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참모진과 미 언론, 2차 북미회담 성과에 회의적
CVID에서 FFVD로 후퇴한 트럼프 대통령 비핵화 전략
낙관론 있지만, 비핵화 정의조차 합의 못 한 상황
재선 갈 길 바쁜 트럼프, 국내 정치 상황 녹록치 않아
트럼프, 한미연합훈련 중단 같은 돌출발언 가능성 있어
낮아지는 기대치, 2차 회담 방점 ‘신 북미관계’에 찍혀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오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될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비관론이 미국 내 언론과 워싱턴 정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AFP, 파이낸셜타임스(FT), 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들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예상 동선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출발시각, 정상회담 개최지 주변의 경계 강화 소식과 함께 회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전하면서도, 실제 성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원칙에서 후퇴한 미국,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노려

미국 매체 폴리티코는 22일자(현지시간) 기사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은 거의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것”이라며 “백악관 고위 참모진들은 이번 회담에서 큰 성과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가 국제사회에 승리를 선언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너무 큰 양보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매체는 그동안 북한을 네 차례나 방문하면서 비핵화 협상을 진두지휘해 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트럼프 정부 내 최고위 참모들과 함께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이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회담을 갖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난 이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회담을 갖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이러한 부정적 관측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 관련 당국자(익명)가 미국 기자단과 가진 인터뷰 이후 본격화됐다. 그는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의제로 ▲‘비핵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및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여부,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협력 등을 꼽으면서, 이 사안들에 대한 양측의 조율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인터뷰 내용만 보면 미국이 기대치를 대폭 낮춘 상태에서 이번 회담에 임하는 모양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이 먼저 제시한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을 경우) 영변 핵시설 폐기’에 추가적인 조치를 더하라며 압박해 왔는데,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은 예상보다 후퇴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에서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고위관리가 ‘비핵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조금 더 심각하다. 그간 북미 카운터 파트들이 ‘비핵화’를 위해 숱한 논의를 거쳤음에도, 정의에 대해서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실토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령 괌(GUAM)에 배치된 전략자산도 포함된다. 사진 하단부는 미 텍사스 디예스 공군기지(Dyess Air Force Base)에 배치돼 있던 4대의 B-1B 랜서(Lancers) 폭격기가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Andersen Air Force Base)에 도착하는 모습(자료:wreg.com/US Air Force)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령 괌(GUAM)에 배치된 전략자산도 포함된다. 사진 하단부는 미 텍사스 디예스 공군기지(Dyess Air Force Base)에 배치돼 있던 4대의 B-1B 랜서(Lancers) 폭격기가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Andersen Air Force Base)에 도착하는 모습(자료:wreg.com/US Air Force)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이고, 거기에는 괌에 포진돼 있는 미국의 전략자산도 포함된다.

따라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인 ‘비핵화의 의미에 대한 이해 증진’이 이번 회담에서 의제로 다뤄진다는 의미는,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성과가 없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 언론과 워싱턴 정가에서 “싱가포르 1차 회담 이후 내용면에서 실질적인 진전은 거의 없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는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협력하겠다거나, 위 세 가지 사안들에 대한 양측의 조율이 회담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회담에 대한 낙관론도 있다. 북미 양측이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에 합의한다면, 그것 자체로 북한 비핵화의 출발점으로 작용하면서 향후 전체 비핵화 로드맵을 향한 협력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두 번째 만남, 칼자루 쥔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난해 초,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전향적인 의지를 표명한 이후 남북, 북미관계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비핵화 원칙은 이른바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였다.

그러나 그 원칙은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흔들렸고, 최근 FFVD, 즉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로 하향 선회했다. 북한이 CVID를 완강히 거부하자, 영변 핵시설에 더해 대량살상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의 폐기부터 시작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애초 원칙보다 낮아진 미국의 기대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행정부와 달리 첫 집권기 내에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지만,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과거 행정부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살라미 전술, 즉 사안을 잘게 자른 다음 개별적인 사안마다 대가를 얻어내는 협상전략에 말려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런 우려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20일(현지시간) 연이어 “서두를 것 없다”, “회담이 이번으로 끝은 아니다. 계속 만날 것이다”며 논란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내 정치 상황은 “서두를 것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설치될 장벽을 설명하면서 현황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러나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국경장벽 예산을 거부했다.(자료:busisnessinsider/Reuters by Johnathan Drake) ⓒ스트레이트뉴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설치될 장벽을 설명하면서 현황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러나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국경장벽 예산을 거부했다.(자료:busisnessinsider/Reuters by Johnathan Drake) ⓒ스트레이트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재집권을 위한 플랜에 돌입했지만,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도처에 널려 있다. 가장 먼저, 지난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빼앗기면서 국내 정치, 특히 예산과 관련된 정치력을 상실했다.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까지 감수해가며 노력했지만, 결국 국경장벽 예산 확보에 실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뮬러 특검이 러시아 스캔들 등 지난 대선 당시 불거졌던 사안들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고, 민주당이 세금탈루와 포르노 여배우 관련 스캔들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탄핵안’까지 거론하면서 공세를 취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히 국내 정치 구도를 전환시키고, 불리해진 입지를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만큼 좋은 카드도 없다. 칼자루를 쥔 쪽이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툭튀’ 선물에 대한 우려 증폭

북한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미국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정상회담 합의문에 담길 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하노이 현지에서 사흘 내리 마라톤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는커녕 의제 조율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김혁철-스티븐 비건 라인이 의제 및 합의문 조율에 실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외적으로 ‘빈손 회담’이라는 거센 역풍을 피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쳇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양보를 하는 상황이 또 한 번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돌출발언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안겼다.(자료:dnaindia) ⓒ스트레이트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돌출발언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물을 안겼다.(자료:dnaindia) ⓒ스트레이트뉴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에 대한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선물을 갑자기 안겼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인정해줬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22일과 23일, 미국 언론들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을 던진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의사가 없다고 했지만, “한국에 4만 명의 미군이 있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을 덧붙여 우려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상황이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26일 오전 전용열차로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한 후 승용차를 이용해 하노이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복수의 베트남 언론에 따르면, 동당시에서 하노이에 이르는 국도 170km 구간의 차량 통행이 26일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전면 통제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전용기로 출발해 26일 하노이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북미정상회담은 27일, 28일로 예정돼 있다.

2차 회담, 새로운 북미관계에 방점 찍힐 전망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한미는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지만, 이번 회담이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할 대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이미 제시한 ‘(상응조치가 있을 경우)영변 핵시설 폐기’에 더해서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을 원한다. 북한은 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상응조치와 더불어 대북제재 (일부)해제까지 요구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제시할 카드로 ‘평양과 워싱턴 연락사무소 설치’, ‘금강산 관광 재개 용인’ 등을 꼽는다. ‘대북제재 (일부)해제’와 ‘개성공단 재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보다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 내 정치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빈손으로 돌아올 경우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비핵화 로드맵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이 핵능력 및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한 핵무기를 동결하고, 상응조치로 대북제재 (일부)해제 및 개성공단 재개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재선의 디딤돌을 놓으며 세계사에 새로운 방점을 찍을 수 있을까, 아니면 성과는 없고 요란하기만 한 수사로 국제사회를 실망시킬까?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 하노이로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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