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성장엔진에서 환율 조작국으로 전락한 중국」
「신흥국들, 수출경쟁력 위해 자국 통화 평가 절하 대열에 동참해」
「국민 여러분, 한국은 안녕할까요?」
「지도자의 잘못된 국정 운영 책임은 국민에게 있어」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전직 노숙

나 살자고 이웃을 가난에 빠뜨리는 근린궁핍화정책pooring neighbors' policy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지난 6월에 이어 또다시 기습 단행한 위안화 평가 절하 얘기다.

글로벌 경제 질서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가가 잘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질서를 건드리지 않는 상태에서 수출을 늘리거나 내수를 확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질서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데는 ‘수출 진흥’, ‘수입 제한’, 자국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려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평가 절하’ 등이 동원된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는 ‘차이나 쇼크’라 불리며 전 세계 주요국 증시를 강타했다. 폭락 장세를 연출했으며, 원유와 산업용 금속 등 원자재 가격은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일부 위기국가에서는 자본 이탈이 가속화되었는데, FT(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세 둔화가 표면화된 지난 13개월 동안 19개 신흥국에서 이미 9,400억 달러(약1,122조 5,000억 원) 이상의 자금이 순유출 되었을 정도다.

급기야 지난 한 주 동안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 공포지수)가 118%나 급등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중국, 왜 그랬니?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1978년 이후, 10% 전후의 고속성장 궤도에 오른 중국은 석유, 철광석, 구리와 같은 원자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 13개월 동안 중국 경제는 현저한 둔화세를 보였고, 올해 성장률은 정부가 제시한 7%도 달성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잇따른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위한 대규모 증시 자금 투입 등 각종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8월 제조업 구매관리지수(PMI)가 2009년 이후 6년 만에 최저인 47.1(속보치)로 떨어지는 등 실물경기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어떻게든 성장세를 이어가려 하지만, 과거 고도성장 과정에 누적된 부채 급증 및 공급 과잉과 같은 구조적 모순들이 임계치에 이르러 제조업 경기 퇴조, 수출 감소, 부동산 경기 하락, 과잉 설비 등 해결이 난망한 문제들로 표출되고 있다. 중국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경제를 안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시진핑(習近平) 정부는 2013년 출범 이전부터 성장세 둔화가 표면화될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권과 동시에 경기부양보다는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성장의 견인차였던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억제하고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서비스업 중심으로 개편하는 구조개혁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3조5천억 위안의 순자산 규모를 가진 연기금이 총자산의 최대 30%까지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증시의 급격한 변동성을 개선하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경제의 불안정성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분위기다. 현재 시장의 플레이어들 중에는 인민은행이 향후 지급준비율을 인하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는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8%가량 더 절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신흥국 여러분, 안녕들 하세요?

전 세계 증시가 출렁이기는 했지만, 차이나 쇼크가 선진국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미미하다. 중국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15%나 되고, 여전히 글로벌 성장 동력의 주축인 것은 사실이나, 선진국들의 대 중국 수출이 GDP에 미치는 영향이 대부분 1%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국으로 눈을 돌리면 차이나 쇼크가 ‘평가 절하’라는 이름을 가진 환율 세계대전의 서막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의 평가 절하가 자국의 수출경쟁력과 경제 현실을 위협하는데, 가만히 있을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신흥국들이 처한 위기를 살펴보자.

먼저, 원자재 및 귀금속을 수출하는 국가들은 중국의 경기 둔화 및 수요 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의 헤알화는 달러 대비 23%나 폭락했고, 아르헨티나는 3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앓고 있으며, 수출의 95%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신용부도스왑CDS(Credit Default Swap,국가 신용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은 6,454bp에 이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외신에 언급되는 그리스의 CDS가 1,572bp인 점을 감안하면, 베네수엘라가 처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그밖에 칠레와 콜롬비아의 통화 가치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리고 철광석, 티타늄, 원유, 광석, 금속, 농산물 등을 중국에 수출해온 잠비아, 앙골라,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의 성장세가 정점에 다다랐던 때에 비해 교역량이 거의 반토막난 수준이다. 금, 다이아몬드, 백금 등 귀금속 수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 역시 달러 대비 12%가량 떨어져 1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차이나 쇼크의 타격을 가장 크게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은 산유국들이다. 지난해 배럴당 115달러 고점을 찍었던 국제유가가 45달러 선으로 추락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및 핵협상을 마친 이란의 석유시장 복귀 예상으로 인해 러시아의 루블화는 달러 대비 17%가량 추락했으며, 저유가의 충격을 간신히 버텨내던 중앙아시아 최대의 산유국 카자흐스탄은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 자국 통화인 텡게화 가치를 한순간에 달러 대비 23%나 떨어뜨려 버렸다.

중국 상품과 경쟁하는 국가들 역시 수출경쟁력 하락에 직면해 자국의 통화 가치를 조정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190억 달러(약 23조 원)를 상회하는 대 중국 무역적자를 기록 중인 베트남은, 올해에만 세 번째 평가 절하를 단행했으며, 이런 평가 절하 행보는 과도한 부채로 궁지에 몰린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의 3배에 달하는 아프리카 국가들로 번져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미국 BK자산운용, 라스본 브라더스와 같은 플레이어들은 ‘바닥을 향한 위험한 경주’, ‘글로벌 환율전쟁의 시작’, ‘디밸류에이션devaluation 경쟁’ 등으로, 그리고 CNBC, FT,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은 ‘통화 절하 전쟁의 시작’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국민 여러분, 안녕들 하세요?

현대경제연구원이 이틀 전에 발표한 「성장의 추세적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는 제하의 보고서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연평균 추세성장률이 4.5%(2000-2009년)에서 3.5%(2010-2014년)로 하락했고, 민간 소비 부문의 추세성장률 역시 2000년의 4.5%에서 2014년 2.4%로 하락했으며, 건설투자와 수출입 등 모든 부문이 수축 국면임에도 장기적인 성장력 또한 떨어져 있다고 판단했다.

CNBC는 대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의 원화 역시 올해 들어 달러 대비 9% 가까이 하락한 점과 올해 성장률이 2.5%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이 환율 세계대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이는 글로벌 경제 주체들이 한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가뜩이나 환율 세계대전의 개전 분위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판국에 목함지뢰와 포격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평가 절하의 그림자가 글로벌 경제 환경에 드리워지고 있는 지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자국의 경제 위기를 위안화를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에 편입시킴으로써 기축통화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 그리고 G7 재무장관회의와 중앙은행 총재회의가 위안화의 SDR 바스킷 통화 편입에 합의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어 우리의 수출이 사면초가에 빠져들지도 모르는 이 마당에, 우리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물론, 변화해가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리고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다른 어떤 국가보다 훌륭히 헤쳐 나왔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지극히 고통스러웠던 2008년의 악몽, 즉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환율 위기에 ‘대책 없는 달러 투입’으로만 대응하고서도 “건국 이래 최고로 돈을 많이 쓴 정부”라는 농을 던졌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악몽이 또다시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평가 절하’라는 환율전쟁이 수면을 향해 올라오고, ‘북한 리스크’라는 지정학적 불안감까지 고조된 이즈음, 이 땅의 서민과 중산층은 정부를 향해 ‘한반도평화통일구상인지 드레스덴선언인지를 제때 발동해서 잘 대처해 주기를’, ‘대인살상용 환율지뢰가 생업의 발목 아래에서 터지지 않기를’, 그리고 ‘환율폭격이 민생의 머리 위에 무참히 내리꽂히지 않기를’ 그저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우리 국민들은 대면보고를 지극히 꺼린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목함지뢰 폭발 이후 일주일 동안 한민구 국방부장관이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서면과 전화 보고만 받았다는 사실은 잊어야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지뢰폭발 나흘 만에 열렸다는 사실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던 시기에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의 대면보고를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이 21차례의 보고를 모두 서면과 전화로만 받았다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이 지금까지 펼쳐졌던 혼란한 국정 운영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 역시 잊어야 한다.

오직 할 일이라고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사실들일랑 모두 잊고, 무조건 박근혜 정부가 잘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하는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그 뒷감당은 지도자가 아니라 그런 지도자를 뽑아놓은 국민, 평가 절하되어도 할 말 없을 국민의 몫이 되어야 하리라!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