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제야 말로 바로 우리의 모든 가정의 부모와 아들딸들의 문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소속 회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416연대, 의료민영화저지범국민운동본부,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소속 회원들이 참석해 노동개악저지, 세월호인양 진상규명촉구, 의료민영화 저지 등을 주장했다. 2015.09.25.[사진제공=뉴시스]

지난 달, 소위 노사정위원회 대타협 후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속도로 진행 중인 정부와 여당의 노동시장구조개혁 드라이브와 청년고용확대라는 포장지를 벗겨보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몰고 갈 대재앙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 같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먼저 대타협의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면 말이 타협이지 정부의 자세는 한마디로 노동자측의 팔을 비틀어 백기를 들라고 윽박질러 얻은 타협과 다름 없다. 즉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자 목죄기 타협이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어렵고 중대한 문제이니 만큼 신중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노동자들 전체의 자발적인 합의를 최대한 끌어내는 과정이 선행돼어야 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 지지율이 크게 오른 탓인지 박근혜정부의 태도는 기세등등했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최종 무산될 경우에 대비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여당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불이 됐을 것”이라는 공갈성 발언으로 노측의 기를 제압했다. 노측 대표에게 주어진 일이라고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협상안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을 찍는 것에 불과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국노총은 정부의 지원금을 몇 십억씩이나 받는 조직으로 노동자를 대변할 수 없는 조직이다. 현재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10%이고 그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조직이 한국노총이다. 이러한 한국노총이 노동자 전체를 대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동네 재개발을 하더라도 2/3 이상이 합의를 해야 가능한데 불과 5%를 대변하는 조직과의 타협은 원천 무효라고 할 수 있다.

협상이 타결되자 종편 등 이른바 친위 언론들의 추임새에 맞춰 노사정 타결에 대한 분칠이 시작됐다. 청와대가 청년일자리에 대한 국민의 열망 운운하며 한국노총의 수용은 대승적 결단이라 치하하자마자 언론들은 그럴싸하게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붙여놓으며 일제히 그 것을 그대로 받아쓰기 바빴다. 여당도 역사적 결단이라며 표정을 관리하기에도 바쁠 정도였다.

대타협 내용 중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취업규칙 변경조건을 완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자가 쉬운 해고를 할 수 있게끔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2조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이하 “부당해고 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제23조를 심각하게 어기는 내용이다.

정부는 제32조의 내용 중 ‘정당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행정지침으로 정하자는 것인데, 법으로 임금, 노동시간, 해고를 법률이 아닌 일개 행정지침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탈법적인 꼼수에 불과하다. 정당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하려면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에서 하고, 따지는 것은 사법부에서 하면 그만인데 만약 법 개정이 필요 없는 행정조치로 가름한다면 이는 입법부‧사법부의 권한을 뛰어 넘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노조 없는 가장 약한 노동자들의 법률적 보호를 해체시키는 어마어마한 재앙이다.

정부는 귀족노조와 강성노조의 문제점을 해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 이번 대타협은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는 상관이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90%의 미가입노조 노동자들이 보게 된다. 노조가 있으면 취업규칙보다 단체협약이 우선하는데 반해 1800만명의 노조 없는 노동자들은 헌법상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태까지도 사실상 쉬운 해고를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쉬운 해고를 하겠다는 얘기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강한 노동조합 없이 강한 중산층은 없다”고 노래를 부르며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하고 있는 것은 미노조 노동자들이 새겨들을 일이다.

한국경제의 활로를 먼저 사회적 약자들의 해고와 임금삭감에서 찾는다는 건 가당치가 않다. 우선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은 누구보다도 정부와 여당이지만 진솔한 사과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와 부실 해외자원 투자 등에 수백조원을 탕진하면서 모든 것을 노동자들의 책임으로 모는 건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앞선 여당대표의 ‘쇠파이프’ 발언이 적반하장격으로 들리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노동자 해고요건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책은 그 반대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은 쉬운 해고 활성화로 그 빈자리를 기간제비정규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는 현대판 노예제도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다. 또한 여당인 새누리당의 노동시장 선진화법이란 한마디로 적게 받고 오래 일하는 것으로 정부의 안을 ‘청부입법’ 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기껏 국민들에게 내놓은 방안이라는 것이 ‘좋은 일자리 창출’이 아닌 ‘좋은 일자리 쪼개기’가 아닌지 묻고 싶다. 청년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다가 해고노동자로 인생을 끝마쳐야 하는 게 밝은 미래인가.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 정부가 앞장서서 할 일인가. 이는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 코메디 같은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국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 일자리 13만개를 만들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는 4년 간 신규 창출 일자리가 8000개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제공=뉴시스]

또한 임금피크제란 본래 정년연장을 실현시키기 위해 임금을 줄이자는 정책이다. 이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해결해야지 장기근속자 봉급을 깎는 것과 신규노동자 고용은 별건임을 조금만 들어다보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해서 정부여당이 임금피크제 역시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법이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노동자를 보호하여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면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고 그 혜택은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는 단순 논리를 망각한 것인가. 법인세 인하와 각종 혜택으로 700조라는 사상 유래가 없는 기업유보금을 쌓아놓고도 거기에 가장 많이 기여했던 노동자들을 해고하지 못해 안달인 기업의 도덕성 부재와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 들여 밀어붙이는 정부의 행위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정부는 재벌과 대기업의 민원 대리 집행기관인 것 같은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해고는 사회적 살인이다.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크레인 위에서 또는 광고탑 위에서 수백여일을 고공에서 지내며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헌데 정부가 이들을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더 쉬운 해고를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작금의 박근혜 정부 노동법 개악시도는 1996년 12월 당시 YS라 불리던 김영삼 대통령의 노동법 개악 날치기 때와 닮아있다. YS는 국민적 저항이 두려워 새벽에 날치기했고 그 결과 독재자로 불리게 된다. 홍준표 경남지사도 당시 의원시절을 회고면서 YS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고 밝혔고, 재벌들마저도 노동법 개악 내용인 대체인력 투입 허용과 무노동 무임금은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기업을 살리겠다던 노동법 개악은 결국 이듬해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고 IMF 사태를 불러온 주인공이 되었다.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이 결코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최근 국내외 경기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YS의 길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 피해가 온통 대다수 서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야권도 공천문제로 집안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노동개악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해 안달인 정부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노동정책이 가져올 재앙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시민사회와 연대해 정부와 어용언론에 의한 왜곡된 여론을 바로잡아 노동법 개악의 야만성을 널리 알리는 것에 당력을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우리 모두 노동문제야말로 바로 우리 모든 가정의 부모와 아들딸들의 문제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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