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브리핑하는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이호연 선임기자] 기획재정부가 지난 12일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4월호에는, 전반적인 한국 경제상황과 관련해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반도체 업황 부진 등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하방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린북’에 '부진'이라는 단어가 올라간 것은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일 것이다.

지난 달 까지만 해도 기획재정부는 ‘그린북’을 통해, '연초 산업 활동 및 경제심리 지표 개선 등 긍정적 모멘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불과 한 달 만에 전혀 다른 처방을 내린 것이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를 비롯한 국내외 경제연구소들 모두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모두 낮추면서 비관적인 전망을 했었는데, 유독 기획재정부만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통령도 지난 달 19일 국무회의석상에서 ‘우리 경제가 올해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어느 나라 통계를 가지고 하는 말이냐’라면서 날 센 비판을 가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시행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인해 일자리 상황 악화 등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청와대는 통계자료를 비틀어 해석하면서 책임을 피해나갔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후에야 정책실패를 인정하면서 정책실장이 자리를 떠났다. 이후 대통령이 나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폐해를 인정하면서, 소상공인들에게 어려움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발언까지 했다. 하지만, 경제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까지 당시 주무부처 장관은 펀더멘탈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했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심각한 경고메시지를 보냈었다.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수면위로 떠올랐다. 경제현상에 대한 무딘 문제인식 감각이 초래한 결과는 혹독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거의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물론, 글로벌경기 침체, 미중 무역분쟁 또는 브렉시트 등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내적 정책적 실패도 우리 경제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금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7일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11개 부처로부터 서면으로 업무보고를 받았다. 업무보고는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연중행사 중 하나이다. 밤잠을 설쳐가면서 대통령 업무보고 문서작업을 한 공직자들은 허탈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은 장관으로부터 연초에 대면으로 업무보고를 받아 왔다.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진행상황도 점검하고, 부처간 이견조정도 하고, 정책우선순위 조율도 한다.

부처 장관에게는 청와대 업무보고가 주요 국정과제 수행과 관련된 애로사항을 건의 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다. 또한, 장관은 업무보고를 통해 휘하 공무원들의 책임의식도 한층 강화시키고, 결속을 공고히 하고, 동기유발 유인도 부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주요 부처로부터 늑장 서면보고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앞에서 일자리 정부의 소임을 충실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화면을 기억하고 있다. 초심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기에 충분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등을 포함한 주요 경제정책과 관련해 청와대가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운영을 하고 있는 까닭에 장관을 면전에서 질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무딘 현실 감각이 걱정된다. 모름지기 경제현실에 대한 진단은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적시에 제대로 된 대응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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