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주장 속에 들어있는 반 헌법, 반 역사성

이인호 KBS 이사장이 광복절을 앞둔 지난 13일 중앙일보에 광복절은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주장하는 시론을 냈다. 공영방송 이사장이 지난 70년간 대다수 국민이 정통성을 인정하고, 해마다 국가적 행사로 기념해왔던 광복절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KBS 이사장이라는 자신의 현재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서울대 명예교수, 전 주러시아 대사로 소개하고 있다. 왜 일까?

 

반 헌법, 비상식적 역사인식

이인호는 대한민국의 건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이뤄졌다고 보고 ‘8.15’를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번 8월 15일은 ‘광복 70년’이 아니라 ‘해방 70년, 대한민국 건국 67년’을 기념하는 8·15 광복절임을 알고 기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건국절에 대한 주장은 2006년 7월 이영훈 교수(서울대 경제학부)가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을 기고하였고, 그로 인해 처음 공론화되었다. 2007년 9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하는 내용을 담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이 중요시되고 건국일인 1948년 8월 15일의 의미는 축소되어 왔기에 개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건국절을 추진하려 했으나 2008년 8월 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 사업회 등 55개 단체와 야당의원 74명, 대한민국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와 이 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건국6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2008년 9월 12일 논쟁이 격심해지자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철회하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은 건국의 토대를 독립운동의 전통을 부정하는 동시에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일본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된다.

‘광복 70년’의 정통성은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에 기반 한다. 반면에 ‘건국 68년’ 주장은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망명정부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일제 잔재와 대외의존세력이 중심이 된 1948년 정부수립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48년 제헌헌법 조차도 인정했고 지금까지 헌법에 명시되어온 ‘임시정부’로부터 시작한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 헌법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1948년 제헌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와같이 대한민국 건립이 1919년이며, 이 법통을 이어받아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인호의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대다수 국민이 상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역사적 실재를 왜곡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이 공영방송 KBS 이사장으로 있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건국절’ 주장의 음모

사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이인호와 뉴라이트가 건국의 아버지로 옹립하고자 하는 이승만 대통령 조차도 인정했던 역사적 진실이다.

1948년 5월 초대 국회가 개원 했을 때, 당시 이승만 국회의장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으로 임시정부의 부활이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제1회 대한민국 건국공로대상 수상자로 이승만 대통령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인호를 비롯한 친일, 보수주의자, 보수 기독교단 등, 이승만의 추종세력이 이승만의 생각을 거부하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불순성에 기인함을 볼 수 있다.

첫째, ‘건국절’ 주장 속에는 이승만을 통해서 대한민국 건국과 기독교적 신앙을 일체화하고자 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왜곡된 신앙관이 내재해있음을 볼 수 있다. 이승만은 첫 재헌국회를 기도로 시작했으며, 1946년 해방 후 맞는 첫 3.1절 기념행사에서 “하나님께서 한민족을 인도하사 자유 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와 협조의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게 노력하자”라고 연설했다. 보수 기독교단과 뉴라이트는 이러한 이승만의 기독교적 신앙관을 건국의 토대로 삼고자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신권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바리새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영적 하나님 나라와 세속적 국가와 명확히 구별 지으셨다. 그럼에도 지금의 한국보수기독교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는 외면하고, 예수를 죽이고 자신의 지배권을 공고히 하려던 바리새인들이 지배했던 유대 사회를 이 나라에 구현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사회에 대한 교회 권력과 목회자의 일상적 권력화를 더욱 공고히 하고 기득권을 안정화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이 열망하는 정·종일치 사회는 결국 종교의 세속적 권력화와 신앙을 빌미로 물질화된 기득권을 쥐고 있는 목회자들의 전횡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왜곡된 신앙관은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의 종말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둘째, 친일의 원죄를 벗어나고자 하는 친일 세력과 ‘일제의 한국 근대화’를 주장하는 뉴라이트들이 임시정부와 3.1 독립운동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 정통성을 세우고자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임시정부의 존재는 일제에 의해서도 인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가 만든 '조선민족운동연감'은 “(1919년) 4월 13일 임정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임정 요인들도 4월 11일 임정 수립 기념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 일제도 인정했던 임시정부의 존재를 오늘날에 부정하는 행위는 역사적 퇴행이며, 국가적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개화파(친일)-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열전을 현대사의 정통성으로 굳히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는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인호를 KBS이사장으로 연임시켰다.

헌법적 가치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를 공영방송의 최고 수장으로 앉히고 연임시키는 박근혜 정권의 반 헌법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로 인해 우리사회는 역사적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왜곡된 종교적 가치관, 친일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이 뒤섞여 마치 배설하듯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건국일’이다. 역사는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memory)’인 동시에 그 기억에 대한 ‘해석’이다. 현대인이 올바르게 기억하고 올바르게 해석해야 만 후세대가 불행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박 태 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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