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삼성의 회계사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구도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삼성그룹이 위기다.

현재 검찰의 삼성그룹에 대한 ‘패스트 트랙’성의 강도 높은 수사진행상황을 보면 회계사기(Accounting Fraud)는 중대 범죄로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의 그야말로 법대로 진행된다면, 이는 ‘법위의 삼성’의 탈법과 편법에 대한 일대 전쟁이다. 검찰의 칼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정조준한 것이라면 재벌공화국, 대한민국의 경제사에 새 지평을 여는 단초다.

검찰과 삼성의 ‘창과 방패’의 진검 승부는 그러나 예측불허다.

논란은 있으나 타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20일 한 방송에 출연, 삼성그룹의 분식사기에 대해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법원의 공정한 재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지배구조 개선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질 지에 대해 결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정부가 용인하고 검찰 수사의 한계를 엿보게 한 발언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차제에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더 분명하고 진정성있게 선언하고 실행해야 할 게 있다.

글로벌 초일류기업에 걸맞는 글로벌 스탠다드

결론부터 말하자면 삼성이 과거의 수없는 일탈과 불법에서 탈피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최선의 선택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에 걸맞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구축이라는 사실이다.

시스템 경영의 삼성에게 회계와 세무에 글로벌 스텐다드 장착은 삼성이 과오를회개하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삼성이 환골탈퇴해야 하는 배경은 누구보다 삼성이 잘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돼 어떻게 결말이 날지 가늠조차 되질 않기 때문이다. 수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 자본시장 어디에서도 삼성그룹과 유사한 사건은 미증유다.

참여연대는 15일 "금융위원회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를 추가적발, 뒤늦게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금융실명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과오 탓이라여, 실명제 정착을 위한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KBS 캡쳐)

2001년 발생한 미국의 엔론사건으로 당시 미국 7대 기업으로 꼽혔던 엔론사와 글로벌 대형 회계법인 아더앤더슨은 파산했다. 엔론의 CEO였던 제프리 스킬링은 24년 4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엔론 회계사기 사건은 전 세계 회계감사 교과서에 나온다. 이번 사건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매우 낮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회계투명성 최후진국으로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더 심화시켜 국가의 부를 더 쪼그라들게 만들지 않을까도 우려된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한 것과 관련해 뼈를 깎는 반성을 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했고, 2001년 삼성전자 상무로 승진했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실질적인 삼성그룹 총수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삼성 이재용 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발령을 받고 출근하면서, “삼성이 자본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경영전략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시켜 나가는데 일조할 계획이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사건과 관련돼 속속 밝혀지고 있는 정황을 보면서 당시 발언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

삼성일가의 자본유린 잔혹사

고 이병철 회장은 1938년 삼성상회를 창업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1위의 거대 재벌로 비약적인 성장 신화를 만들어 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사업철학을 내세웠지만, 1965년 발생한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경유착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김두한 의원은 대정부 질의 중 국무위원들을 향해 똥물을 투척한 사건으로 비화된 것도 익히 알려진 바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취임한 이후, 삼성을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비약적인 성과를 내면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직원을 상대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란 유명한 어록을 남긴 신경영 선언은 아직까지도 귀에 생생하다.

이건희 회장이 주도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로 점철된 일련의 사건들은 성공 신화 뒤에 감춰진 어두운 그늘이다.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가운데 14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삼성바이오로직스 본사 로비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96년 이재용 부회장은 현금 60억 원을 증여 받아 16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납부하고, 나머지 44억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당시 44억원은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8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사건과 수조원대에 이르는 차명주식 사건으로 기소됐지만 구속은 피했다. 최근에는 차명계좌가 추가적으로 또 발견돼 문제는 종결되지 않은 채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진실 국정 농단사건과 관련해 뇌물사건으로 구속됐었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현재 대법원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삼성바이오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시가 총액 400조에 달하는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무난히 움켜쥘 수 있었을 것이다.

세대를 거치면서 삼성그룹의 기업규모가 커진 것만큼이나, 삼성과 관련된 사건들의 규모도 커졌고 방법도 훨씬 대담해졌다고 본다.

삼성의 결단,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

먼저, 삼성바이오에 대한 부실한 회계감사보고서를 근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의 합병계약을 소급해 무효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합병계약 이후 수많은 선의의 제3자간 거래관계를 보호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이 중요한 합작투자계약서를 검토하지 않고 회계감사보고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회계법인과 담당 회계사들은 외감법 등에 규정된 형사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회계감사인에게 합작투자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삼성측 임직원들도 형사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검찰이 삼성측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해 윗선 어디까지 범죄 관련 증거를 찾아낼지가 관건일 것이다.

공정위는 15일 5조 이상 기업집단과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의 명단을 확정, 발표한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손해배상과 관련해 회계법인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회계법인은 손해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과연 전체 손해액을 커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삼성측도 임직원이 회계사기 사건에 관여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민법상 사용자배상책임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은 국가기관인 국민연금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엘리엇 등 외국의 금융회사들로부터 투자자 직접소송(ISD)으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성 위기는 오너리스크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할까?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분명 북한리스크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오너리스크 문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벌체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아마도 법과 제도적으로 ‘총수’라는 직책을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환율이 오르는 현상이나 미국과의 금리역전 현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신뢰성 추락이다. 이를 빌미로 외국자본이 대거 유출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만약, 삼성이 이런 범죄들을 미국이나 중국에서 저질렀다면 온전할 수 있었을까?

노키아가 쇄락하기 시작할 무렵 외국인투자 지분율은 80~90%수준이었다. 노키아 기업가치 하락으로 핀랜드 경제가 입은 피해는 생각처럼 크질 않았다. 당시 노키아 경영진들은 사세가 쪼그라들 것을 미리 감지하고 대규모 사내벤처 투자를 감행했다. 이를 통해 앵그리버드를 비롯한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성장해 노키아의 공백을 메움으로써 핀란드 경제를 떠 받쳤다. 노키아 전성시대에 전문 경영진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오늘의 핀란드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자국의 미래를 준비한 현명한 판단으로 국민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고 있다.

혹자는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혹세무민을 일삼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는다고 삼성전자가 망할까? 아니다. 현재와 같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루프형 상호출자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에 더 큰 리스크다.

이번 회계사기 사건은 절대 대한민국 울타리 안에서 관행화된 솜방망이 처벌로 해결돼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외국투자자들, 아니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이 국내외에 또다시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차제에 정부는 이스라엘 재벌 해체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소는 잃더라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 재발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선언한 ‘확’ 바꿔야 할 것에서 정작 빠진 게 있다. 회계 등 제반 시스템의 글로벌 스탠다드화다. 국민의 애증이 교차하는 삼성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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