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1〉돈은 빚이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1〉돈은 빚이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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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돈은 빚이다

세상의 모든 돈이 그렇다. 돈은 빚debt이고, 화폐는 빚 문서다. 사람들은 이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화폐의 약속’을 상기해 보면 돈이 빚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화폐를 가진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주겠다는 약속은, 차용증promissory note을 가진 사람에게 재화나 서비스로 빚을 갚겠다는 약속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 모든 화폐는 계약서다.

채권자는 화폐 소지자이고, 채무자는 화폐 발행자이다. 그러므로 화폐를 발행한 중앙은행, 즉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화폐 발행량만큼 빚을 진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에 돈다발을 들고 가면 한국은행이 그에 값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내줄까?

아니다. 한국은행은 시장market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중앙은행은 그 나라의 시장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한 것이다. 시장은 화폐라는 빚을 갚는 곳이고, 시장이 망하면 화폐 소지자는 빚 받을 길이 막막해진다. 실제로 그런 일이있었다. 1920년대 독일, 1946년 헝가리, 2000년대 후반 짐바브웨, 2016년 베네수엘라에서 화폐라는 빚 문서는 램을 살 수 있었고, 1946년 헝가리에서는 신문 한 부를 사는 데 4×1029 펭괴를 내야 했다.

화폐가 빚인 이유는 또 있다. 이번에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시중은행이 빚을 창조한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은행의 지급준비제도Reserve Requirement System를 알아야 한다. 은행이 파산할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모든 예금자가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은행은 평소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만 보유하면 된다. 이 현금을 ‘지급준비금’이라 하고, 예금 총액 대비 지급준비금 비율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그 비율을 정하는데, 한국은행이 정한 지급준비율은 2018년 현재 7퍼센트다.

1920년대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화폐가 종이 쪼가리로 전락했다. 5,000억 마르크를 주어야 빵 1킬로그램을 살 수 있었다. 당시 발행된 100조 마르크 지폐.
1920년대 독일에서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화폐가 종이 쪼가리로 전락했다. 5,000억 마르크를 주어야 빵 1킬로그램을 살 수 있었다. 당시 발행된 100조 마르크 지폐.

은행에 100만 원을 예금했다고 가정해 보자. 은행은 당신에게 100만 원을 빚진 셈이다. 따라서 대차대조표의 오른쪽 대변에는 부채 1,000,000원이, 왼쪽 차변에는 현금 1,000,000원이 찍힌다. 은행은 현금 100만 원 가운데 지급준비금 7만 원을 남겨 두고 93만 원을 고객 A에게 대출해 준다. 그러나 그 고객은 현금 93만 원을 가방에 넣고 은행 문을 나서는 게 아니라 930,000원이 찍힌 통장과 직불카드를 지갑에 넣고 나간다.

다시 말해 고객 A는 93만 원에 대한 ‘인출권’을 받은 것이다. 은행 대차대조표의 대변에는 고객 A의 신규 예금 930,000원이 추가되고 차변에는 고객 A의 대출금 930,000원이 자산으로 기입된다. 은행은 새로운 예금 93만 원에서 지급준비금 7퍼센트를 빼고 다시 86만 4,900원을 고객 B에게 대출해 준다.

이런 식으로 지급준비금을 뺀 예금을 고객 C, 고객 D, 고객 E에게 계속 대출하다 보면 처음에 당신이 은행에 맡긴 100만 원의 현금은 회전문처럼 돌고 돌면서 최대 10배 이상의 통화량을 창출한다.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높이면 통화량은 줄어들고, 반대로 지급준비율을 낮추면 통화량은 늘어난다.

보통 ‘돈money’이라고 하면 화폐, 재산, 소득, 비용 등의 중층적 의미를 갖고 있다. ‘돈을 낸다’라고 말하면 화폐란 뜻이고, ‘돈을 번다’라고 말하면 소득을 의미하고, ‘돈이 많다’라고 말하면 재산 또는 부wealth를 뜻하고 ‘돈이 든다’라고 말하면 비용을 나타낸다. ‘화폐’는 지폐와 동전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통화通貨, currency는 유통화폐流通貨幣의 준말이다. 한 사회에 유통되는 지불수단을 통틀어 지칭하는 용어다. 은행권, 보조화폐, 예금통화가 다 여기에 들어간다. 통화량money supply은 그 모든 것의 총량이다. 오늘날에는 지폐를 한 장도 사용하지 않고 큰 거래가 척척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집을 사고팔 때 보따리에 돈뭉치를 싸 들고 다니지 않는다.

통장에서 통장으로, 다시 말해 컴퓨터를 통한 화폐의 순간이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지고 거래가 끝난다. 그래서 세상에는 중앙은행에서 인쇄기로 찍어낸 지폐보다 훨씬 큰 금액이 ‘통화’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인쇄기로 찍어서 공급한 화폐를 본원통화base money라고 한다. 본원통화는 여러 시중은행을 거치면서 대출과 예금으로 몸집이 불어난다. 보통예금 혹은 당좌예금 같은 요구불예금要求拂預金은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으므로 현금화폐 기능을 한다. 경제 전문가들은 통화량을 측정하는 데 통상 두 가지 지표를 사용한다.

M₁(협의 통화)=현금통화+요구불예금
M₂(광의 통화)=M₁+저축성예금

2016년에 한국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는 약 137조 4,000억 원이다. 2017년 11월 기준 대한민국의 M₁은 약 817조 6,250억 원이고, M₂는 2,521조 7,860억 원이다. 통화 공급이 너무 많으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너무 적어도 경제가 위축될 수 있으므로, 중앙은행은 이를 잘 관리해야 한다.

아무튼 민간은행이 통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고객이 맡긴 돈으로 돈놀이를 할 수 있으니 떼이지만 않으면 쉽게 돈을 번다. 은행이 돈 버는 원리는 간단하다. 싸게 빌려서 비싸게 빌려준다. 기준금리가 올라도 시중은행은 대출 금리는 빨리 올리고 예금 금리는 천천히 올리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기준금리가 내리면 대출 금리는 천천히 내리고 예금 금리는 빠르게 내린다.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이를 ‘예대마진’이라고 한다. 국내 한 경제지 기사에 따르면 2017년 7월 시점에 예대마진은 2.27퍼센트포인트로, 2015년 2월 이후 최대치다. 확대된 예대마진 덕분에 은행권은 2017년 상반기에만 8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했다.<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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