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오이소박이, 장조림, 삼겹살.
오늘 저녁 내 밥상이다.
반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땡볕 아래서 충분히 일했으니 이 정도의 사치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구운 삼겹살은 내가 지금껏 먹어본 고기 중에 최상이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을 즈음, 뒷밭에서 절로 자란 방아잎을 한 움큼 뜯어 넣었다.
아, 이 절묘한 조화라니! 내 글재주로는 도저히 이 맛을 표현할 수 없다.
고기를 한 번 뒤집기 전에 살짝 맛소금을 쳤기 때문에 된장도 필요없다.
마늘과 매운 고추 없이 삼겹살을 먹어보기도 처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 마늘이 빠졌네." 하면서 마늘을 챙기러 부엌에 갔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단숨에 밥 두 공기를 비웠다.
이렇게 해서 소래당의 간판 메뉴가 정해졌다. 방아잎 삼겹살.
이제 슬슬 이웃 님들을 초대할 준비가 갖추어지고 있다.
문제는 뒷간이다.
나는 편한데, 디딤판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뒷간을 수세식 좌변기로 바꿀 생각은 없다.
소래당이 호텔도 아니고, 이런 곳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손님만 오면 된다.
가까운 곳에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데도 있다.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토옥동 계곡, 소래당에서 5km 거리다.
어른들이 흐뭇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은 물수제비를 뜨거나 첨벙첨벙 다이빙을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울려 퍼질 때 아마도 나는 방아잎 삼겹살을 굽고 있으리라.
감자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열흘만 지나면 이랑에 씌운 비닐이 안 보일 정도로 무성해질 것이다.
강원도에서 온 씨감자인데, 아무래도 너무 적게 심은 것 같다.
통통한 햇감자를 은박지에 싸서 아궁이 불에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감자를 캘 때쯤이면 아침저녁으로 선득선득해지는 계절이니 감자 굽기에 딱 좋다.
그것도 손님들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자.
요즘 동네 주민들이 자꾸 묻는다. 언제까지 이 집에 살 거냐고.
그럴 때마다 집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까지 살 거라고 말한다.
주민들의 의견에 따르면 꽤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사는 집주인이 나고 자란 곳이어서 이 집을 남에게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랫집 형님이 아쉬움을 보탠다. 내 집 같으면 돈을 들여 이것저것 꾸미고 살 텐데.
나는 상관없다.
집과 땅이 내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자유롭다. 인연이 다하면 다시 빈집을 얻어 살면 된다.
어차피 우리 모두, 지구라는 행성 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 아니겠나.
세상에 철석같은 소유란 없다.
관련기사
- [현재욱의 馬耳童風] 감자와 옥수수 절로 잘 크오
- [힐링PLUS] 새싹과 도란도란
- [이시형의 힐링] 웰빙과 웰니스, 그리고 힐링
- [현재욱의 馬耳童風] 비오는 날의 두견새
- [현재욱 馬耳童風]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오늘
- [힐링PLUS] 아하! 봄철 건강관리 이런게 있네
- [힐링PLUS]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 [힐링PLUS]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 멍때리기가 정말 휴식이 된다고?
- [이시형의 힐링] 잘 노는 어린이가 큰 인물 된다
- [기고] 분단 시대는 가고 평화 시대 열리다
- [현재욱의 馬耳童風] '심쿵' 연애
- [현재욱의 馬耳童風] 낙과(落果)
- [현재욱 馬耳童風] 한밤의 소나기
- [현재욱의 馬耳童風] 이상한 잡부