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과 새 것, 선거와 정당정치의 딜레마

[사진제공=뉴시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지난 9월 23일 마지막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그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11차에 걸쳐 발표한 혁신위의 안을 보면 참 많은 고민과 일을 하고자 했음이 드러난다. 김상곤 위원장은 새민련을 자갈밭과 모래밭으로 비유하면서 이의 근본원인이 계파주의와 기득권에 있음을 직시하면서 이를 타파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위가 제시한 혁신의 기본 방향은 새로운 지도체제로의 혁신, 민생복지정당, 인재 양성이다. 그럼에도 혁신위의 혁신안이 발표될 때 마다 새민련은 더 깊은 혼란의 수렁에 빠져들고 분열의 내홍은 더 커져갔으며, 국민들은 내용도 잘 파악되지 않으면서 혁신 피로는 더 누적되어왔다.

혁신위, 총선 준비위원회?

실상, 혁신위가 제시한 혁신안을 곰곰이 살펴보면 그 최종 귀결점이 총선과 연결되어 있다.

최종 혁신안에서 혁신위는 문재인 대표와 주요 주자들에게 열세지역 출마를 권고 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한 실명이 거명된 의원들은 대부분 이를 거부하고 있으며, 조경태 의원은 혁신안을 통과시킨 것이 ‘집단적 광기’임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야당의 지지율은 혁신안이 발표할 때 마다 오히려 하락하여 여당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정부의 비민주적 독선, 실정, 무능이 지속됨에도 전혀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새민련은 침몰하는 난파선과 같은 모습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몇가지 점에서 혁신안과 혁신위의 활동을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1차례에 걸친 혁신안을 종합적으로 보면, 한 정당의 혁신을 넘어서 선거제도와 정치 전반을 타깃으로 하는 정치권 전체를 혁신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정된 시간에 혁신에 대한 과도한 욕심과 강박증이 보인다. 혁신의 기본 방향이 계파와 기득권 혁파, 민생복지정당, 인재 양성이라면, 그에 최적의 혁신안, 실현 가능한 혁신안을 고민 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계파와 기득권 문제의 구체적이고 핵심 사안을 정리하고 당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강력한 해결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인재 양성은 장기적 차원에서 인재 영입을 위한 개방적 제도개선, 당의 관료주의와 나눠먹기식 패거리 온정주의 혁파로 방향을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민생복지 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정책 정당을 위해서 민주정책연구소를 비롯한 각 도당의 정책연구소의 활동 강화 방향 및 활성화 방향을 모색하는 등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런 장·단기적 구체적 실천방향 보다는 오직 총선을 위한 혁신이라는 조급증을 보였으며,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 보다는 외형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형태적 혁신에 집착한 인상을 주었다.

둘째, 최고위원회 폐지, 사무총장제 폐지, 의원정족수 확대, 국민공천단 100%공천 등 그야말로 당헌당규를 개정, 그리고 선거법 개정과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혁신안을 일시에 쏟아냄으로써 당내·외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혼란을 자처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혁신의 범위가 당으로 한정되지 않고, 정치 전반, 선거 제도에 까지 혁신의 손을 뻗침으로써 혁신 문제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차기 총선과 관련한 분란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최고위원회 폐지나 사무총장제 폐지, 선출직평가위원회 구성 등은 당대표의 전권과 총선 공천의 전횡을 위한 편법이라는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진정한 혁신이 가능할 지에 대한 고민과 충분한 여론수렴 그리고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이 혁신안이 과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이런 혁신안들은 총선 결과에 따라 폐기되거나 바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셋째, 문재인 대표를 비롯하여 당의 대표급 주자들에게 열세지역 출마를 권고하고 조경태 의원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제안하면서 새민련은 혼란스런 총선정국에 빠져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혁신위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당의 본질적이고 구조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까지인지, 총선에까지 관여하는 것인지에 대한 역할 범위가 불분명함에 따라 혁신위가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왈가왈부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에 조경태 의원 등 비노의원들은 혁신위가 문재인 대표의 대리인으로 생각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치의 이해당사자도 아닌 당 외부 인사인 혁신위원이 자신의 주관적 생각으로 의원들에게 이리왈저리왈 하는 행태가 과연 당원과 국민들에게 공신력 있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정당정치 바로 하는 정당 만드는 것이 진정한 혁신

사실, 혁신위는 의사와 같은 존재다. 그러므로 새민련이라는 중병환자를 ‘어떤 태도’로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치유해야할 지를 고민해야한다. 무엇보다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사실 중심의 진단을 통해 단기적으로 치유 가능한 것,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할 것, 수술로 도려내야할 것 등을 판단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추진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환자에게 이야기해서 다른 의사나 병원을 찾든지 대책을 마련토록 권고해야한다. 그러나 혁신위는 자신의 위치, 역할, 능력에 대하여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치유할 것처럼 많은 것을 쏟아냈다. 그 결과 새민련이라는 환자는 더욱 혼란에 빠지고 무엇부터 치료해야할지 길을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서로 상대에게 책임전가하고 비난하면서 치유의 길이 아닌 사지로 내달리고 있다. 정당 혁신의 본질은 선거보다도 정당정치를 바르게 할 수 있는 위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의 혁신 주체는 당원이며, 또 당원이 대상이다. 그러나 작금의 혁신안에서 당원은 총선을 위한 부수적 존재일 뿐이고, 당대표와 몇몇 의원들을 위한 정치적 담론의 장만을 만들어 놓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현재 새민련의 모습에서는 낡은 것과 새것, 혁신과 수구의 딜레마를 본다. 혁신위와 주류가 생각하는 호남 기득권, 노회한 다선의원이라는 ‘낡은 것’의 규정이 과연 타당하게 당원과 국민이 동의할 지 의구심이 든다. 한명숙 대표 이후 지속적으로 당을 이끌어 온 다수 주류들에 대해 오히려 낡은 진보, 기득권 집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혁신과 수구도 마찬가지이다. 당내 진정한 수구가 누구인가? 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세력,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수구일 것이다. 선언적인 혁신과 진정한 혁신의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치인 몇 명이 열세지역에 출마한다는 것이 과연 진정한 기득권 내려놓기인가? 이것이야 말로 단기적 정치 공학적 접근일 것이다.

혁신위가 진정으로 그리고 사심 없이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며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치유의 방향을 제시했으면 이런 극심한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 않겠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당원이 자랑스러워하는 정당, 당원의 권리와 역할이 우선적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모습이 혁신의 출발일 것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집단적 패권주의를 부추기는 왜곡된 국민경선 보다도 당원이 참여하고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 되어야한다. 이번 혁신안은 총선에 지더라도 새민련이 정상적인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진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줬어야 했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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