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에 밭에 나가서 열한 시까지 일했다. 

날은 덥고 허기져서 더 일할 수가 없었다. 

가까운 식당에 갔더니 개시도 안 했는데 싱글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도로 나왔다. 

내 딴에는 손님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려고 일찍 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 ​

면사무소 옆에 있는 중국집은 문이 닫혀 있었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하다가 내가 근무했던 대안학교에 가서 점심을 얻어 먹었다. 

동무가 있으면 열 시간도 일할 수 있지만 혼자서 종일 일하는 것은 무리다. ​

오후 일은 포기하고, 장도 볼 겸 읍내에 나가 이발하고 집에서 쉬었다.

 
뒷밭을 정리하고 장작을 패느라 몸을 놀리진 않았지만 이런 게 휴식이다. ​

농촌에서는 농사일 빼고는 모두 쉬는 것으로 간주한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은퇴하고 인생을 즐기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고 글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농사가 전부인 사람들에겐 농번기에 집에서 풀이나 뽑는 내가 한량처럼 보일 것이다. 

한량 맞다. 이 동네에서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겠나.

 

옥수수와 고구마만 심으면 읍내 인력시장에 이름을 올릴 생각이다. 

일거리는 많다. 한 달에 닷새만 일하면 된다. ​

나야말로 지상 최강의 ​잡부 아닌가. 

머리는 녹슬었지만 몸뚱이를 굴리는 일은 ​뭐든 할 수 있다. 

최선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최악도 아니다. ​

무엇보다 잔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알고 보면 심플하다. 

어떤 일이든 최악과 최상 사이 어디쯤에서 매듭이 지어진다. 

최상의 결과만을 바라는 삶은 끝없이 부족하고 늘 피곤하다.  

여기까지, 하고 선을 그을 줄 아는 것이 능력이다. ​

현재욱의 '힐링PLUS' @스트레이트뉴스
현재욱의 '힐링PLUS' @스트레이트뉴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