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에 ‘끔찍했던’ 동갑내기 두 친구의 휴가기
한 철 벌어 1년? 우리는 1년 내내 벌어야 해
국내로부터 발길 돌려 해외여행 부쩍 늘어
외부 충격 없다면 국내 여행 활성화 기대 말아야


“지역경제와 내수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국민들이 가급적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관계부처는 이달 초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지역관광 활성화 방안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이행에 속도를 내주기 바랍니다.”

‘7말8초’ 휴가 시즌에 돌입한 24일 제32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주문입니다. 동네 횟집에서 물회로 더위를 식히던 직장인 정교인(42)씨와 영세자영업주 최일영(42)씨는 TV 화면을 보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에휴, 사정 모르는 소리 하신다, 참말로...”

“휴가를 국내로 가라고? 저거 지금 농담이지?”

수보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7.23)(자료:뉴시스)
수보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2018.07.23)(자료:뉴시스)

동갑내기 죽마고우인 두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폭염이 한창이던 5년 전 여름 2박3일 일정으로 가족 동반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몇 년 만에 두 가족이 함께 동해안 해수욕장과 계곡에서 1박씩 휴가를 보내기로 했던 겁니다. 시간을 뒤로 돌려 두 가족의 ‘끔찍했던’ 휴가 여행을 따라가 봤습니다.

폭염보다 더한 짜증

“자기야, 해수욕장 있잖아, 민박은 방 둘에 30만 원이고, 펜션은 방 하나에 35만 원 달래.”

“어후, 무지하게 비싸네. 더 싼 건 없어?”

“뒤져봤는데 이게 제일 싸. 아쉽지만 싸니까 해수욕장은 민박으로 한다?”

총무를 맡은 최일영씨의 아내는 해수욕장 근처 민박을 30만 원에, 계곡 근처 펜션을 ‘놀랍게도’ 25만 원이라는 싼 가격에 예약했습니다.

금요일 오후, 평소보다 일찍 업무를 마친 두 가족은 11인승 승합차에 타고 내부순환로로 향했습니다. 북부간선로를 거쳐 서울양양고속도로(당시 동홍천까지 부분개통)를 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출발지에서 덕소삼패IC를 지나 고속도로로 올리는 데까지 1시간 30여 분, 이후로도 ‘고속도로’라는 이름을 가진 주차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해수욕장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짜증이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닷바람을 한껏 맞은 다음 횟집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일행은 메뉴판에 적힌 가격과 주인의 강권에 기겁했습니다. 두 부부와 최일영씨의 어머니, 세 아이들, 이렇게 8명이 회를 곁들인 저녁식사에 지불해야 하는 최소 금액은 28만 원이었습니다. 말없이 선 주인의 온몸에서 강권이 묻어나왔습니다.

일행이 두세 명이면 또 모르겠으나, 노모에 아이들까지 있고 시간도 늦어 일어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냥 먹기로 했습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하지만 휴가 기분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 두 부부는 소주와 맥주를 이른바 ‘말아먹으며’ 즐거운 기분을 되찾았습니다. 일행은 31만 원을 지불하고 식당을 나섰습니다.

다음날 10시경, 일행은 숙소를 나와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해변을 따라 공용 주차선이 그어져 있었지만, 주차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얀 간장통과 타이어, 공사장 원뿔통, 주차금지 표지판 따위가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거 공용주차장 표시 맞지? 그럼 아무나 주차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러게 말이야. 내가 가서 치울 테니까 주차해.”

정교인씨가 내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도로 맞은편 식당에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어서 오시라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미 많이 겪어본 ‘시츄에이션’, 다퉈봐야 득 될 게 없었습니다. 정교인씨뿐 아니라, 차안에 대기하던 가족 모두가 충분히 아는 상황이었습니다.

정교인씨는 두말없이 차에 올랐고, 일행은 해변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곳에 주차한 다음 걸어와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깟 주차 문제로 휴가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남편들은 말수가 줄었고, 아내들은 남편들이 하지 않는 말만큼 더 많은 말을 해야 했습니다.

해변은 구름 한 점 없는 대기를 통과해온 태양빛이 그대로 내리쬐고 있어 파라솔이나 그늘막 텐트 없이는 잠시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해변에는 이미 많은 파라솔이 쳐져 있었습니다. 다 돈 받고 임대해주는 파라솔이었습니다. 다행히 최일영씨는 그늘막 텐트를 늘 차에 싣고 다녔습니다. 장남에게 그늘막 텐트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만 원을 주면서 시원한 생수와 청량음료도 사오라고 했습니다.

(자료:KNN뉴스 화면 갈무리)
(자료:KNN뉴스 화면 갈무리)

그런데 돌아온 장남의 손에는 그늘막 텐트와 달랑 2L들이 생수 두 병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장남이 1,0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면서 말하더랍니다.

“아빠, 생수 한 통 4,500원이야.”

두 아이와 엄마들이 바닷물에서 풍덩거리는 동안, 최일영씨는 묵묵히 그늘막 텐트를 펼쳤습니다. 누군가가 다가와 ‘해수욕장 관리법’이라는 게 있어서 효율적인 해수욕장 관리를 위해 텐트는 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 관리하느냐는 물음에 '마을 청년회'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안 가져가서 그런다느니, 매년 해변을 청소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느니, 말이 참 많았습니다. 이해는 하겠지만, 이해하기 싫은 느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파라솔을 대여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 폭염보다 더한 짜증.

해수욕장에 꼭 가야 한다고 했던 정교인씨가 말없이 15,000원을 지불했습니다. 태어난 이후 평생 최일영씨 가족을 위해 봉사만 했던 그늘막 텐트는 그날 파라솔 아래에서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해수욕장 관리법’ 덕분이었습니다.

“경포대 같이 큰 데로 갈 걸 그랬나?”

“거기도 다 똑같아. 성수기잖냐... 대충 수영 좀 하다가 빨리 출발하자. 쪼끔 미안해질려고 그런다, 괜히 내가 해수욕장 오자 그래서.”

식당 주인은 계곡의 왕

일행은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몰아 두 번째 휴가지인 계곡 펜션에 도착했습니다. 두 가족이 25만 원에 하루를 보낼 수 있고, 약간의 발품만 팔면 서늘한 계곡으로 갈 수 있는 펜션, 일행은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기대감은 펜션 주인을 만나는 순간, 풍선처럼 터져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협회에서 뭐라 그래서요.”

“뭐가요?”

“준성수기, 성수기 가격이 대충 형성돼 있는데, 그렇게 싸게 방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다른 업체가 손해를 본다고, 이미 예약을 했으니까 다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가격에는 방을 내주면 안 된다고 그래서...”

최일영씨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이, 정교인씨는 주인과 잠시 대화를 나눈 다음 50,000원을 추가로 지불했습니다.

계곡에 설치된 평상(자료:기사와 관계없는 지역)
계곡에 설치된 평상(자료:기사와 관계없는 지역)

1박에 30만 원인 펜션에 여장을 푼 일행은 곧바로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많은 피서객들이 이곳저곳에서 서늘한 계곡물과 바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목이 좋은 곳에 어김없이 평상들이 놓여 있었지만, 일행은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릿세가 비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가족은 펜션 부근 가게에서 준비해 온 술과 음료, 과일을 먹으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5시가 넘어설 즈음,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최일영씨 부부는 토종닭과 산채비빔밥을 시킬 요량으로 계곡 옆 식당에 갔습니다.

“여덟 명? 저기 평상 빌리면 토종닭이랑 밥이랑 해서 20만 원만 하면 되는데, 구질구질하게 왜 맨땅에서 그러고들 노나 몰라. 근사하게 휴가까지 왔으면서.”

“평상은 됐구요, 토종닭 두 마리에 얼마예요?”

“10만 원.”

“예? 10만 원요? 아후...”

원래 가격이 두 마리에 10만 원인지, 아니면 평상을 빌리게 하려고 비싸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최일영씨 부부는 산채비빔밥 가격도 묻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식당 주인이 최일영씨 부부의 등에 대고 한 말 때문이었습니다.

“어따, 우리는 한 철 벌어 1년 먹고 사는 사람들이요. 뭘 그래 쪼잔하게스리 평상 하나 딱 빌려서 놀지.”

“뭐요? 아저씨, 아저씨는 한 철 바가지 씌워서 1년을 노시는지 모르지만, 우린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요! 우리 휴가 오는데 아저씨가 뭐 보태준 거 있어요?”

최일영씨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강원도청으로 전화해 한동안 공무원을 붙들고 옥신각신했고, 식당 주인은 그런 최일영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그 계곡의 왕이었고, 왕의 심기를 건드린 일행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기가 힘들었습니다. 최일영씨 말대로, 시쳇말로 “쪽팔려서” 말입니다.

두 가족이 동해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오는 데 든 비용은 숙박비용 60만 원에 횟집 식대 31만 원 등 대략 1,200,000여만 원이었습니다.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자료:YTN화면 갈무리)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자료:YTN화면 갈무리)

서울로 돌아오는 길, 아니 ‘고속도로’라는 이름을 가진 주차장, 총무를 맡은 최일영씨의 아내가 “이 정도 금액이라면 외국 갔다 오고도 남겠다”고 했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정교인씨가 환한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래. 이거 완전 돈 쓰고 기분 잡치고. 내년부터는 동남아 가서 쓰고 옵시다. 우리나라 진짜 싫다 싫어!”

두 가족은 이듬해부터 3년 내리 태국, 베트남, 필리핀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인도네시아로 갈 예정이랍니다. 센스쟁이 총무가 지난봄에 턱없이 싼 가격으로 항공편도 예약해 두었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휴가철 바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대롭니다.

바가지 대책이라곤 실효성 없는 캠페인과 교육뿐

지난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文대통령은 “이달 초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발표한 지역관광 활성화 방안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이행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관광전략회의는 지난 11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회의를 말합니다. 회의에서는 휴가철 바가지 단속에 대해 어떤 의견들이 오갔을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대책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가지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캠페인과 교육으로 마치 불멸의 영혼처럼 끈덕진 휴가철 바가지 상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사례에 비추어 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첫 번째 사례는 평창동계올림픽입니다. 당시 하루 숙박료가 100만 원이 넘어서는 등 수십 년 만에 오는 올림픽 특수를 누리기 위해 숙박업소들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식을 접한 국내 관광객들은 강원도, 특히 평창을 숙박지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KTX 경강선이 개통되면서 평창은 당일치기 관광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정부와 강원도는 바가지 업소에 대해 세무조사를 의뢰하고, 업소들이 건축, 위생, 소방 등 관련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를 따졌습니다. 그러자 바가지요금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군부대 '위수지역 폐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강원도 양구군, 인제군 등 DMZ(비무장지대) 인근 군부대 근처는 여름철만 되면 피서객과 면회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통에 숙박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외박 나온 병사들이 주로 찾는 PC방 요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위수지역'이란, 외출이나 외박을 나온 병사들이 이탈해서는 안 되는 지역을 말합니다. 이게 폐지된다면 병사들이 그 ‘코딱지만 한 동네’에 머물 이유가 사라집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하던 신병들 얘기는 교통이 불편할 때 얘기지,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서울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시절 아닙니까. 위수지역이 폐지되는 순간, 그동안 폭리를 취했던 업주들이 모두 망하게 되는 거죠.

폐지 얘기가 나오자마자 폭리 업주들의 자세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PC방 이용 요금을 정찰제로 바꿨습니다. 숙박료는 군청 홈페이지에 공시되고 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겠지요. 이처럼 외부의 압력이 없다면, 여름철 바가지 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륙 대기 중인 항공기들(자료:인천공항공사)
이륙 대기 중인 항공기들(자료:인천공항공사)

그렇다면 대책은 외부의 압력이겠군요. 문화체육관광부 이귀전 차장은 인터뷰에서 이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정부가 직접 단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는 지역관광발전지수 같은 관광 관련 평가를 거쳐서 지방축제를 선정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데요. 그런데 평가하는 주요 항목이 ‘관광 지출액’이거든요. 관광객이 돈 많이 쓰게 하는 거요. 만약에 관광객 불만 처리나 단속 실적, 바가지요금지수 같은 평가항목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결과를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처럼 손쉬운 해결책이 있음에도, 여름이 다가오면 전국의 관광지에서는 매년 공무원이 주관하는 ‘바가지요금 근절 결의대회’가 열립니다. 최일영, 정교인, 두 친구가 국내 휴가를 포기하기 전인 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올해 여름철 성수기 동안 614만여 명이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성수기에 하루 평균 18만3천여 명이 이용했는데, 올해는 20만5천여 명이 이용할 거랍니다.

바가지 상인들의 말처럼 “그래도 올 사람들”은 올까요?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래서 안 올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국내 여행 활성화? 대책이라고는 캠페인과 관련 교육뿐인 이런 지경에? 대통령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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