학병을 앓았던 14세 소년이, ‘한국문학의 위상 제고’라는 또 다른 연습문제지 필경에 나섰다. “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작가의 눈 안에서 고향집 감나무 아래 그 꼬맹이가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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