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강행한다면 대대적인 국민적 불복종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

7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혜화동 흥사단강당에서 진행된 ‘역사교육연대회의, 박근혜 정부의 첫 국정역사교과서 분석결과 중간발표’에서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이 책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2015.09.07.[사진제공=뉴시스]

박근혜 정부와 여당 대표에 의해 널리 천명되고 있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정책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와 함께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정부가 역사교과서 서술을 ‘독점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이유를 학생들이 편향된 역사관에 따른 교육으로 혼란을 겪지 않도록 사실에 입각하고 중립적인 시각을 갖춘 역사교과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로 사실은 일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역사관을 주입시키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시절 해석의 다양함을 강조하며 출간한 진학사 발행 역사교과서를 통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했으나 엉터리 역사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 0%나 다름없는 채택률로 목적달성에 실패하자 이제는 거꾸로 정부를 통해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다양함을 말살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정부가 공인한 하나의 역사 해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국정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질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게 상식이다. 현재 시행 중인 검정 제도만으로도 한국 역사 교과서의 내용은 지나칠 정도로 통일되어 있다. 다수의 검정 교과서에서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해 문제라면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검정 과정을 장기적이고 신중하게 수행해 바로잡으면 되는 일이다.

또한 교과서 서술을 정부가 독점하는 정책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오랜 고난 끝에 이룩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다. 즉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말이다. 현재 교과서를 국정제로 발행하는 국가는 북한, 베트남, 방글라데시 정도다. 이외에 종교적 특수성이 강한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등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국정제를 시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은 몇 년 전부터 검정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각국 교과서 발행 현황

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국정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한 곳도 없다. 17개국은 자유발행제, 4개국은 인정제(민간이 자유롭게 출판·공적기관이 사용 인정)를 시행하고 있고, 13개국은 검정제다. 인도·아르헨티나는 연방정부가 설립한 학교와 초등학교에서만, 인도네시아는 초등학교만 국정제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오랜 기간 국정제를 유지했지만 1987년 “교재의 다양화를 실행하고 여러 지역의 수요에 적응하기 위해” 검정제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발표해 지역별로 다른 교과서를 발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교과서에서 한·일 과거사를 왜곡한다고 비판해온 일본 역시 검정제다. 이처럼 역사를 국정 교과서 형태로 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통일 전 서독은 검정, 동독은 국정 교과서였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어디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국정 교과서 제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세계화·다문화 시대를 살아갈 민주시민을 기르는 데 적합한 역사교육의 방향과 실천 방안을 여러 교육 주체들과 진지하게 의논해야 하는 게 순리다.

교육부가 직접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중·고교 교사 3분의 2가 국정을 반대한다는 점이 확인됐고, 역사 교사 97%가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는 조사도 있다. 국정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 여론이요 공론이며, 국정화가 한국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증거다.

긍정의 역사를 핑계로 친일과 독재, 잘못된 역사에 대해 미화하려는 시도는 교묘하게 일본 극우파의 '침략 역사 지우기'와도 닮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건국 67주년' 발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켜세우는 작업, 박정희의 경제성장 업적을 부풀려 독재 정치를 희석화하고 일제 수탈에 대한 일본의 근대화 논리를 수용하는 것, 심지어 기존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적이라고 우기는 태도 등이 그 예이다. 일본 극우파는 침략 전쟁의 과오를 철저히 지워 나가고 주변국의 침략마저 근대화를 위한 일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 심지어는 난징 대학살, 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등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를 일본이 아닌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한국사 국정화를 주장한 세력들이 주장해온 내용들이 그대로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입장이 뒤바뀌어 오히려 친일이 조국 근대화의 길이었다고 미화되고,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독재도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되는 것은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춰 5·18 민주화운동도 교과서에서 축소되거나 폄훼될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수구언론을 중심으로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 헷갈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지만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의 결과물인 대한민국 헌법은 민족의 화해 협력과 민주개혁을 지상의 가치로 명시하고 있고, 교육기본법은 민주시민 형성을 교육의 목표로 천명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이를 어기고 국정 교과서를 강행한다면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가치를 지키고 실천하기 위한 대대적인 국민적 불복종 운동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 필요한 것은 국정 교과서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사 교과서 제작의 자율성을 좀 더 널리 허용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김상환(전 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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