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주도→소득주도→포용으로 갈아타는 한국경제
치밀함과 과감성 부족으로 초래된 최저임금 과부하 현상
경제 패러다임 전환 성공의 열쇠는 확장적 재정정책
‘채무 건전성 신화’와 ‘채무강박증’에서 빠져나와야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의 핵심 정책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와 수출을 늘리면서 성장하는 ‘이익주도성장’에서 저소득층의 임금을 높여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성장을 촉진하는 ‘소득주도성장’으로 바꿨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IMF 외환위기 이전 연평균 8%대였던 경제성장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대로 떨어졌고, 그 과정에 ‘저성장 불평등’ 경제구조가 고착되면서 소득 분배의 중요성이 부각돼서다. 세계적으로는 이익주도성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가별 실질GDP 성장률(2016년 기준)(자료:wikipedia)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국가별 실질GDP 성장률(2016년 기준)(자료:wikipedia)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소득주도성장은 2010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임금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안한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경제포럼(WEF) 등 굵직한 기구들의 지원을 얻어냈고,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적지 않은 국가들의 정책적 도입까지 끌어낸 ‘대안적 성장담론’이다.

정부는 IMF와 OECD의 권고를 받아들여 지난 1년 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쳤다. 각종 문제점이 불거져 나왔다. 물론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실패를 거론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 그러나 文정부 2기 경제팀이 치밀한 설계와 과감한 정책 집행에 실패할 경우, 시대적 효용성이 막바지에 이른 이익주도성장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치밀함과 과감성이 부족한 빅-픽처(big picture)

새로운 도전에는 이른바 ‘빅-픽처’라 불리는 설계도가 필수적이다. 그 도전이 한 국가의 경제정책을 바꾸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설계도에는 다양한 부속 정책들이 순위별로 제시되어야 하고, 정책 집행의 효과와 부작용, 그리고 부작용에 대처할 세부 정책들이 일정별로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현 정부 1기 경제팀이 보인 행보는 설계도의 존재를 의심케 한다. 세 가지만 살펴보자.

① 경제수장과 청와대 참모 간 불협화음

우리 경제를 책임지는 삼두마차는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및 경제수석이다. 세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작업은 설계도에 명시된 정책들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정책 집행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야 그때그때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인 정책들에 대해서는 집행 이전에 깊이 공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설정된 경제정책의 핵심 축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이렇게 세 가지다. 혁신성장과 공정경제가 포함된 이유는 비록 이익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긴 했어도, 혁신 없는 성장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방향은 옳았다. 그런데 세 가지 씨줄 중 어떤 정책부터 집행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경제 관료 출신답게 ‘혁신성장’을, 교수 출신인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을 1순위에 놓았다.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이끌 삼두마차가 우선순위를 두고 처음부터 삐걱댔던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덕에 청와대가 앞서 나가긴 했으나, 경제부총리와의 조율에 실패하면서 1기 경제팀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거듭했다. 최저임금 인상 폭을 두고 양측이 ‘조용조용’ 벌인 신경전이 대표적이다.

결국 두 정책 간 조율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에 방점이 찍힌 홍장표 경제수석을 관료 출신인 윤종원 주OECD 대사로 교체하면서 무게추를 혁신성장 쪽으로 조금 더 옮겨놓았다.

② 기본정책과 보완정책 간 속도 조절 실패

“최저임금의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해와 내년에 이어서 이뤄지는 최저임금의 인상 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경영에 타격을 받지 않고 고용도 감소하지 않도록 보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을 16.4% 인상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니, 늦어도 보통 늦은 게 아니다. 그 1년 동안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 가구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신규 일자리는 줄었으며, 청년실업률은 10.5%를 찍었다.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과부하(over-burdening) 현상도 나타났다.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보완정책으로는 일자리안정자금 3조 원 지원, 카드수수료 인하, 프랜차이즈 비용 경감, 상가임대료 상승률 상한 조정(9%→5%), 실업급여 및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핵심 생계비(주거비, 의료비) 경감, 기초생활보장제 강화, 사회안전망 강화, 복지 확대 등이 있다. 하나같이 빨라봐야 올 9월 이후에나 실시될 정책들이다.

일부 법안들이 국회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탓도 있다. 그러나 보완정책들이 상대적으로 간과된 1년, 기본정책과 보완정책 간의 속도 조절에 실패한 1년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③ 따로 논 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세 가지 핵심 축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는 현 정부 출범 당시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제시됐지만, 지난 1년 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기본정책들이다. 현 정부 1기 경제팀은 경제부총리-혁신성장, 청와대 정책실장-소득주도성장, 공정거래위원회-공정경제 식으로 따로 놀았다. 그런 탓에 경제 패러다임 변화의 세 가지 핵심 축이 한 덩어리로 융합돼 유기적으로 움직이기는 사실상 쉽지 않았다.

최근에야 세 가지 축을 하나로 아우르고 다양한 보완정책들을 포괄할 수 있는 용어가 전면에 등장했다. 분배 불평등과 같은 시장경제의 부작용에 정부가 임금인상, 소득 재분배, 사회안전망 확충, 복지 확대 등의 보완정책으로 개입해 불평등을 완화하고 균등한 경제활동 참여 기회를 갖게 하는 정책, 바로 OECD의 ‘포용적 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과 포용적 성장 간의 거리는 과거보다 멀지 않다.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얼마만큼의 강도로 추진하느냐에 따라 갈리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했으니 흔히 하는 말로 ‘정正’과 ‘반反’의 작용을 조율해 둘 사이의 거리를 더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보완정책들이 최저임금을 따라잡도록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혁신성장 정책과 공정경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서로 보완정책으로써 기능할 수 있도록 적기 설계 및 집행이 요구된다.

(자료:isuauthor by Atanas Kostov)
(자료:isuauthor by Atanas Kostov)

경제 패러다임을 이익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결국 ‘불평등을 줄이고 소득을 안정화시켜 총수요를 유지 또는 성장시킨다’는 의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최저임금을 두 차례 인상하면서 변화의 항해를 시작했지만, 선체가 좌우로, 앞뒤로 기우뚱거린다. 이제는 보완정책들로 선체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일자리 안정자금이나 실업급여, 근로장려세제 등은 올해 예산으로 어떻게든 해결한다 해도, 주거비와 의료비 등 핵심 생계비를 줄이는 정책은 사회적 저항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 사이의 분배율 조정도 가시밭길이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분배는 그보다 더 험난하다. 이런 작업들이 규제개혁을 포함한 혁신성장 정책과 정면충돌할 경우, 보혁간, 노사간 대립이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안전망 강화와 복지 확대로 눈을 돌리면 아예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다.

여타 보완정책들이 먼저 치고 나간 최저임금을 따라잡게 하려면, 그래서 분배의 불균형을 개선하고 총수요를 유지 또는 성장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은 ‘돈’, 즉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확장적 재정정책 없이 지속 가능한 성장 없다

소득 불평등은 두 가지 분배 방식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근로자의 임금, 사업자의 소득 등 시장소득을 조정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정하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원청-하청 간 불공정거래를 없애고, 노동시장의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이를 해소하는 정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친시장주의적 방식이다.

첫 번째 방식으로 해결이 어려운 불평등은 조세와 재정정책을 동원하는 두 번째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다.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가 예산으로 직접 개입하는 정책이라서 친케인즈주의적 방식으로 불린다.

OECD 주요국의 조세부담률(자료:OECD경제통계정보시스템,2016)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OECD 주요국의 조세부담률(자료:OECD경제통계정보시스템,2016)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지난해 정부가 시행한 최저임금 인상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개혁 등은 친시장주의적인 방식이었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분배에 냉담했고, 위에 언급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올해 최저임금 인상안에 반대해 정부를 상대로 실력행사에 들어가려다 주요 전선을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로 바꾼 이유다.

1차 분배에 냉담한 시장은 정부로 하여금 두 번째 분배 방식, 즉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 하지만 사회안전망 강화, 복지 확대 등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는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지난해 예산 규모나 그보다 조금 더 큰 규모 정도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시쳇말로 ‘놀라 자빠질’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하반기 경제 운영과 관련해서 정부재원으로 해결하는 부분들이 많이 들어가 있단 말이죠. 정부 재정으로 이것을 언제까지 막을 것이냐 하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18일 손석희 앵커가 jtbc뉴스룸에 출연한 윤종원 경제수석에게 던진 질문이다. 국가채무는 절대로 늘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이른바 ‘채무 건전성 신화’나 ‘채무강박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실상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 반영된 질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들이 저성장을 해결하기 위해 들고 나선 정책은 ‘돈 풀기’, 즉 확장적 재정정책이었다. 돈을 얼마나 뿌려댔으면 미 연방준비제도(Fed) 벤 버냉키 전 의장의 별명이 ‘헬리콥터 벤’일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의 말대로 ‘유사 이래 환율 관리에 가장 많은 달러를 쏟아 부을지언정’ 재정 확대에 관한 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정은 경제 최후의 보루라서 절대로 채무를 늘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IMF 외환위기가 할퀴고 간 상처는 그만큼 깊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조세 부담률이 높다면, 또 국가채무가 많아서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이 위태롭다면, 재정 확대 정책은 꿈도 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재정이 가진 여력은 의외로 튼튼하다.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치인 25%에 못 미치는 19.4% 수준이다(2016년). 세금을 덜 낸다는 얘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5.4%로 OECD 평균치인 113.1%보다 월등히 낮다(2016년).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융통할 여력이 많다는 얘기다. 국가신용등급 또한 ‘AA-(안정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이 세 가지가 국제통화기금(IMF)이 틈만 나면 한국 정부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권고하는 이유다. IMF가 권고하는 적정 채무 비율은 70%다. 만약 현재 채무비율 45.4%를 70%로 올린다면, 80조 원가량의 추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OECD 주요국의 국가채무 비율(자료:OECD경제통계정보시스템,2017)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OECD 주요국의 국가채무 비율(자료:OECD경제통계정보시스템,2017)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그런데도 경제 규모 대비 재정 지출 비중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재정이 빈곤을 개선하는 효과는 OECD 평균치인 60.2%에 한참 못 미치는 22%에 불과하다. 작은 재정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세와 재정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정부는 보편증세가 아닌 핀셋증세로 연 3조4천억 원 규모의 추가 세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고, 재정지출은 박근혜 정부 때보다 못한 7% 증가에 머물렀다.

OECD 경제통계정보시스템(2017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정기여도는 34개 회원국 중 31위에 위치했다. 엄청나게 불평등한 나라라는 의미다. 그런데 세전소득에서 우리보다 더 불평등한 나라가 셋 있다. 대표적 선진국인 독일, 노르웨이, 핀란드다. 하지만 이 국가들은 우리보다 월등히 평등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재정 정책 덕분에 말이다.

재정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핀셋증세만으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요구하는 대규모 복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추가 세수 확보가 불가능하다. 지난 4월, 정부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 산하에 조세와 재정 개혁을 추진할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증세와 재정 확대 문제를 재정개혁특위에 일임하기는 어렵다. 의사결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증세와 확장적 재정정책은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현안이 됐다. 이는 정부 철학의 문제이고, 그렇다면 특위 수준이 아니라 대통령 또는 총리 또는 경제부총리가 직접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대국민 설득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빅-픽처를 국민 앞에 내놓고 어디에 어떻게 쓰면 어떤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설득하는 과정에 보유세와 소득세, 자산이득세(금융소득과 임대소득) 등이 거론돼야 한다.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현안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청년실업률과 일자리정책 제고를 위해 사회복지 서비스 확대 방안을 부상시켜야 한다. 고소득자 중심의 핀셋증세를 이어가 보편증세에 힘이 실리도록 해야 한다.

본예산을 빠듯하게 짜놓은 다음 곧바로 추경 편성에 나서는 ‘채무강박적 관행’을 언제까지 반복할 텐가.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인 이 시기에 국민을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설득해 낼 정부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총선이 코앞에 닥치기 전에,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패를 결정지을 확장적 재정정책의 기초, 조세저항을 뚫어낼 초석을 다져놓아야 한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