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 이슈의 세계적 파괴력 간과한 야권
| 야당들의 어긋난 논리와 당내 갈등에 국민 피로도 가중
| 반성 없는 야권에 선거 필패는 예정된 수순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 미학이고, 그것이 힘이다. 중도개혁의 새로운 정치세력인 바른미래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바른미래당 손학규 중앙선대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선거대책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사실 손 선대위장처럼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른 야당들의 속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손 선대위장의 말대로, 지방선거는 평화특사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지역 살림을 돌볼 일꾼을 뽑는 선거다. 원인이 어디에 있건, 몇몇 거시경제 수치는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고, 적지 않은 지방에서 중소상공인들은 살기가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당연히 책임론과 지역별 이슈가 부각되어야 한다. 전임 단체장의 실정과 후보들의 대안이 건전한 지점에서 충돌해야 한다.

정당지지율 비교(자료:한국갤럽)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정당지지율 비교(자료:한국갤럽)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그러나 중앙의 이슈에 지역 이슈가 매몰돼 버렸다. 여당이 지방선거를 싹쓸이하게 생겼다. 국민들에게 이번 6・13지방선거는 출발부터 지역 이슈가 증발한 선거로 비춰진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 야당들이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중앙 이슈의 파괴력 간과한 야당들

가장 큰 이유는 야당들이 중앙 이슈인 ‘북한 비핵화’가 가진 무게와 파괴력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개발에 나선 이유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북미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급물살을 타던 지난 4월 비핵화 이슈가 가진 무게와 파괴력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핵실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며, 우리 공화국은 핵실험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에 합세할 것이다.” -조선중앙TV-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시절부터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들락거리며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1985년 NPT에 가입했지만 1993년 탈퇴했고, 미국과 합의 하에 1994년에 다시 복귀했지만, 2003년 또다시 탈퇴했다. 2008년에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지만, 금세 2차 핵실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개발에 매달린 이유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속된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를 타개할 유일한 수단으로 핵을 택했기 때문이다. 핵에 대한 북한의 집요함은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이어졌고, 김정은 위원장은 결국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수단을 손에 넣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현황(1984~2016)(자료:CSI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현황(1984~2016)(자료:CSI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북한 비핵화 이슈가 표면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은 ‘핵실험 전면 중지를 위한 국제적인 지향과 노력’이다.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으로써 북미회담에 임하겠다는 선언이자,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얻어낼 때까지 비핵화 카드를 움켜쥐고 있겠다는 장기적 포석이다.

북한과 미국이 회담 포기 상황까지 치달으며 ‘밀당’을 벌인 끝에 ‘일괄 타결’을 외치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단계적 타결’을 일정 부분 수용한 듯한 모양새다. 밀당 과정에 흘러나오는 소식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뉴스거리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라는 이름의 중앙 이슈가 가진 세계적 무게감이다.

이처럼 강한 흡입력과 파괴력을 가진 이슈에 대해 그동안 야당들은 어떤 시각을 견지했던가? 김정은 위원장이 수차에 걸쳐 전향적인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전에 없던 광폭 행보까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양치기 소년’ 취급을 하지 않았던가?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반세기가 넘도록 북풍을 선거에 이용해왔던 관성 그대로 ‘거짓 안보 프레임’과 ‘안보 불안감’을 동원, 대국민 경각심만 부각시키며 세계적인 관심사를 지방선거에 연동시키려는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오죽하면 “황소개구리(지방선거)가 황소(비핵화)를 잡아먹겠다고 설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라는 비아냥이 나올까. 정의당을 제외한 여타 야당들도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나올 때만 해도 제1야당의 사태 인식은 안이했다. 두 정상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만났을 때에도 역사가 보내는 신호를 애써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거라는 소식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것 보라”는 듯 자신들에게 되돌아 올 ‘거짓 안보 프레임’과 ‘안보 불안감’의 부메랑을 던져댔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그러나 비밀리에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등 문재인 대통령의 끈질긴 중재 노력 덕에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제 길로 들어섰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제1야당 내에서 ‘실패한 선거 전략’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하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빼고는 건전 보수층마저 이미 등을 돌린 후였다.

야권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구태에 가중된 국민적 피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격언이 있다.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이야기다.

불과 1년 전, 1,700만 국민들은 국정농단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책임의 당사자는 새누리당이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에게서도 새누리당으로부터도 진정한 사과 한마디 들은 기억이 없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앉아 ‘역사의 판단’ 타령만 하고 있을 때,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이라는 새 부대로 자신들을 포장했다. 사과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한 ‘그나마 양심 있는 샤이파’ 의원들은 새누리라는 헌 부대를 버리고 바른정당이라는 새 부대로 들어앉아 자유한국당과 ‘50보 100보 놀이’를 시작했다.

제1야당의 사과 부재는 홍준표 대표 취임 직후 근거 없는 당당함으로 바뀌었고, 그 당당함은 이내 자신들의 9년 실패에 눈 감은 채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문재인 정권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망각의 정치권을 맴돌던 김성태, 장제원 등 구태 새누리파는 사과 없는 고향으로 180도 유턴해 버렸다. 쪼그라든 샤이파들이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일단 세부터 불리는 것이었고, 그래서 물과 기름이 만나더니 ‘중도개혁’이라는 설익은 명분 아래 바른미래당이라는 또 다른 새 부대가 등장했다.

한편,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국민의당이 되었다가 거기서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옹색한 새 부대로 이주한 이들이 있다. 현재 정당 지지율이 1%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민주평화당이 그들이다.

국정농단사태 이후 이합집산이 끊이지 않았던 야권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국정농단사태 이후 이합집산이 끊이지 않았던 야권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제1야당도, 제2야당도, 제3야당도, 자신들을 마치 ‘새 술’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헌 술’이었고, 헌 술을 이름만 새로운 ‘헌 부대’에 담은 꼴이다. 정당 지지율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 국정농단 이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정당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뿐이다. 야권이 제아무리 ‘보수 적통’이니,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진보의 결합’이니 하며 떠들어봐야 국민들의 피로도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 피로도는 지방선거 정당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곧이어 선거 결과로도 드러날 것이다.

감정적 접근 실패한 야권

제1야당 당대표의 아전인수식 논리를 동원한 막말과 거짓 선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당내 반발에 못 이겨 당대표가 지원유세를 중단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했지만, 수습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그런 탓에 국정농단에 대해 사과하지 못했던 실패를 회복할 책임은 후보들 몫으로 남겨졌다. 지난 2일, 경남도지사에 출마한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는 계란을 맞고 고개를 숙이는 선거광고를 선보였다. 국민들을 코웃음 치게 만들었던 당대표의 어긋난 논리와 달리 감정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지난 1년간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물론 작위적인 행동은 아니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이 국민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행보였다. 그런 행보를 두고 제1야당과 제2야당은 험담과 비하로 일관했다. 대부분 얼음장처럼 차가운 논리가 동원됐다. 옛정을 생각해 차마 논리를 동원하지 못했던 제3야당은 존재감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월 유족 김소형씨가 아버지에 대한 추모사 '슬픈 생일'을 읽고 오열하자 포옹하며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2017.05.18)(자료:오마이뉴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월 유족 김소형씨가 아버지에 대한 추모사 '슬픈 생일'을 읽고 오열하자 포옹하며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2017.05.18)(자료:오마이뉴스)

누가 “선거는 논리의 한판 승부”라고 말하는가? “이명박은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국밥을 우겨넣던 광고 장면은 논리를 건드린 게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감정선이 움직이지 않고서는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직접,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연해 보이고 있다.

야권의 대안 부재와 당내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정의에 기초한 명확한 진단이 내려져야 하고, 충분한 근거에 입각한 대안과 그 대안을 추진해 나갈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 정권에 7%였던 청년실업률이 이 정권 들어 10%에 육박한다. 원인은 000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000와 0000를 언제까지 순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현재 당청으로 향하는 야권의 공격은 대안과 로드맵 없는 진단에 그치고 있다. 설령 있다 해도 국민들의 귀에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그 책임은 당연히 야당들의 차지다.

야당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당내 갈등 역시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제1야당의 중진들은 당대표의 독선적인 당 운영에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최근 들어 당대표의 수족을 끊어놓으려는 시도마저 엿보인다. 선거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제2야당은 출범 100일도 되지 않아 창업주들끼리 티격태격하더니, 제살 깎아먹는 치졸한 싸움을 선거판까지 끌어들였다.

대안 없는 공격이 국민의 신망을 얻을 리 없고, 수신제가修身齊家없이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논할 자격조차 가질 수 없다.

경각심과 통렬한 반성 요구되는 정치권

이런 지경이니 야권이 어떻게 맥을 출 수 있나. 이런 지경이니 여당이 어떻게 지방선거 싹쓸이를 하지 않을 수 있겠나. 여론조사 탓을 하건 괴벨스의 망령 탓을 하건, 여당의 지방선거 절대 압승이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지방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역시 12곳 중 11곳 승리가 점쳐지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 미학”이라 했던 제2야당 손학규 중앙선대위원장의 발언은, 원론적으로는 옳지만 견제와 균형에 어울리지 않았던 야권의 패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견제심리에만 호소하는 ‘하급 선동’에 불과하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다면 우리 정치가 불행해질 개연성이 높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이고, 짝이 다른 날개로는 날아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명경지수라 해도, 제아무리 봉황이라 해도, 이 순리에는 예외가 없다.

프랑스 혁명의 유럽 전파 문제로 논쟁 중인 자코뱅당(1792년 1월)(자료:everyhistory.org)
프랑스 혁명의 유럽 전파 문제로 논쟁 중인 자코뱅당(1792년 1월)(자료:everyhistory.org)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당과 지롱드당이 의회 좌우에 자리를 잡았던 것처럼, 베트남전 확전 여부를 두고 매파와 비둘기파가 격렬하게 대립했던 것처럼, 증권시장이 황소(상승장)와 곰(하락장)의 파도타기인 것처럼, 정치의 물길 역시 세력 간 대립이라는 추동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야당들이 지금처럼 결과에만 매몰된 채 자신들의 패착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 정치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결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더욱 불행한 점은 이번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政治란, 정치인이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통제함으로써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능동적인 행위다. 선거를 앞두고 견제심리에 호소하는 것은 능동이 아니라 수동이고, 정치가 아니라 선동일 뿐이다. 수동적인 선동을 계속하는 한, 4차산업도, 새 정치도, 민주주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완패를 목전에 둔 야당들에 통렬한 반성을, 싹쓸이 전망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여당에 진중한 경각심을 주문하고자 하는 말이다.
김태현bizl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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