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현철 교수의 영전에 바침

작년 말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자본스톡 확정추계(1970~2012년)’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중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연구개발비)지출 비중은 4.0%로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지출규모 면에서는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이어 세계 6위이다. 정부 지출 17조원을 포함하여 약 58조원이었으니 그 금액도 가히 엄청나다.

필자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과학기술부 인사추천 업무를 담당하던 2004년 당시 정부와 민간(14조원) 전체의 연구개발비는 약 19조원이었다. 그 해에는 과학기술부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되고 그 산하에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설치되면서 R&D 종합조정 기능을 맡게 되었고 R&D 투자규모가 전년 대비 10% 이상 늘어나 처음으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평균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따라서 지난 8년 사이 정부든 민간이든 R&D투자에서 만큼은 나무랄 일은 결코 없다.

한편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국가 R&D 사업에서 논문과 특허 등 연구 성과는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의 경우, 그 품질을 판정하는 피인용수 상위 1% 논문이 2004년 당시 149편에서 10년만인 2013년 451편으로 3배 이상 늘었다. SCI 논문은 2004년에는 2만2681건이 발표되어 세계 점유률 2.13%를 차지했지만 2013년 현재 건수로는 그 두 배 이상인 5만1051편으로 증가했고 점유율도 2.73%(세계 12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는 논문의 양적, 질적 수준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특히 2013년 현재 연구주체별로는 대학에서 SCI 논문의 73%가 발표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응용연구나 개발연구보다는 기초연구로부터 도출되는 연구 성과의 질적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수십조원의 연구개발비는 대부분 기업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독식하고 있는 가운데서 거둔 성과이니만큼 아낌없는 칭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R&D 지출을 4분의 3가량 쏟아 붓는 민간 영역에서 SCI 논문이 겨우 10% 남짓 발표된다는 점도 특히 아쉽다. 우리와 달리 선진 외국은 산-학-연 연계시스템이 촘촘히 얽혀 있어서 대학 단독 연구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201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발표에 의하면 조사대상국 55개국 중 우리나라는 대학교육 경쟁력 부문이 꼴찌를 겨우 면한 53위이다. 우리처럼 주입식 교육에 절어 있는 이웃 일본이 41위, 주요 경쟁 상대국인 싱가포르가 4위, 북유럽 복지국가 핀란드가 1위이다. 빼어난 연구 성과를 자랑하는 대학의 교육경쟁력이 최하위 수준이라니?

고등교육법 제15조 규정에 의하면, 교원은 학생을 지도하고 학문을 연구하며 산학협력 업무를 전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 대학 교원의 학문적 연구 성과는 매우 뛰어나다. 더구나 교육예산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은 점점 향상돼가고 있다.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교육예산 비중은 1990년대 22%대로 정점을 찍고 2013년 17%, 2015년 금년에는 14% 남짓까지 하락했다. 이미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공약으로 GDP 대비 교육재정 6%를 약속했지만, 20년이 다된 지금도 OECD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 4.7%이다.

따라서 공교육에 투입해야 할 재원에 버금가는 액수만큼을 교육소비자인 학부모들이 사교육비 형태로 쏟아 붓고 있다. 지난 7월 우천식 KDI(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무려 33조원으로 OECD 평균의 3배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이 망국병이라는 진단이 수십년간 지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고등교육기관(대학, 전문대학 등)에 진학하면 또 그에 걸 맞는 취업은 다 할 수 있는가?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이미 2008년 83.8%까지 치솟았다. 2012년에는 평균 수학기간 17.5년으로 OECD 평균 17.6년과 근접했다. 바야흐로 전 국민의 대졸 학력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높은 고등교육 비율이 곧 높은 국가경쟁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삼은 핀란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핀란드는 경쟁보다는 상생의 가치를 믿고 꾸준히 자신들만의 원칙을 믿고 이를 수십년간 추진했다. 엘리트 교육도 열심히 하고 학습부진아 대책비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쏟아 부으며 대학 교육과 직업교육이라는 투 트랙을 조화시켜 왔다.

우리나라 대학도 대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교육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로 봐야 한다. 유치원 시절부터 오로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주입식 암기 교육이나 성적 위주의 일제고사를 통해 형성된 인격인데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교원을 만난다고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근본적인 책임은 교육부의 교육정책 당국자에게 있는데 그것을 대학 경영자인 총장과 교원에게 책임지라니.

대학에서 경쟁력 강화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김영삼 정부 때였다. 1995년에 발표된 ‘5·31 교육개혁방안’은 특히 시장주의의 관점에서 경쟁력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대학정원 자율화에 따라 대학정원도 풀고 대학 설립 기준이 완화됨에 따라 교육에서 경제주의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원만하게 추진한 장관은 바로 연세대 교수 출신 안병영이었다.

신자유주의 정부로 평가 받는 노무현 정부도 ‘대학의 시장화’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민주화교수협의회 회장 출신으로 윤덕홍 전 대구대 총장이 초대 교육부장관이 되었는데 10개월 만에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문제로 물러났다. 후임으로는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안병영 연세대 교수가 재기용되었다. 청와대는 안 장관의 발탁 배경으로 과거 교육부장관 재직 당시 교육개혁을 무난히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관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소 2년은 보장해주겠다던 노 대통령도 안 장관을 1년 만에 경질한다.

참여정부 중반이던 2005년 벽두 노무현 대통령은 장관 몇 명을 교체했다.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헌재 재경부 장관은 유임됐고, 전혀 거론이 안 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을 경질했다. 후임은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었다. 이 전 총장은 장관 제청권을 행사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1998~1999년 당시 교육부장관과 서울대 총장으로 호흡을 맞춘 사이였다. 이 전 총장에 대한 언론 기사가 쏟아졌다. 재산문제, 서울대 총장 재임시절 판공비 과다사용 문제, 불법적인 사외이사직 겸임, 장남의 군복무기간 단축 시도, 학문적 업적 등 도덕성과 연결된 치부가 드러났다. 그는 일주일여 동안 포화를 맞은 끝에 낙마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이기준의 서울대 개혁이라는 매력에 흠뻑 빠진 이유는 절대평가(A학점) 남발 금지, 고학년 재수강 금지 등 한 마디로 대학 경쟁력 강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당시 서울대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전공 공부를 등한시 하고 교수들은 이를 묵인하며 절대평가를 남발하였고, 낮은 학점 이수 시 재수강을 연속적으로 허용했던 것이 관행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동안 용인되어왔던 비경쟁적인 요소를 철폐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기준의 낙마로 이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기준 후임은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였다. 이례적이었지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었기에 청와대는 그냥 보통 관료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사실상 교육을 노골적으로 경제주의와 경쟁력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교육 경쟁력은 조사대상국 55개국 중 53위이다. 즉 2014년과 같은 순위이다. 이러한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식 교육개혁도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단언컨대 교육백년대계(敎育百年大計)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교육은 장기간 계획을 가지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지 시장원리가 작동되는 경제 현장이 아니다.

역대 교육부장관들[사진제공=뉴시스]

교육에 관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경쟁력 확보방안은 더욱 노골적인 시장주주의적 접근이다. 대통령직 인수위 교육분야 간사를 맡은 이는 경제학 박사 출신인 이주호였고 그는 초대 교육문화수석으로 이명박정부 교육정책의 콘트롤타워가 되었다. 잠시 교육과학기술부1차관으로 옮겼다가 2년반동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주도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철저한 시장주의적 접근이다. 대표적으로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보면, 국립대 운영체계 효율화·합리화와 경쟁 시스템 구축 등 구조개혁을 목표로

△ 거점국립대 단계적 법인화 추진
△ 단과대학장, 교대 총장 직선제 폐지
△ 성과연봉제 도입 등 대학의 시장화이다.

이어서 총장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도 그가 주도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표적인 재정지원사업인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총장직선제 개선’ 여부를 지표로 추가해 총장직선제 폐지를 압박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눈물을 머금고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까닭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를 이어받아 총장직선제를 국립대학 혁신사업과 대학특성화 사업과 연계시켰다. 40개 국립대학 중 마지막 직선제 총장이 재직 중이던 부산대학교에서 비극적인 투신 사건이 일어난 사건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故 고현철 교수님, 미안합니다. 그리고 남은 우리가 감당하겠습니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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