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미국 정부에는 달러 발행권이 없다

달러를 발행하는 기관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다. 줄여서 ‘Fed’ 또는 ‘연준’이라고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는 연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14년 임기가 보장된 7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그중 한 사람이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연준 의장이다.

연준 의장은 미국 상원의 인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4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이사와 의장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요식 절차일 뿐, 실제로는 월가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미국 전역에 분포한 12개의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은 연준의 정책을 실행하는 곳이다.

미 연준 홈페이지에 가보면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안전하고 신축적이며 안정적인
통화 및 금융 체제를 국가에 제공합니다.'

연준은 화폐(달러)를 발행하고,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통화량을 조절한다. 통화량 조절은 공개시장조작open-market operations, 즉 채권을 매입 또는 매각하는 방법과 상업은행에 자금을 대출 또는 회수하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준금리도 통화량에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는 일반인의 예금을 취급하는 은행을 상업은행이라 하고,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을 다루는 은행을 투자은행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의 상업은행은 한국의 시중은행, 미국의 투자은행은 한국의 증권회사와 비슷하다.

미국 정부(재무부)는 돈이 필요하면 의회의 승인을 받고 국채를 발행한다. 그 국채를 공개시장에 내놓으면 중국·일본·한국 등 여러나라의 정부와 은행, 채권시장의 큰손들이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안전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매입한다.

채권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국채는 연준이 전량 매입한다. 정부가 발행하는 종이 쪼가리(국채)와 연준이 발행하는 종이 쪼가리(달러)를 맞교환하는 셈이다. 물론 미 재무부는 연준에 채권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한다.

그렇다면 연준이 채권 인수 비용으로 지불하는 달러는 어디서 나오느냐? 연준이 인쇄기로 찍어낸다. 공장을 운영하거나 무역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쇄기를 돌려서 달러를 만들어낸다. 물론 연준이 아무런 투자도 없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잉크와 종이가 들어가고 인쇄공도 고용해야 한다. 돈을 보관할 창고와 실어 나를 트럭도 필요하다. 이것저것 다 합쳐서 달러 한 장 찍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9.1센트다.

그런데 미 연준은 정부기관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니다. 완벽한 사기업private enterprise이다. 1983년의 연준 주주 명단을 보면 6개 민간은행이 53퍼센트의 지분을 갖고 있다. 씨티은행 15퍼센트, 체이스맨해튼은행 14퍼센트, 모건신탁은행 9퍼센트, 케미컬은행 8퍼센트, 하노버은행 7퍼센트다.20 씨티은행은 록펠러와 J. P. 모건의 자본으로 설립되었고, 하노버은행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에는 달러 발행권이 없다.

미국 정부는 달러 발행권은 없지만 보조화폐인 동전은 주조할 수 있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주화는 페니penny(1센트), 니클nickel(5센트), 다임dime(10센트), 쿼터quarter(25센트) 등 네 종류가 있다. 그래서 이
런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미국 재무부에서 1조 달러짜리 동전을 18개 만들어서 연준에 갖다 주면 미국 정부의 부채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2018년 초에 20조 달러를 돌파했고, 동시에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을 추월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13배에 해당하는 돈이고,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10의 16제곱에 해당하는 ‘경京’이라는 단위를 불러와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의 1년 세수tax revenue는 약 3조 3,800억 달러이고, 지출은 4조 달러가 넘는다.

기업과 가계가 진 빚까지 합하면 미국의 총부채는 69조 2,500억 달러로, 세계총생산과 거의 맞먹는다. 이자만 해도 매년 2조 6,000억 달러가 넘는다. 부채의 파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부풀고 있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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