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산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가정하고 일상을 영위한다. 그러다 가끔 한 번씩 우리의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생각에 잠긴다.

지난 8일 느닷없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6월 하순에만 해도 ‘사소한 부탁’이라는 신간을 내놓은 그였기에 갑작스런 죽음은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사소한 부탁' 다음 책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를 궁금해 하던 터였다. 비통한 심정으로 그의 글들을 다시 들춰보았다. 이 글은 그에게 보내는 뒤늦은 헌사다.

그는 ‘청춘’인 채로 갔다

1945년생인 그의 죽음이 유독 갑작스럽게 다가온 데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그가 너무나도 젊은 사고를 했고 여전히 생생한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는 젊은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트위터 계정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운영했다.

트위터라는 매체의 속성상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기(誤記)나 착오 같은 것들도 눈에 띈다. 어떻든 그가 물리적인 나이의 한계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나이가 몇이건 정신이 젊다면 그는 청춘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현산은 마지막 순간까지 청춘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지난 6월 하순까지 트위터를 했다. 그의 트위터 계정에는 직접 올린 듯한 최근의 글들이 여전히 올라와 있다. 심지어 그때 나온 신간 ‘사소한 부탁’에 대한 홍보 포스팅마저 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72) 고려대 명예교수가 8일 타계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72) 고려대 명예교수가 8일 타계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생업인 번역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4월 3일에 쓴 트위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래에 없어질 직업에 첫 번째로 번역가를 꼽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번역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하겠지만, 영혼 없는 번역들이 이런 생각을 부추기기도 했을 것이다.”

책을 펼쳐 보면 그의 에세이에는 보다 깊은 사고의 궤적들이 기록돼 있다. ‘밤이 선생이다’는 그를 노년의 스타로 만들어준 히트작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 유신시대의 엄혹함을 반추하는 회고들이 많다.

한 인간의 내면세계가 무르익는 청년기에 그가 겪었던 많은 비극들이 그의 세계를 형성했을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엄혹함이 21세기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목도할 때마다 그는 평소의 온화한 어투를 버리고 붓끝을 세웠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밤이 선생이다’ 中)

그는 현대 사회가 상대주의에 잠식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젊은이들이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세태를 두려워했다. 어쩌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우리 시대의 ‘어른’이 청춘들에게 해야 할 말이란 이런 엄격한 지적이 아닐까. 그저 뭐든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달콤한 힐링이 아니라 말이다.

“장기를 두게 될 시간은 끝내 오지 않겠지만”

또한 그는 시(詩)를 사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언어인 프랑스어를 전공한 그에겐 시야말로 인간 정신의 최첨단이요 상상력의 금자탑이었다. 그가 말하길 “시는 낡았고 댄스 뮤직은 새롭다고 믿는가. 사실을 말한다면 시에서는 한참 낡은 것이 댄스 뮤직의 첨단을 이룬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머리에 번개가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사실 그의 건강은 이미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2017년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으나 두 달 만에 건강 문제로 사직했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이토록 빨리 다가와 그의 이번 책을 유작으로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우리는 죽음이란 종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을 뿐이란 말인가.

지난 5월 그는 장기알을 샀다고 했었다. 플라스틱이 아닌 나무로 깎은 장기말을 보고서 문득 구매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장기를 두게 될 시간은 끝내 오지 않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이 글을 보면 그는 이미 끝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무사히 장기알을 건네받았을까. 새로 배달된 장기알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갔지만 그의 글은 남았다. 글을 하는 이의 특권은 자신의 물리적 실체가 사라지더라도 자신의 생각더미를 세상에 일종의 유산으로서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춘이었으므로 남아 있는 그의 글은 언제까지나 형형한 빛을 내며 또 다른 청춘들의 앞길을 밝혀줄 것이다.

故황현산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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