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리(도시건축가/네델란스 KCAP 소장), 박남춘 인천시장 독일 네델란드 등 유럽 항만재생현장 동행기

인천 내항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를 끝내고 휴식을 취할 무렵, 인천시로부터 박남춘 시장의 유럽 예방에 동행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인천시와 나의 인연이 바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이어지나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일정에 참여하고 인천시 방문단이 준비하는 답사 프로그램에 현지인으로서 조언을 주기로 했다.

당시 국내 상황은 공무원 해외 외유 추문으로 시끌시끌한 시점이었다. 이러할 때에 외국에 나온다는 것은 불필요한 질타를 받을수 있는, 비판하기 좋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을 주는 셈이어서, ‘이후 좀더 잠잠해질 때 오시는 것이 좋지 않나요?’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물어보았더니, 시로부터 전해 들은 말은 ‘시장님이 늦지 않은 시점에 꼭 배우러 나가야겠다는 다짐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를 들었기 때문인지, 나는 엄청난 밀도의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나는 이번 내항 컨셉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에 참여한 KCAP Archtiects&Planners의 담당 디자인소장이다. 네덜란드는 바다와 함께 자라온 나라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우리 회사는 항만재생사업의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인 함부르크 하펜시티 마스터플랜을 수행했고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현재는 덴마크, 캐나다, 중국의 항만재생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명실공히 항만도시 디자인회사이다. 현재 한국과의 인연은 2017년 서울 세운4구역 사업 국제공모에 당선되면서 지속되고 있다.

나는 유럽으로 오기 전 한국에서 건축/도시 설계 실무를 하였는데, 기존의 역사와 기억을 지우며 수많은 청사진을 그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이렇게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이 맞는가, 많이 낙담했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의 상황이 궁금해서 한국을 떠났고 유럽에 온지도 벌써 12년이 지났다. 고국에 중요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며 짧은 기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좋은 도시공간 프레임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인천시 유럽방문은 프로젝트로서만 설명이 가능했던 우리가 제시하고자 했던 방향성들을 실질적인 사례와 적용 현실을 들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나는 5박7일 일정에 2일 차 암스테르담, 3일 차 로테르담, 4일 차 함부르크 시 답사에 동행했다.

(수상버스에서 내리며, ©인천시)
(수상버스에서 내리며, ©인천시)

2일차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역 – NDSM – 드쿼벨 – GWL – 베스터파크 –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 –동부도크랜드– 에이부르크)

암스테르담 역 뒤편에는 암스테르담 구도심과 북부지역을 연결하는 수상버스 정류장이 있다. 암스테르담 및 로테르담은 항구 도시이기에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지만, 다리가 몇 없다. 로테르담은 도심에 다리가 단 2개 건설되었고 터널이 하나 있다. 암스테르담은 도심 부근 다리가 아예 없고 터널만 두 군데 건설되었다. 강이 물류의 동선이자 교통의 루트이기 때문에 수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곳은 다리를 대신하여 일반 시민들을 위한, 네덜란드에서 유일한 무료 수상버스가 여러 루트로 운행되고 있다. 이 수상버스 정류장에서 일행을 만났다.

수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위해 대규모 다리 건설은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편의에 따라 요구가 많아지고 나서야 기반시설건설 측면으로 최종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수상교통수단의 상용화 및 일상화를 느낄 수 있도록 첫 만남을 이곳으로 추천했다. 네덜란드의 봄바람은 억세기로 유명하다. 때마침 그날은 네덜란드 봄바람이 제대로 부는 날이었고 박남춘 시장 외 8명의 인천시 방문단을 이 전형적인 네덜란드 날씨에 시원하게(!) 맞이했다.

(활동가 에바 드 클럭과 NDSM 방문, ©인천시 )
(활동가 에바 드 클럭과 NDSM 방문, ©인천시 )

처음 수상버스를 타고 건너간 곳은 옛 조선소를 시민활동가들의 주도로 재생한 NDSM과 그 쿼벨(DeCeuvel)이었다. 특별 가이드로 섭외한 사람은 NDSM활용 최초 고안자인 예술가이자 활동가 에바 드클럭(Eva de Klerk)이었다. 이곳은 방치되어 있던 폐조선소에 지역의 예술가들과 함께 협회를 만들어 자금을 모아 사업을 추진하였고, 결국 시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도 얻어내어 끝내 공동소유권(collective onwership)도 차지하게 된 명실공히 시민주도형 상향식(bottom-up) 재생 사례를 보여주는 곳이다.

에바는 약 400여명의 예술가와 스타트업 기업가, 디자이너 등을 모아 “도시 안의 도시(city in the city)”의 개념으로 예술 도시 엔디에스엠(Art City NDSM) 안에 함께 실질적으로 거주,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암스테르담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핫 플레이스가 되었고, 이후 오히려 MTV 등 대기업들이 선호하여 입주하는 복합 창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에바의 생동감과 에너지 넘치는 설명으로 일행은 많은 영감을 받는 듯했다. 난 이렇게 말했다, ‘아! 시장님, 상상플랫폼을 이렇게 진행했더라면요!’.

(Art City NDSM의 성공으로 연이어 아트뮤지엄으로 리모델링중인 폐공장 시찰 중, ©인천시)
(Art City NDSM의 성공으로 연이어 아트뮤지엄으로 리모델링중인 폐공장 시찰 중, ©인천시)

이후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 다소 고요했던 드 쿼벨(De Ceuvel)에 잠깐 들렀다. 오염되었던 소규모 폐조선소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재창조한 곳이다. 이곳은 공모에 당선된 청년 건축가/조경가 그룹이 10년 무상임대를 받아 창의/창업 공간으로 계획한, 특히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또 다른 핫플레이스다. 오염된 토지를 정화하는 과정과 함께 임시 사용 장소로 유익하게 쓰는 점은 인천 부평 미군부지의 재사용에도 시사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걸음을 재촉하여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점심은 암스테르담의 최고 맛집 10위 안에 드는 Cafe Amsterdam에서 했다. 이곳은 구 암스테르담 정수장을 무차주거공간으로 만든 헤베엘(GWL)주거단지 내 엔진기계실을 재활용한 레스토랑이다. 이 헤베엘주거단지는 KCAP가 마스터플랜 및 건축설계를 하였고, 단독 설계가 아닌 여러 건축가와 함께 계획한 가이드라인 안에 다양한 주거동을 설계한 프로젝트이다.

가장 주목할 점은 ‘무차주거단지(Car-freehousing)’인데, 거주민들이 이미 분양을 받을 때 차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알고 그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주거지역은 대중교통 및 자전거로만 다녀 보행중심도시를 만들고 도심 내 교통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박남춘 시장은 여행 내내 도심 안의 직주근접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인천시는 직주근접도시, 보행친화도시(Walkable city)로서 향후 시내 교통량 감소를 기대한다면 이러한 전략이 추후 감안되길 바란다. 바로 인접한 베스터파크(Wester Park 서공원) 내 베스터하스파브릭(Wester Gas Fabriek)은 여전히 오염된 토지를 치유하는 과정 안에 있다. 옛 가스저장소 공간 일부를 사용하면서 단계적으로 오염된 부지를 정화하며 예술/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인데 이곳 또한 미군부지 재사용에 참고할 만한 점이 있다며 관심있게 보았다.

(베스터하스파브릭의 생태연못, ©박혜리)
(베스터하스파브릭의 생태연못, ©박혜리)

동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향후 송도 입주를 앞둔 암스테르담 음악대학에 들러 예술대학 총장과 면담을 하였고, 바로 좀더 동쪽으로 가 동부도크랜드 재개발 지역에 들렀다. 이곳은 암스테르담 항구의 가장 안쪽에 있기에 가장 먼저 항구재개발 논의가 시작된 곳이다.

이미 재개발을 마친 지 수십여년이 되어가지만 항만 특유의 부두 및 기존 건물을 살리고 도시의 축을 받아들인, 여전히 항구재개발의 모범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블록에도 다양한 건축 디자인이 혼합된 보르네오 스호렌부르크 지역을 지나 배가 지나갈 정도로 높이 떠 있는 빨간 피톤부르크(Pythonburg)다리를 건너 맞은편 KNSM지역으로 걸어갔다.

KNSM지역은 초기에 당시 쇠퇴한 폐항만을 점거했던 예술가, 무단점거자(Squatters)들과 갈등을 빚다가 이후 시 정부가 이들을 ‘활동가(activist)’로 끌어안고 오히려 항만 재개발에 서로가 협동하는 방향으로 전향한 사례가 되는 곳으로, 기존 노동자 식당 건물을 이들에게 단 1유로를 받고 넘겨 지역에 계속 남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건너간 남측에 위치한 동부무역부두(OHK)는 KCAP가 마스터플랜을 하고 2개 동을 설계한 지역으로, 옛것과 새로움의 결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기존 오래된 창고 건물 위 새로운 건물을 겹쳐 건축한 지역으로, 시간의 혼합뿐만이 아닌 주거, 업무, 교육, 상업 등의 여러 다른 기능이 얽혀 있으며, 주거도 고급 분양주택부터 임대 및 사회주택까지 위계 없이 공생하는 곳이다. 박남춘 시장은 이렇듯 여러 기능이 혼합되어 직주근접을 가능케 하는 기능혼합(Mixed-use)계획에 관심을 가졌다.

동부 도크랜드지역은 항만 부둣가의 기존 형태를 흐트러뜨리는 별도의 매립 없이 수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건축이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세웠으며, 시민들과의 갈등을 협치로 해결하고, 항상 가치가 있는 산업유산은 되도록 보존하고 재사용하는, 지금은 전형적인 항만재개발의 여러 유용한 전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동부무역부두(OHK), 오래된 창고와 새로운 혼합용도의 결합, 창고건물 밑으로 새로운 도로와 다리가 통과하고있다. ©Paulien Borst)
(동부무역부두(OHK), 오래된 창고와 새로운 혼합용도의 결합, 창고건물 밑으로 새로운 도로와 다리가 통과하고있다. ©Paulien Borst)

해가 뉘엿뉘엿 지는 와중에도 깨알같이 에이부르크(IJburg)의 수변주택가에 들렀다. 일행 모두 네덜란드의 거친 바람(10년 넘게 살았지만 나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바람이다)과 빡빡한 일정에 기진맥진해 로테르담 숙소로 향했다. 


3일차 로테르담 (베인하벤아일랜드 – 레드애플 – 라우렌스구역 – 마켓홀 – KCAP 사무실 – 콥판자우드 – 페닉스푸드팩토리 – RDM 캠퍼스 – 루흐트징겔 – ZUS 사무실 – 로테르담시청)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보다 바람은 좀 약했지만, 여전히 공기는 차가웠다. 첫 일정은 숙소에서 가까운 베인하벤 아일랜드였다. 이곳은 KCAP가 마스터플랜과 복합건물(레드애플) 및 호텔을 설계하였고 지금도 점진적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이전 항만 업무지역으로서 창고 및 오피스가 저층(최대25m)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스터플랜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으로 기존 저층부의 높이 및 가로면을 보존하고 사업성은 추가 타워로 충족하는 전략을 적용했다. 타워는 대지면적의 50%를 넘지 않는 기준층 면적 조건을 달아 강변에 육중한 고층 건물(우리 한강변에는 쭉 늘어서 있는)을 방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현재도 개발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수변을 따라 보트호텔, 수상주택 등 흥미로운 수공간 사용이 점차 더해지고 있다.

베인하벤 아일랜드의 시범사업으로 레드애플 주상복합건물을 KCAP가 설계를 하였는데, 이 건물을 설계하고 본인이 그 곳에 거주하고 있는 건축가, 한 판 덴 보른(Han ven den Born ) KCAP고문이 직접 안내하고 본인의 아파트도 공개했다.

(건물 내부이지만 24시간 공공보행로로 열려있는 레드애플 블루 파사쥐(Blue Passage)에서 레드애플과 베인하벤아일랜드 디자인 룰을 설명하는 한 반 덴 보른 KCAP고문 ©인천시)
(건물 내부이지만 24시간 공공보행로로 열려있는 레드애플 블루 파사쥐(Blue Passage)에서 레드애플과 베인하벤아일랜드 디자인 룰을 설명하는 한 반 덴 보른 KCAP고문 ©인천시)

이후 보행 다리를 건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손상된 지역을 복구하고 기차를 지하화하여 광장으로 재개발한 블락시장, 마켓홀 등이 있는 라우렌스구역을 둘러보고 마켓홀에 들러 차 한잔하고 바로 다시 로테르담 남측으로 향했다.

로테르담 남측, 초콜릿 공장을 재활용한 KCAP사무실을 간단하게 둘러 본 후 예룬 디르크스(JeroenDirckx) 공동대표가 사무실 전반 및 관련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어서 나는 인천 내항 마스터플랜 관련 발표를 하고 함께 내항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다. 간단한 더치식 샌드위치 점심 후 MOU 체결행사를 진행했다. MOU 증인으로 박남춘 시장, KCAP의 한 판 덴 보른 고문의 배석에 도시균형국 최태안 국장과 KCAP 예룬 디르크스 공동대표가 인천시 도시재생 및 내항 재개발을 위한 상호 우호 협력을 위해 MOU문서에 서명했다. 앞으로도 KCAP가 인천시와 인천 내항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도움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KCAP-인천시 우호협력 체결 후 관계자 기념촬영, © KCAP)
(KCAP-인천시 우호협력 체결 후 관계자 기념촬영, © KCAP)

행사를 마치고 서둘러 로테르담 남측 항만재생지인 콥판자우드(Kop van Zuid)로 달렸다. Kop van Zuid는 영어로, ‘the head of the south’정도로 해석되는데, ‘남측의 머리’라는 뜻이다.

로테르담은 강의 남측이 상대적으로 우범지대에 속했던 거친 동네였는데 ‘빌헤르미나 부두’였던 이곳을 시작으로 남측 개발이 진행하여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했던 상징적인 사업이다. 높은 고층 건물군을 지나 이 지역의 가장 끝에 위치한 호텔뉴욕 옆 보도교를 건너 페닉스 푸드 팩토리(Fenix Food Factory)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금융위기 여파로 계획했던 부동산 개발이 좌초되자 지역 주민 7인이 음식과 관련한 사업으로 폐창고를 임대해 사용하여 가꾸었고, 현재는 로테르담 명소로 자리잡아 오히려 낙후된 주변 개발 동력을 이끌어냈다.

NDSM과 이곳 페닉스푸드팩토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화려하게 꾸민 청사진을 위해 대 자본을 투자하고 큰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오히려 초기 투자비를 크게 잡지 않고 시민들과 바로 시작해서 장소를 먼저 만드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곳 앞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양한 수상교통수단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에는 택시를 이용했는데, 타보니 이는 교통수단이면서 엔터테이닝 수단이었다. 운전기사가 스피드도 높이고 이래저래 수상 드리프트(drift)를 하며 운전해서 예기치 못한 속도감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차로 가면 25분 걸려 돌아갈 곳을 단 10만에 수상 경로로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도착한 RDM캠퍼스의 RDM 은 로테르담 조선소( Rotterdamsche Droogdok Maatschappij )의 약자로, 현재는 폐조선소를 교육과 산업이 접목된 산업혁신 재생지역으로 바꾼 곳이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로테르담 항만공사 소속 직원이었는데, 항만공사가 직접 미래 산업을 위해 혁신적인 자세로 비전을 제시하고 직접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조선소란 바다 위 제조업이다. 이 조선산업을 더 이상 못하는 대신 교육 및 창업과 연관된 창의 제조 산업으로 대체하고 사업에 항만공사가 직접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혁신적으로 느껴졌다. 또 다른 단일 산업시설이 아닌 미래 연구 및 교육 시설과 접목한 점은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단순한 주거개발이나 장식적인 예술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 생산성(Productivity)을 도심 속에서 이어가기 위한 도시 생태계를 고려한 전략이다. 이곳의 중심시설은 옛 조선소 기계창고에 들어선 DM 혁신부두(Innovation Dock)인데, 이러한 산업 생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응용대학과 기술직업학교가 공존하고 창업공간과 여러 인프라를 함께 공유하며 소통한다.

(RDM 캠퍼스 방문, 로테르담항만공사 직원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 © 인천시)
(RDM 캠퍼스 방문, 로테르담항만공사 직원이 설명을 해주고 있다. © 인천시)

RDM캠퍼스에서 다시 로테르담 북쪽으로 향해 루흐트징겔(Luchtsingel) 프로젝트를 시민들의 크라우드펀딩으로 성공시킨 ZUS건축사무실에 가서 그들의 상향식 시민참여 재생사례를 자세히 들었다. 루흐트징겔을 건너 다시 육교를 건너 로테르담 시청을 찾아가서 시장을 예방하고 하루를 마쳤다.


4일차 함부르크 (엘베필하모니홀 전망대 – 하펜시티 보도 답사– 하펜시티 공사 사무실 – 하펜시티 인포센터)

이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함부르크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한식을 대신해 중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나의 설명과 함께 하펜시티 답사를 시작했다. 하펜시티는 2000년 향후 25년 개발계획을 가지고 출발했으며, 당시 KCAP의 마스터플랜으로 25년을 지속할 공공적 프레임웍을 마련하였고 현재는 완성 단계에 와 있다.

함부르크시는 하펜시티 외에도 바로 옆에 위치한 빌레보겐(Billebogen)지역과 맞은 편에 있는 그라스브룩(Grasbrook)의 단계별 개발에 대해서도 최근 진행중이다. 유럽 곳곳의 도시가 이렇듯 암스테르담은 에이(IJ)강, 로테르담은 마스(Maas)강, 함부르크는 엘베(Elbe)강을 중심으로 항만무역이 발전했고 도심과 가까운 지역부터 점차 재개발을 진행했다. 어떤 사람은 유럽은 산업기능이 후퇴하여 이미 빈 땅이었기에 개발이 쉬웠다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맞지 않는 해석이다. 내항은 호수처럼 바로 갑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항만이어서 점진적 개발을 논하는 데 있어 보안상 문제가 있을 뿐이다.

반면 유럽은 강을 따라 항만이 줄지어 있어서 자연스레 순서대로 재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고 현재도 개발기간 동안 항만기능이 공존하는 기간을 감수하고 있다. 함부르크의 내항에 해당하는 하펜시티, 그라스브룩, 빌레보겐을 다 합쳐야 인천 내항의 75%(317ha, 반면 내항은 484ha)에 해당한다. 내항의 ¼에 해당하는 하펜시티가 이제야 25년의 개발을 끝내고 있다. 따라서 인천 내항 전체와 하펜시티를 일대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인천은 첫단계인 1-8부두 정도가 바로 하펜시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 보안을 해결하며 어떻게 수공간을 활용할 것인가와 전체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항만기능 및 산업기능의 재배치 기간을 어떻게 거칠 것인가는 인천만의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수변으로 닫혀진 벽돌건물군은 마스터플랜 수립 전 건축된 구역으로, 마스터플랜 범위 외의 건물이었다. 부둣가를 수변에 가깝게 해 공공보행이 가능한 외부공간으로 공공성을 확보한 바로 옆 하펜시티 구역과 비교하면, 공공 공간 프레임웍에 기초한 마스터플랜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건축도 단조로운 한가지 디자인으로 4개동으로 건축한 왼쪽 건물군에 비해 하펜시티 건물군은 각기 다른 건축디자인으로 소필지 점진적 개별건축을 하여 다양성을 확보했다. ©박혜리)
(수변으로 닫혀진 벽돌건물군은 마스터플랜 수립 전 건축된 구역으로, 마스터플랜 범위 외의 건물이었다. 부둣가를 수변에 가깝게 해 공공보행이 가능한 외부공간으로 공공성을 확보한 바로 옆 하펜시티 구역과 비교하면, 공공 공간 프레임웍에 기초한 마스터플랜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건축도 단조로운 한가지 디자인으로 4개동으로 건축한 왼쪽 건물군에 비해 하펜시티 건물군은 각기 다른 건축디자인으로 소필지 점진적 개별건축을 하여 다양성을 확보했다. ©박혜리)

하펜시티 하면 랜드마크이자 뜨거운 감자인 엘베필하모니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당시 끊임없는 공사비증액으로 숱한 비판을 받았다. 2007년 착공, 2010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비 2.41억 유로로 시작해서 최종적으로 7.89억 유로(약 1조 원)의 공사비를 소진하고 나서야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처음보다 3~4배 정도의 공사비가 10여년간 지연되며 증액이 된 것이다.

이렇게 비용만 말하다 보면 함부르크시가 값비싼 랜드마크 건축물을 소유하고 싶어 무리를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처음 우리 회사가 마스터플랜을 완성했을 때 엘베필하모니홀 자리는 무명의 ‘앵커시설’이었다. 주요 위치에 공공성이 확보된 랜드마크 겸 앵커시설을 주문했을 뿐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올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당시 미디어센터 또는 오피스 프로그램 등이 회자되었을 때 함부르크시민들은 문화예술시설인 필하모니홀을 원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직접 국제공모를 요구하고 모금 활동도 하며 유치하고 싶었던 시설의 프로그램 및 건축디자인의 중요성을 시에 어필한 셈이다. 그렇게 시민들이 원해서 탄생한 필하모니홀은 재정위기 및 설계변경, 공사비 증액 등으로 공사중단을 반복하다가 10여년이 지나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엄청난 공사비를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시와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라 더욱 더 자부심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인천 내항 마스터플랜에도 우리가 여러 앵커지점들을 물음표처럼 설정해 놓았다. 인천시민들에게 내항 마스터플랜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어떠한 앵커시설이 들어오면 좋을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그리고 그 시설 유치를 감당할 만한 본인들의 의지가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시라’, 라고. 인천 내항도 이제 실전이다. 시민들이 원해서, 시민들의 의지로, 시민들의 노력으로 스스로 성취하면 그만큼 애착도 크고 지역의 자랑거리도 될 것이다.

시민들의 의지는 이렇듯 화려한 랜드마크 건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함부르크시는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하펜시티 남측을 올림픽 개발지역으로 사용하려고 했었다. 우리 회사는 함부르크시의 주문을 받고 이 지역 계획안을 만들면서, 올림픽 레가시 플랜, 즉 올림픽 후 사후 부지계획으로 주 경기장을 쓰고 바로 그 구조체를 사용하여 원형 주거지로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담아 나름대로 도시의 지속성을 감안한 계획안을 마련했었다(우리 회사는 런던올림픽 레가시 마스터플랜을 계획하기도 하여 이에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올림픽 유치 그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 시는 투표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물었고 근소한 차이로 올림픽 유치 반대로 결론이 났다. 함부르크시민은 당시 올림픽 유치가 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과감히 포기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박남춘 시장 본인도 인천 아시아게임 유치에 반대했었다며 씁쓸함을 삼켰다.

(함부르크의 자랑이 된 엘베필하모니 랜드마크 건물 내 공공전망대, 박남춘 시장이 하펜시티의 항만지역과 원도심이 연계된 공간구조를 바라보고 있다. © 인천시)
(함부르크의 자랑이 된 엘베필하모니 랜드마크 건물 내 공공전망대, 박남춘 시장이 하펜시티의 항만지역과 원도심이 연계된 공간구조를 바라보고 있다. © 인천시)

답사 이후 오후에는 하펜시티 개발공사를 방문하여 공사 유르겐 부룬스베렌텔그(Jürgen Bruns-Berentelg) 사장과의 면담 시간을 가졌다. 다시 걸어서 인포센터를 방문하고 개별 건축설계를 담당했던 현지 건축가로부터 사업 실행 경험을 들었고 오후 6시쯤 인포센터가 문을 닫은 후에야 비로소 함부르크에서의 하루를 마쳤다.

하펜시티 프로젝트는 치밀한 하향식(Top-down) 전략으로 진행되었다. 시정부가 비밀리에 토지와 임대권을 사들였고 확실한 주도권 아래 공공성을 확보하며 토지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중 시민참여나 시민들의 의견 개진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하펜시티는 그러한 간극을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부터 지금까지 인포센터를 운영하여 사업을 투명하게 시민들에게 공유함으로써 갈등을 줄여나갔다.

인포센터 중앙에 위치한 길이 약 8m, 1/500의 대형 모형은 개별 건축물이 완성될 때마다 마스터플랜의 매스모형에서 실현된 구체적인 디자인의 모형으로 교체해 나가면서 시민들과 개발과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박남춘 시장은 유럽순방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거점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인천역 일대 시민참여 거점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수십년 프로젝트를 진행되면서 한 자리를 지키며 시민들의 소통 창구가 되었던 하펜시티 인포센터의 경험을 인천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반갑다. 하펜시티는 이미 20년 전 계획안이고 그 당시 시민참여의 요구는 그렇게 높지 않았었다. 그리고 소셜믹스를 지향했지만 결과는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고급화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하펜시티의 남측에 위치한 그라스부르크(Grasbrook)지역의 개발방식은 하펜시티와는 좀 다르다. 각종 시민참여를 통해 계획안에서부터 소통하며 만들어가고 있으며, 토지 공급방식도 매각방식에 의존했던 하펜시티와는 달리 토지임대방식으로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듯 하펜시티의 현재까지 지속하는 유효한 전략과 현재 수정/보완하여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방식도 감안하여 인천만의 특유의 방법론과 전략을 만들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남춘 시장과 일행이 하펜시티 인포센터에서 함부르크 지역 건축가 도릿 노르드직(Dorit Nordsiek)에게 하펜시티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듣고 있다. ©박혜리)
(박남춘 시장과 일행이 하펜시티 인포센터에서 함부르크 지역 건축가 도릿 노르드직(Dorit Nordsiek)에게 하펜시티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듣고 있다. ©박혜리)

해외 답사를 오는 분들을 보면, 대개 ‘유럽에서나 되지 한국에서는 안돼’ 또는 ‘이런 좋은 것은 꼭 한국에 바로 그대로 적용해야 해’라는 극단적인 반응이기 쉬운데 박남춘 시장은 좀 달랐다. 한국에 바로 적용하기 힘든 사항들은 그러한 어려움을 그대로 파악하되 바로 낙담하기보다는 보이는 장점이 한국에 결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여러 각도의 방법을 고민하는 듯했다. 다른 지자체 단장들은 임기 내에 단기간 빨리 끝내 성과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박남춘 시장은 시간을 갖고 단계별로 추진하려는 의지가 강했는지 몇번이고 그 점을 강조했다.

3일간 하드코어 항만재생탐방 일정을 따라다닌 나도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는데 인천시 방문단은 어땠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가자마자 기자회견을 열어 본인이 느낀 바와 결심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인천과 내항의 장래는 밝다고 생각했다. 나는 네덜란드, 독일에서의 경험이 비판없이 똑같이 인천에 적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적용해서 부작용이 난 경우가 더 많다. 인천 내항은 인천만의 해법이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보물이 많은 인천시, 내항 재생사업에 인천만의 색다른 접근으로 또 다른 자랑거리를 만들길 기대한다. 그 과정에 이번 MOU를 계기로 본사와 본인도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 그 뜻깊은 여정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한다.

 

박혜리 (도시건축가/ KCAP Archtiects&Planners소장)

KCAP Architects&Planners의 디자인 소장이다. 스위스취리히공대 MAS도시설계과정과 델프트공과대학 건축석사 도시(Urbanism)를 전공한 네덜란드 도시계획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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