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탈세정보, 개인납세정보 비밀유지 뒤에 '꽁꽁' 숨어
‘유전무죄, 무전유죄’ 틀 깨려면 개인납세정보 공개부터

거액의 조세범 관련 사건이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이, ‘촛불정부’하에서도 관행처럼 처리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얼마 전 270억 원대의 세금을 환급받은 소송사기죄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포탈)죄 혐의로 기소된 롯데그룹 사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검찰은 허위로 작성한 장부를 근거로 약 270억 원대의 법인세 등을 부정환급 받은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해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과 검찰의 탈세관련 증거확보를 위한 노력이 부실했던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사라지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이 대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탈세처벌 "고질적" 

 먼저 최근 LG일가의 조세포탈 관련 재판과 관련된 경과를 짚어보면서 시시비비를 가려보기로 하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 회장 등 16명에 대한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부는 오는 5월 15일 오후 2시에 첫 공판을 진행한 후, 곧 바로 2차 공판을 진행할 예정임을 밝혔다.

롯데·LG 등 재벌들 조세포탈이 무법천지이고 안하무인이다. 조세정의 확보와 세무 투명성의 확보를 위해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나서 조세기본법을 개정야 한다.
롯데·LG 등 재벌들 조세포탈이 무법천지이고 안하무인이다. 조세정의 확보와 세무 투명성의 확보를 위해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나서 조세기본법을 개정야 한다.

 검찰은 구본능 회장 등 LG그룹 오너일가가 지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LG와 LG상사 주식을 서로 사고팔면서 특수관계인간의 거래가 아닌 일반 거래인 것처럼 속여 양도소득세 156억원을 탈루했다고 보고, 지난해 9월 약식 기소했었다.

 검찰은 구본능 회장 등 총수일가가 탈세 혐의 사건에 직접적 행위자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조세범처벌법의 양벌규정에 따라 약식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약식기소란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 징역형이나 금고형보다 벌금형이 마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기소와 동시에 벌금형에 처해 달라는 뜻의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법절차다.

 사법부는 단호했다. 법원은 약식기소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법원의 결정에 검찰이 머쓱해진 형국이다. 결국, 탈세 입증을 위한 증거력이 법정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지난 해 4월 국세청으로부터 LG그룹 총수 일가가 100억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는 고발을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LG그룹 승계 작업을 돕는 과정에서 LG계열사 주식 매매와 관련된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아왔다.

LG그룹 총수 일가 탈루 "법위에 재벌"

 쟁점은 양도소득세를 납부할 때,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특수관계인간의 거래는 할증된 가격으로 주식 가치를 결정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반 주식거래를 한 것으로 보고 세금을 납부한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LG그룹 회계담당 직원들이 특수관계인간의 주식 거래 시 세법상 할증조항이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전에 회계법인으로부터 세무자문도 받았을 것이다. 핵심 쟁점은 실무자들이 LG재벌일가도 모르게 독단적으로 세무처리를 했는지의 여부이다. 상식선에서 본다면, 세무담당 직원들이 임의적으로 이런 처리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측면에서, 검찰의 약식기소라는 판단은 지나치게 관대했다고 본다. 재벌 일가관련 사건이기 때문에 이렇게 자비로운 판단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필자만의 억측일까?

 LG계열사의 사외이사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는 모 언론사의 보도를 보면서, ‘무법천지가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 두 개의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 황금만능주의를 숭상한 나머지, 대한민국의 법쯤이야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판단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말기, '권력은 재벌로 넘어갔다. 재임 기간 중 이걸 제대로 못한 것이 제일 후회 된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는 말이 귓전을 때린다.

탈세 처벌, 한국 '관대' vs. 미국 '엄중’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해 6월 발표한, 입법조사처의 ‘조세범에 대한 처벌현황 및 개선방안’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조세범 관련 처벌은 지나치게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2016년간 조세포탈범에 대한 범칙처분 유형을 보면, 무혐의 6.5%, 통고처분 11.6%, 형사고발 82%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무조사로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세범으로 형사절차에 넘긴 인원은 3.9%(228명 중 9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세범에 대한 검찰 기소율은 최근 10년간 평균 23.1%로, 전체 형사범에 대한 평균 기소율 39.1%에 비해 기소율 자체가 지나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전국의 1심 법원에서 조세범죄로 판결을 받은 인원은 총 1만 6,123명인데, 그 중 유죄판결을 받은 인원은 총 15,676명(97.2%), 무죄판결은 총 371명(2.3%), 형식판결22)로 종료된 인원은 76명(0.5%)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은 탈세와 관련된 범죄는 엄중하게 처벌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3부터 2017년 까지 5년 동안 조세범죄에 대한 검찰의 기소율은 평균 95.5%이고, 법원의 유죄판결 비율은 평균 92.7%에 달한다.  또한, 국세청이 기소 요청한 조세범죄사건의 대부분은 유죄판결을 받고 있고, 총 선고 중 징역형 비율도 평균 80.1%로 조세범죄에 대해 매우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양국의 통계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에서 탈세혐의자 중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이 미국에 비해 낮다는 느낌이 강하다.

조세정의 구현 출발점, 개별납세정보 공개 확대부터

 국세청은 국세기본법 제81조(비밀유지) 조항을 빌미로 개별납세정보를 꽁꽁 숨겨두는 경향이 있다. 국회의 국정감사관련 자료요청에도 개인 납세 정보 비밀유지를 빌미로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국정감사 때마다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공정하게 처리되어야 할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세무조사과정, 범칙조사 전환 판단 또는 전속고발권 행사 등의 업무가 개별납세 정보 비밀유지 조항을 방패삼아 악용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형 조세포탈 등과 관련된 사안이 국세청의 정보공개 거부로 어떻게 처리됐는지 결과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핀란드의 경우, 국민의 알 권리가 개별납세 정보의 비밀유지보다는 상위 개념이라고 판단해 모든 개별납세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언론이 매의 눈초리로 상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고액재산가나 고액소득자의 탈세행위와 관련된 세무조사나 사법처리과정에서 부조리 현상이 발생하기 힘들다. 그 결과, 국제투명성 기구(TI)의 국가청렴도 평가에서 핀랜드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세정의 확보와 국세행정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는 하나 둘이 아니나, 조세정의 구현의 첫걸음은 개별납세 정보의 공개일 것이다. 국세기본법의 개별납세 정보 비밀유지 조항은 조세정의의 구현과 국세행정의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개정돼야 할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이효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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