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읽는 선거의 虛와 實 ①

[사진제공=뉴시스]

2004년 17대 총선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계열 정당으로는 꿈에 그리던 원내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민주당이 233석 중 171석을 석권한 이래 실로 44년 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승리의 주역인 열린우리당은 여당이었기 때문에 선거연대가 아닌 전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는 독자전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까지 불어 사상 최대의 비례대표 득표율인 38.3%를 올린다. 여기에 지역구는 무려 42%로 37.9%에 그친 한나라당을 압도했다. 그리하여 지역구 의석수로만 무려 29석 차이를 벌렸다.

지역구 득표율의 증가는 바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전략투표 결과였다. 민주노동당은 처음으로 실시된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 무려 13%를 획득했다. 1년 4개월 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겨우 3.9%를 얻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세이다. 그러나 지역구는 절반 남짓의 후보를 내보내고도 겨우 4.3%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전 지역구로 환산하면 8~9% 정도가 된다. 나머지 3.5%는 바로 ‘당선이 가능하도록 열린우리당 후보에게 전략 투표’한 셈이다. 특히 수도권 의석은 76석 대 33석으로 여야가 나누어가졌다. 이 지역에서 여야 간 비례대표 득표율 차이는 더 좁혀져 고작 3%에 불과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정당득표율 13.3%가 결정타였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중에서 2위와의 격차가 10% 이내인 경우가 무려 33명이었으니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은 매우 현명했다. 즉, 이 선거에서 정당 간 선거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유권자 간 자발적인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이러한 유권자들의 이해와 요구에 발맞추어 보다 더 민주진보 연대노선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개정 등 4대 개혁입법은 실패로 마감됐다. 청와대는 좌파신자유주의로, 당은 중도실용을 강화하면서 점점 더 민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이것이 이후 2007년 대선 참패의 결정적 요인이다.

2009년 상반기 재보선에서 야권은 인천 부평(을)을 민주당이, 울산 북구는 진보신당이 맡는 야권연대를 통해 승리를 쟁취했다. 2011년 상반기 재보선도 성남 분당(을)은 민주당이 맡고 전남 순천은 민주노동당이 분담하여 한나라당을 패퇴시켰다.

민주진보 단결의 위력을 단단히 경험한 민주통합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성사시킨다. ‘혁신과 통합’ 측 인사들이 특히 앞장섰는데 필승 카드라고 본 것이다. 예상대로 야권연대는 의석 112석이 걸린 수도권에서 큰 파괴력을 발휘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당명 바꾸기와 혁신 공천으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승리했다. 정당투표에서 42.4%로 민주통합당에 약 4.5% 정도 앞서 무조건 1등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여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의 10.7% 득표율이 결정적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로 10명의 후보자를 양보 받는 대신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부족분을 상쇄시키고 남을 만큼을 몰아줬다. 야권은 69석의 당선자를 냈으나 이 중 40명이 10% 이내의 접전이었다. 그래서 문재인 대표조차 그의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자랑스럽게 야당 사상 최고 의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특전사 출신인 문재인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이래 ‘종북’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난 대선에서는 NLL 논란으로 공격을 받더니, 올해 초 4․29 재보선 때도 해산된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대 문제를 또 공격당했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 당선 직후 ‘든든한 안보정당’을 ‘유능한 경제정당’과 함께 양대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안보보다는 남북화해와 협력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일부의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을 공략할 수 있는 좋은 전술이라고 본 것이다.

최근 목함 지뢰 사건 발발 시에도 기민하게 대응, 여당보다 먼저 움직였다. 부상당한 장병을 찾아 위로하는 한편 새누리당에 앞서 북한 규탄 결의안을 제출했다. 남북이 대치하는 기간 동안에도 정부의 협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비판의 목소리는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나 고위급 접촉 타결 이후 대통령 국정지지도와 여당의 정당지지도는 동반 상승했고, 새정치연합의 지지도는 소폭 하락했다. 이처럼 안보 이슈는 기본적으로 여당 프레임이다. 평소에 야당이 제아무리 잘 대응해봐야 본전도 못 건지게 돼 있다.

최근 새정치연합 허영일 부대변인이 SNS에 부적절한 글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되어 직을 사퇴했다. 그런데 곧바로 당의 고위인사를 통해 제명 운운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심정이라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동안 안보정당 행보에 들인 공이 하루아침에 날아가게 생겼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러나 허 전 부대변인은 남북 고위급 접촉이 타결되자 사적 공간에 흥분 상태로 레토릭을 사용했다는데, 이는 가히 한국판 메카시 부활이다. 그것도 야당발이다.

진보의 가치는 남북 평화, 노동 존중, 인권 신장, 민주주의 발전 등등을 부단히 추구한다. 그것을 신봉하는 유권자가 이 땅에 최소한 10% 이상 존재하고 있음이 지난 10년 동안의 선거데이터는 입증하고 있다. 민주진보연대를 부정하며 실익 없는 안보정당에 매달리는 새정치연합, 참으로 안타깝다. 민생제일주의를 정체성으로 삼는다고? 그것은 530만표 참패를 불러온 중도실용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깨 몽!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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